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 탐사기획팀 기자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지난해 10월 탐사기획팀으로 와 ‘탐사’를 ‘탐사’하다 얼마 전 첫 탐사기획보도인 ‘조작사건 책임자 사전’(<한겨레> 1월27일치 1면 등)을 쓴 김민경입니다. 아직 못 보셨다고요? 탐사기획팀 페이스북과 <한겨레> 탐사보도 누리집에서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한겨레>에서 가장 긴 호흡으로 취재하는 탐사보도팀은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심층 취재·분석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탐사기획팀은 얼마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재심을 권고한 79건 중 실제 재심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75건의 ‘책임자’를 추적했습니다. 보도 전후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에 대해 저희 팀의 고민을 나누고자 ‘친절한 기자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바로 ‘책임’ 문제입니다. 아무 죄 없는 사람이 ‘간첩’이 되는 과정에는 이들을 고문한 수사관, 수사와 공소유지를 맡은 검사, 실제 형을 선고한 판사가 있었습니다. 뒤늦게나마 이들의 무죄가 밝혀진 상황에서 이 ‘책임자’들은 각자 얼마큼의 법적·도덕적·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까요?
이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해 저희는 검찰·법원 출입 경험이 있는 기자, 검·판사 출신 변호사, 법학·역사 전공 교수 등을 두루 찾았습니다. 한목소리로 불법구금·고문한 사법경찰, 수사 지휘권이 있지만 바로잡지 못한 검찰, 최종 판단을 내린 법원 모두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책임 비율은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고문을 통한 잘못된 수사가 재심 무죄의 핵심 이유 중 하나인 만큼 수사 책임자들에게 더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결론은 어렵지 않게 낼 수 있었습니다. 반면 판사들은 1심, 2심, 3심, 파기환송심 항소심, 파기환송심 상고심의 재판장, 배석, 주심 등 그 위치가 다양했기 때문에 책임 문제가 조금 복잡해졌습니다. 당사자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으로 가장 많이 했던 말도 “주심이 아니다”였습니다.
전국 법원에는 단독부와 3명의 판사로 구성된 합의부가 있습니다. 합의부는 다시 재판장과 배석판사로 나눠지고, 배석판사 2명 중 1명이 돌아가며 주심을 맡습니다. 재판장은 부의 사무를 감독(법원조직법 27조)하며 형사사건 공판에서 소송을 지휘합니다(형사소송법 279조). 합의부 판사 중 권한이 가장 큽니다. 실무적으로 재판 기록을 검토하고 판결문을 쓰는 ‘주심’도 중요한 역할을 맡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재판장과 주심이 아닌 판사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을까요?
저희는 고민 끝에 책임 비율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책임 문제를 완전히 피해갈 수 없다고 봤습니다. 원심 판결문에는 판사의 이름과 서명이 모두 나옵니다. 재판장이든 주심이든 아니든 이들은 이 판결의 책임자입니다. 더욱이 ‘주심’은 ‘재판사무 처리규칙’ 등 법원 내 실무 규정에 불과하며 판결문에도 따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합의부를 따로 둔 법원조직법의 취지도 고려했습니다. 법원조직법은 지법·고법 합의부 재판의 경우 ‘판사 3명으로 구성된 합의부에서 심판권을 행사한다(7조)’며 ‘합의심판은 과반수로 결정한다(66조)’고 규정합니다. 무엇보다 헌법은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103조)’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법관을 심급별로, 재판장이나 주심 여부로 나누지 않습니다.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의 재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법원은 수사기관에 의한 인권 침해에 경종을 울리고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반성했습니다. 만약 엄격한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고문 수사관과 검사, 판사의 책임을 똑같이 나누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재심 재판부의 반성과 사과는 “고문받아 허위자백했다”는 당사자의 호소를 외면한 판사 모두의 몫일 겁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배석판사의 이름도 실명으로 공개했습니다. 이 원칙은 곧 인터넷으로 공개될 ‘조작사건 책임자 사전’에도 그대로 적용될 예정입니다.
김민경 탐사기획팀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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