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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푸른 물바람 휘날리며 내 돈이 달리네

등록 2016-02-12 20:00수정 2016-02-13 11:34

2월10일, 퇴근하는 그들처럼 푸른색 장안스피존 간판을 나선다. 오후 6시, 게임은 끝났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월10일, 퇴근하는 그들처럼 푸른색 장안스피존 간판을 나선다. 오후 6시, 게임은 끝났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르포
박유리의 서울, 공간 ⑧ 화상경정·경륜장
▶ 서울에 스며든 그림자를 바라봅니다. 이 도시에 깃든 고독과 꿈, 욕망과 우울, 좌절과 설움, 사랑과 고립을 그리려 합니다. 낯선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갑니다. 먹고산다는 것, 살아낸다는 것, 생존한다는 것의 아름다움과 비루함을 적어보려 합니다.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물살을 가르는 모터보트, 광명시 경륜장을 달리는 자전거가 실내 화상 경정·경륜장 ‘스피존’으로 들어옵니다. 서울 장안동 스피존에서 돈을 걸고, 따고, 잃었습니다. 돈을 좇아 달렸습니다.

그때 우리는 열광하였다. 두 눈들은 칼끝처럼 화면에 꽂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많던 수백 개의 눈은 순례도 방황도 없이 물보라 일으키는 푸른 물의 경주만을 향해 행진하였다. 혈관이 잡히도록 주먹을 쥐고 뒤흔들며 화면을 향해 고함치며, “씨발, 아, 씨발!” “그렇지! 쭉 가라고!” “아휴, 저 미친!” “씨발, 병신이냐?” “대가리 잡아, 대가리!” “휘감기, 휘감기!” 핏대를 세워 원하고 원망하였다. 우리는 뜨거웠다. 열광은 사람을 타고 상승하여 또 다른 사람을 타고 달아올라 공간을 붉게 전염시켰다. 정신이 팔려 열광하는 그때, 누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훔쳐갔대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종이를 손에 꼭 쥐고서 함성을 질렀다. 우리가 선 곳은 혁명의 광장이 아니다. 빵을 달라, 일자리를 달라, 기회의 평등을 달라, 외치지 않았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개가 아니다, 돈의 노예가 아니다, 선언하지 않았다. 1분, 2분이었다. 2주회 1200m 푸른 물의 경주가 끝나자 함성이 멎었다. 틀린 번호 경주권이 바닥에 버려졌다. 낙엽처럼 후두두 종이가 바닥에 쌓였다. 종이는 우리의 돈. 우리의 돈이었던 종이. 번호를 맞힌 주인들은 은행 창구 같은 곳에 일렬로 길게 줄을 섰다. 차분한 얼굴로, 그렇다고 기쁜 얼굴도 숨긴 채 매너 좋은 시민들처럼 순하게 일렬로 차례를 기다렸다. 전당포처럼 유리로 막아놓은 창 아래 뚫린 구멍으로 손을 집어넣어 경주권을 들이밀면 창문 너머 유니폼 여자가 표정 없이 종이를 받곤 재빨리 돈을 돌려주었다. 그 돈을 지갑에 집어넣는다. 불과 1분50초~2분이었다. 세계 스포츠대회를 응원하듯 열광에 빠진 우리는 1분50초~2분 만에 승자와 패자로 가려져 한 남자가 종이를 버리고, 다른 남자는 돈 창구 앞에 줄을 섰다. 한 남자가 잃은 돈을 다른 남자가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우리의 함성은 조루만큼 뜨겁고 짧다.

20분의 기다림, 2분의 질주

또다시 20분이 시작된다. 기다림의 시간. 하루 16회 경주가 이어진다. 1분50초~2분의 경주가 끝나면 20분간 다음 질주를 대기한다. 화상 경정장 벽에 붙은 여러 화면이 돌아간다. 주식 전광판처럼 끝없이 깜빡인다. 우린 쉴 수가 없다. 다음 라운드 선수들이 경기 전에 시범 항주를 보여준다. 모터보트를 탄 1번부터 6번까지 선수들이 순서대로 경기장을 한 바퀴 돈다. 시범 항주가 끝나면 기록이 나온다. 선수의 오늘 컨디션을 보여준다. 변수는 늘 발생한다. 화면 속 전자시계는 이제 20, 19, 18분 줄어드는 시간을 깜빡인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 머리를 굴린다. 돈을 따려고. 게임하러 와서도 돈을 벌어야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돈을 벌어야 한다. 벌러 오지 않았다가 벌기 위해 고민한다. 돈은 우리에게 일을 시킨다. ‘쾌속정’ ‘미사리’ 같은 경정 잡지들을 펼친다. 하루 전 선수들의 훈련 내용이 적혀 있다. ‘4번, 강한 맛이 없음. 아웃코스에서 한 차례 기습 시도. 관심 요망! 의욕적 스타트와 1턴 전개 나서며 선전 펼침. 시속에 비해 전술 운영 밋밋. 스타트 포인트 잡지 못함. 1번, 총알급 스타트. 위력적인 시속 유지하나 전술 소극적. 관심 요망! 인빠지기와 휘감기로 선두 꿰참. 컨디션 점검에 집중함. 노련미 부족으로 선두권 진입 실패. 2번, 첫 연습에서 출발 지체 후 스타트 재정비. 스타트 꽝! 자신감 부족으로 훈련 내내 손을 못 씀. 스타트와 전술 모두 밋밋. 승부 포인트 노리면서 기복 보임.’

우리는 전광판을 보며 눈치 싸움을 벌인다. 단승, 쌍승, 연승, 복승, 삼복승. 다양한 방식으로 돈을 건다. 1등만 맞히거나, 1등과 2등을 맞히거나, 2등 안에 들어오는 아무나 맞히거나, 1등 또는 2등을 맞히거나, 1~3등에 들 세 사람을 맞혀야 한다. 선택지들은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이젠 눈치 싸움이다. 앞에 보이는 각각의 화면은 베팅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복승 베팅 화면에 ‘1번, 4번’ 조합 배당률 숫자만 유독 깜빡인다. 2등 안에 들어올 두 사람을 맞히는 복승에선 1, 4번 배당률이 제일 낮다는 말이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렸다는 뜻이다. 남들도 저렇게 예상한다는 의미다. 20분, 10분, 5분 시간이 줄어들면서 ‘1, 4번 복승’ 배당률이 2.0 밑으로 떨어져간다. 10만원을 걸어도 20만원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70, 80을 넘어서는 다른 숫자들이 유혹한다. 베팅한 돈의 70~80배를 준다는 뜻이다.

20분간 여유롭게 경주권을 살 수 있지만, 다들 배당률 때문에 선택을 미룬다. 모험이냐, 안전이냐, 분산 베팅을 하느냐. 한 손에 컴퓨터용 사인펜을 들고 또 다른 손에 마킹해야 할 경주권을 쥐고 눈은 배당률을 보여주는 화면과 경정 잡지를 쉼 없이 오간다.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화상경정장엔 행진곡이 울려퍼진다. 1분쯤 남겨놓고 행진곡은 고음으로 치달으며 불안을 자극한다. 장내 안내방송이 나온다. “1분 남았습니다.” 경주권 자동발매기와 대인창구 앞이 발 디딜 틈 없이 미어터진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창구에서 경주권을 사고 나오는 사내와 사려는 사내의 어깨가 부딪친다. 15초, 14초, 13초…. 화면은 시간이 사라지고 있다고 재촉한다. 3, 2, 1, 0초. 줄을 선 사람들 앞으로 여직원은 창구의 커튼을 내린다. 마법처럼 직원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100원부터 10만원까지
내 돈들이 걸린 보트 6대가
미사리 경정장을 달리면
전국 17곳 실내 경정경륜장엔
열광과 욕설 한숨과 탄식

1분50초~2분의 질주 뒤엔
틀린 경주권이 낙엽처럼 떨어져
이제 20분간 배당률 전쟁을 한다
경주권 창구 앞 사내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돈을 걸고

2월5일 서울 장안동 스피존 벽면 화면마다 배당률이 돌아가고 있다. 돈은 사람들을 고민에 빠뜨린다. 배당률 화면을 바라보는 사람들.   박유리 기자
2월5일 서울 장안동 스피존 벽면 화면마다 배당률이 돌아가고 있다. 돈은 사람들을 고민에 빠뜨린다. 배당률 화면을 바라보는 사람들. 박유리 기자

2만7000원

또다시 경주가 시작되고 혁명 광장에 선 시민처럼 소리 지른다. 20분간의 침묵은 끝났다. 우리들은 잘 조련되었다. 2분, 20분, 2분, 20분. 질주하고 쉬고, 질주하고 쉬는 연극 무대에 올라선다. 독재정권을 조롱하듯, 돈을 건 보트가 느려터지면 야유를 보낸다. 함성을 지른다. “1번, 4번 쭉, 쭉! 그렇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두 소리친다. 돈이 그렇다. 여기선 ‘돈과 나’를 확인한다. 멀뚱멀뚱 구경할 땐 이상한 타인들. 돈을 걸면 내부자가 된다. 지문도 대사도 없는데 본능처럼 돈을 좇아 모터보트를 쫓아 소리치고 한숨 쉰다. 매월 정기적 기부? 취재비에 아낌없는 사비 투자? 돈에 의연한 태도? 그건 취미나 스타일처럼, 돈을 쓰는 행태나 스스로 착각하는 ‘돈과 나’일 뿐. 지금 이 순간 내 돈이 걸리고 돈이 모터보트를 타고 눈앞에서 질주하면 눈을 돌려 푸른 먼 산 바라볼 자 있는가. 돈은 내 팔목을 잡고 이끈다. 돈은 본능이다. 어, 어 하며 엉거주춤 따라가다 쫓아 뛴다. 다음날도 이곳을 찾았다. 2월5일 금요일. 전날의 모터보트 대신 자전거 레이스, 경륜이 벌어진다.

“기자시죠? 좀 따라가 줘야겠습니다. 저희 여자 직원도 있고요. 여긴 좀…. 조용한 데 가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왜요? 이리로 오라 하세요.”

“저희 시시티브이(CCTV)에 다 찍혀요. 이런 식으로…. 고발 조치당할 수도 있어요.”

취재로 나왔지만 나는 베팅도 하고 휴대전화 사진을 몰래몰래 찍었다. 직원에게 경주권을 보여줬다.

“이거 샀는데요.”

“알겠어요. 그럼 경주 끝나면 나가세요.”

경주가 끝났다. 내 경주권 번호가 맞았다. 직원이 또 찾아온다.

“이제 나가셔야 합니다.”

“경주가 끝났지만 순위 확인 방송을 봐야 해요.”

순위 확인 방송을 하자 직원이 재차 찾아온다.

“이제 가셔야 합니다.”

“맞혔는데요.”

직원이 내 경주권을 받아서 직원 사무실로 들어간다. 직원을 따라, 실은 경주권을 따라 걸어갔다. 직원이 사무실에서 나와 2만7000원을 건넸다. 상대는 내가 기자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직업을 알고 있다. 2만7000원을 받았다. 손안에 든 만원, 천원권이 부끄러웠다. 아니, 부끄럽다는 말은 숭고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점퍼 주머니에 재빨리 돈을 쑤셔넣었다.

계단을 따라 나갈 때 남자 직원이 따라왔다. 전날에도 직원은 휴대전화 카메라를 몰래 찍자 이렇게 말했었다. “여긴 공공기관입니다. 제 말을 따라주셔야죠.” 여긴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이사장을 임명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전국 17곳에 ‘스피존’을 운영한다. 입장료 1500원을 내면 개별소비세 800원, 교육세 240원, 부가가치세 136원이 세금이다. 공단은 1996~2014년 경륜·경정으로 6조9681억원의 재원을 마련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남자들의 까만 머리가 보였다. 단정한 옷차림은 없다. 손에 검정 비닐봉지를 가방 대신 든 남자부터 오래돼 보이는 후줄근한 등산복 바지에 운동화들. 경찰공무원처럼 근엄한 직원은 1층에 도착할 때까지 졸졸 따라왔다. 2월5일 오후 3시께, 장안동 ‘스피존’. 정문을 나섰다. 같은 시간 정문을 벗어나던 남자가 경륜·경정장 ‘스피존’ 건물 옆에서 사탕과 미니 엿을 파는 노점상에게 호탕하게 말한다. “내가 여기서 사탕 사서 딱 붙었잖여! 허허.” 돈을 딴 남자가 싸구려 국밥을 파는 골목 사이로 사라져간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돌아왔다. 지하철을 타고 점퍼에 손을 찔러넣었다. 손에 잡힌 돈 몇장이 서걱거렸다.

돈의 풍경

설 연휴가 끝나지 않은 2월10일 장안동 스피존을 다시 찾았다. 후줄근한 옷을 입은 남자들이 정문에서 담배를 태운다. ‘쾌속정’ 잡지와 검은색 컴퓨터 사인펜을 파는 노점상도 장사를 벌인다. 담배 태우는 모르는 남자들의 눈길이 나를 향했다. 아는 사람을 향하는 것 같다. 수군거렸다. 이곳에 늘 오는 남자들은 서로를 안다. 극소수의 여자들, 그것도 젊은 여자는 나밖에 없으니. 정문에서 ‘기자라서’ 입장을 거부당했다. 검정 비닐봉지 들고, 허름한 등산복 입은 이들에게서 세금 징수해서 국가에 내는 곳. 세금 내는 이곳에 기자들은 입장이 안 된다.

그날 동대문 쇼핑몰 밀리오레 10~12층에 자리한 스피존을 찾았다. 쇼핑몰 이미지에 가려 밀리오레 고층에 사행성 경륜·경정장이 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예배당의 기도하는 긴 의자들처럼 경정 화면을 향해 의자가 일렬로 놓였다. 한 노인 옆에 앉았다.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은퇴하고 경륜, 경정, 경마장을 월화수목금토일 다닌다고 했다. “여기 빠지면 패가망신해. 한 경주당 10만원 제한한다고 우습게 보지 마. 집 날린 사람도 있어.” 뒤에 혼자 앉은 더벅머리 남자도 심심해선지 말을 건넨다. “여기 도박장이야. 드러내놓고 하는 공인된 도박. 1인당 1회에 10만원 그린카드로 제한해도 한 사람이 여러 개 쓰는데. 직원 아무도 신경 안 써.” 건물 층층이 사람이 드글드글한 장안점과 달리 밀리오레점은 사람이 드문드문 앉았다. 장안점과 달리 현금 대신 경주권 구입 내역이 찍히는 ‘그린카드’로만 경정·경륜에 참여한다. 그린카드는 주민번호 없이 휴대전화 번호로만 발급받는데 잃어버렸다고 하면 또 발급해준다고 노인이 일러줬다.

밀리오레 12층에 올라갔다. 입장료 1500원인 아래층과 달리 5000원을 내야 입장하는 구역이다. 지정좌석제다. 항공기 비즈니스 좌석처럼 쿠션감이 좋은 등받이 가죽의자에 소지품을 올려놓을 테이블이 달려 있다. 의자 앞에 개인별 모니터가 부착돼 있다. 경주마다 직원 창구나 무인발권기에 가지 않고 앉아서 카드를 넣고 베팅한다. 내 옆자리, 정장구두에 감색 다운패딩을 입은 중년 남자가 메모지에다 선수별 특이사항을 기록한다. 메모지, 잡지, 개인 모니터를 번갈아 보며 신중하게 펜을 굴린다. 12층 옷차림은 세미정장부터 스웨터까지 다른 경정장보다 차분하다. 안면 있다고, 매일 본다고 인사하는 아래층과 달리 이곳 사람들은 조용히 개인 베팅에만 몰두한다. 경주가 시작되면 가죽의자에 깊게 기대앉아 화면을 보며 조용조용 응원한다, 한숨 쉰다. 또다시 돈을 건다. 소리치고 욕하는 이가 없다. 도박 풍경도 지갑 두께에 따라 다르다. 돈을 좇는 본능이 장소마다 옷을 갈아입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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