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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한민국이 작은 학교처럼 산다면…

등록 2015-12-25 20:46수정 2015-12-26 13:02

[토요판] 르포
강재훈 선임기자가 기록한 시골학교
▶ 이 학교에서는 교실에서 뛰지 말아야 한다거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달려야 한다는 등의 규칙이 없습니다. 규제와 통제의 조항들은 사문화됐고, 서로에 대한 앎과 이해와 배려가 규칙을 녹였습니다. 땡볕에서 총검술과 열병을 배우고 강제로 머리가 깎이던 과거의 학교와도 다르고 점수와 경쟁에 파묻힌 지금의 학교와도 다릅니다. 내년에는 어떤 학교에서 살고 싶습니까? 세밑을 맞아 전국의 분교를 찾아다니며 기록해온 강재훈 선임기자가 두 학교의 풍경을 전합니다.

소나무숲을 지난 바람은 솔향이 나고 두엄 더미를 지나온 바람은 구린내가 난다는 말이 있다. 소나무숲에서는 그냥 편히 누워 솔향 가득한 바람을 느끼면 되지만 구린내가 나는 두엄 더미는 얼른 피하거나 치워야 한다.

2015년 한해를 마무리하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생각해 본다. 자꾸만 국민을 옥죄는 법을 만들고 적용하려는 정부, 대기업과 기득권 세력을 제외한 노동자·농민은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정부. 무언가를 자꾸 속이고 감추는 정부. 송년은 고사하고 작금의 현실이 참 답답하여 견디기가 힘들다. 소리라도 질러보고 싶지만 집회·결사의 자유마저 허가받으라 한다. 오죽하면 <교수신문>의 설문조사에 응답한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混庸無道)를 선정했을까 싶다. ‘혼용’은 흔히 사리에 어두우며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지칭하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함께 일컫고, 무도는 <논어>의 ‘천하무도’(天下無道)에서 유래한 말로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이른다고 한다.

가을비가 그치고 햇빛이 속리산에 내려앉은 지난해 10월23일 운동장에 선 삼가분교 여덟 아이들. 광석(왼쪽부터), 찬우, 민찬, 민주, 준혁, 석진, 은혜, 현경. 전교생 11명인 분교에서 6학년 4명이 수학여행을 떠나고 학생 7명과 동네 여섯살 꼬맹이 민주만 남았다.
가을비가 그치고 햇빛이 속리산에 내려앉은 지난해 10월23일 운동장에 선 삼가분교 여덟 아이들. 광석(왼쪽부터), 찬우, 민찬, 민주, 준혁, 석진, 은혜, 현경. 전교생 11명인 분교에서 6학년 4명이 수학여행을 떠나고 학생 7명과 동네 여섯살 꼬맹이 민주만 남았다.
검은 눈동자를 가운데 모으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삼가분교 아이.
검은 눈동자를 가운데 모으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삼가분교 아이.
 

제각각이지만 다 배운다

여기, 숲속 분교의 운동장을 제 맘대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본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만 달려야 한다거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만 달려야 한다며, 달리기를 하는 아이들을 못 달리게 하지 않는다. 그냥 제멋대로 뛰고 달리며 논다. 교실과 복도에서 뛰고 달리고 뒹구는 아이들을 본다. 조용히 해야 한다거나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고 막아서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들은 오늘 배워야 할 것들을 신나게 배우고 교사들은 정성껏 가르친다.

2014년 가을에 찾아간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삼가리의 삼가분교는 아이들이 8명인 숲속 작은 분교였다. 유치원생 김민주, 2학년 최석진, 3학년 이준혁, 4학년 윤은혜, 5학년 양광석, 5학년 황현경, 6학년 구정희, 6학년 김수민, 6학년 최민서, 6학년 하태영. 간식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과 교사들이 함께 교실에서 감자를 깎는다. 두껍게 깎는다고 뭐라 하지도 않고 물을 흘린다고 뭐라 하지도 않는다. 두껍게 깎은 감자 껍데기는 학교 사육장의 토끼에게 가져다주면 된다는 것을 아이들은 안다. 감자전의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먼저 부친 감자전을 선생님께 드셔보라고 권한다. 하하호호 신나는 건 당연하다. 배울 건 다 배운다. 그러면서 자란다. 전교생 10명에 학년도 제각각인 산골 분교의 아이들의 정겨운 모습이다.

배꼽을 보이며 옆구르기를 하고 있는 삼가분교 아이.
배꼽을 보이며 옆구르기를 하고 있는 삼가분교 아이.

여기선 오른쪽, 저기선 왼쪽
맞춰 달려야 하는 법이 없다
감자전 부쳐서 선생님 주는
하하호호 신나는 사회

농어촌 마을의 실핏줄로
거듭난 활력 넘치는 분교처럼
미움, 불신, 통제 내려놓는
2016년 한해가 되었으면…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삼가분교 교실. 3학년 이준혁(왼쪽)과 2학년 최석진이 담임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아니, 듣는 척만 할지도. 듣는 척, 실은 오후에 뭘 하고 놀아야 재밌을지 상상할지도.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삼가분교 교실. 3학년 이준혁(왼쪽)과 2학년 최석진이 담임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아니, 듣는 척만 할지도. 듣는 척, 실은 오후에 뭘 하고 놀아야 재밌을지 상상할지도.
석진이가 담임선생님에게 감자전을 먹여주고 있다. 2014년 10월.
석진이가 담임선생님에게 감자전을 먹여주고 있다. 2014년 10월.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정부의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에 따라 전국의 도서벽지에 산재한 분교들이 폐교되어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출생률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농어촌 마을에서는 아이 울음소리 듣기가 어려워졌다는 말도 있다. 교육정책이 경제 논리에 밀려 이제는 ‘1면 1교’ 정책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전국의 면은 모두 1200여개에 이른다. 교육 당국이 밀어붙이는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에 따라 본교는 물론 분교도 없는 면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어느새 10여개에 이르렀다. 귀농을 희망하는 이들조차 학교가 없는 마을로는 귀농할 엄두를 못 내고 포기하는 실정이다. 사람 사는 마을에는 학교가 있어야 한다. 그 학교는 틀과 규격 안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할 때보다 자율과 존중과 이해와 사랑으로 가르칠 때 희망이 있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 운당리 묘량중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폴짝, 두 손을 하늘 위로 올리고 뛰어내리려는 여자아이. 하늘로 솟구친 머리카락이 떨어지기 직전이다. 2013년 2월.
전남 영광군 묘량면 운당리 묘량중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폴짝, 두 손을 하늘 위로 올리고 뛰어내리려는 여자아이. 하늘로 솟구친 머리카락이 떨어지기 직전이다. 2013년 2월.
 

2016년엔 어떤 학교에 살 건가

2013년 2월에 찾아간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운당리의 묘량중앙초등학교는 분교는 아니었지만 학생 수가 14명까지 감소해 폐교 위기에 몰렸던 작은 학교다. 교육청에서 통폐합 고지서가 날아들자 도회지에서 귀농한 젊은 예비 학부모를 포함해 지역 주민들이 모두 학교 살리기에 팔 걷고 나선 덕에 이제는 외부에서조차 전학 오고 싶어하는 학교로 다시 살아났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다른 무엇보다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이 뜻을 모아 재능기부와 자원봉사로 아이들을 위해 나섰기 때문이었다. 일과 수업이 끝나도 아이들은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영어와 미술 등 10여개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돌봄교실에서 운영되기 때문이다. 학부모가 희망하면 아이들을 밤 8시까지 모두 맡아주니, 전교생 1인 1악기는 기본이다. 작은 학교가 농어촌 마을의 실핏줄 같은 구실을 하며 희망꽃을 피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풍경이다.

묘량중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달리는 소년 네 사람.
묘량중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달리는 소년 네 사람.
복면을 한 묘량중앙초등학교 아이.
복면을 한 묘량중앙초등학교 아이.

다시 초등학교 시절, 아침에 등교해서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만 교실 자리에 앉았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못 외우면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은 뒤 복도에서 무릎 꿇은 채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다. 중학교 시절, 마치 군대 정문을 통과하듯 교모의 반듯함은 물론 머리카락 길이와 교복의 단추까지 확인받고 거수경례를 한 뒤에야 통과하던 교문이 생각난다. 고등학교 시절, 교련복을 입고 등하교하며 운동장에서 총검술과 열병, 분열 훈련을 한 뒤 곡괭이 자루로 전교생이 ‘빳다’를 맞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대학교 시절, 머리를 빡빡 깎고 군장 검사까지 받은 뒤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군 훈련소로 끌려가던 때가 생각난다. 시키고 강제하기 때문에 찍소리 못 하고 해야만 했던 엄혹함, 군사훈련은 학점으로 이어지고, 학점이 ‘펑크’ 나면 강제로 군 입대를 하던 시절 아니었던가.

2016년 새해에는 작은 학교 아이들의 맑은 웃음처럼 미움과 불신 그리고 규제와 통제를 내려놓고 희망꽃을 피우는 대한민국을 기대해본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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