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제주항 근처 주차장에서 배에 선적될 화물차에 화물이 실리고 있다. 여객선에 실을 화물차는 계근장에서 중량을 잰 뒤 계근표를 보여주고 여객선에 선적해야 하지만 계근장이 부두에서 떨어져 있어, 계근을 마친 화물차에 짐을 더 싣거나 빼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제주/박태우 기자
“안전, 안전 하지만 그게 제대로 되겠어요?”
2년 전 세월호 참사 때 생존한 화물기사 ㅇ씨는 참사 1년 반 만에 다시 화물 일을 시작했다. 제주에서 화물차에 농산물 등을 싣고 배를 타고 육지로 나르는 게 그의 일이다. 보통 한 달에 7~8번 육지에 나갔다 와야 수지가 맞지만 ㅇ씨는 2~3번밖에 나가지 않는다. 그는 “날이 궂을 땐 배 안 타고 건설현장에서 일한다”며 “화물선도 절대로 안 탄다”고 했다.
제주 세월호 피해상담소에 따르면, 화물기사가 대다수인 제주 생존피해자 24명 가운데 18명이 크고 작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고 있다. 제주지역 생존자 대표인 오용선씨는 트라우마와 부상 후유증으로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해양경찰이 구하지 못한 승객 20여명을 구조해 ‘세월호 의인’으로 알려진 화물기사 김동수씨는 18일 오후 제주도청사 로비에서 “세월호 진상규명도 안 되고, 치료도 안 되는 이 나라가 싫다”고 소리치며 손목을 그었다. 그의 자해는 이번이 세 번째다.
‘세월호 의인’ 자해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 20여명을 구조해 ‘파란 바지의 의인’으로 불리는 김동수(51·제주시)씨가 18일 제주도청 1청사 로비에서 “세월호 진상규명도 안 되고 치료도 안 되는 이 나라가 싫다”고 외치다 흉기로 양쪽 손목과 복부 등을 자해한 뒤 119구급대 등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김씨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제주/연합뉴스
화물기사 가운데 약 80%는 다시 일을 하고 있지만 ㅇ씨처럼 예전처럼 일을 하지 못한다. 화물차를 다시 구입했더라도 제주도 안에서만 일을 하거나, 화물선을 타지 않는 식이다. 배를 탄다고 해도 배 안에서 잠을 자지 못한다. ㅇ씨는 “배에서 내려 서울로 가려면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꼭 배 안에서 잠을 자야 하는데 불안해서 잠을 못 잔다”며 “수면제를 받아서 먹거나 가급적이면 시간이 별로 안 걸리는 노선을 택해 배를 탄다”고 했다.
ㅇ씨는 여객선 안전은 적잖이 달라졌지만 화물선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지난해 11월26일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화물선 사고를 언급했다. 당시 사고는 풍랑주의보가 발령된 가운데 갑자기 발생한 너울에 배가 균형을 잃으면서 선적 트럭이 파손되는 등 화물기사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는 “아는 동생이 배가 넘어가고 있다고 전화를 해 와서 순간 소름이 돋았다”며 “화딱지가 나서 해양수산부에 전화를 걸어서 또 사람 죽이려 드냐고 따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4일에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실제로 1000t 이상 화물선의 경우엔 지금도 풍랑주의보나 경보가 발령되더라도 선사의 판단에 따라 배를 출항시킬 수 있다.
화물기사들은 여객선 화물 선적 역시 여전히 문제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세월호 참사 당시 세월호에 실린 화물 중량이 정확하게 얼마인지 아는 사람은 지금도 없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에 실린 화물 중량을 부피와 무게를 섞어 계산했다. 세월호 3등 항해사는 선장 서명이 적힌 출항 전 여객선 안전점검 보고서를 화물과 승객 수를 빈칸인 채로 적어 운항관리자에게 제출했고, 배가 출항하고 나서야 그 중량을 무선으로 알려줬다. 화물의 적재 상태 등을 확인해야 할 운항관리자는 배가 물에 얼마나 잠기는지를 표시하는 ‘흘수선’만 육안으로 확인한 뒤 세월호에서 불러주는 중량을 채워넣었다. 당시 세월호는 화물을 많이 싣기 위해 평형수를 뺀 뒤 화물을 실은 바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여객선에 화물차를 실을 경우에는 계근장에서 화물차의 총중량을 전자식으로 측정한 뒤 계근표를 보여줘야만 여객선 탑승이 가능하다. 그러나 바뀐 제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화물량을 파악하긴 어렵다. 계근장이 부두에서 떨어져 있어, 계근을 마친 뒤에도 화물을 추가로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겨레>가 지난달 31일 제주항 부두에 나가 보니, 계근을 마친 화물차들이 부두 바로 앞에서 화물을 추가로 싣는 장면이 목격됐다. 한 화물차 기사는 “계근 비용(5000원)을 화물기사가 부담하는데, 단골 계근장에서는 ‘가라’(가짜)로 계근표를 써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화물기사들은 부두 입구에 계근장비를 설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해양수산부 쪽은 “부두 근처 교통혼잡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불시에 이동식 계근장비로 실제 화물량이 얼마인지 점검하고 있지만, 지난해 제주항에서 이동식 계근장비를 이용한 것은 19차례에 그쳤다.
게다가 제주와 육지를 오가는 화물차는 대부분 4.5t 트럭을 개조한 축장차인데 최대 20~25t씩 싣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김용섭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제주지부장은 “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양을 차량별로 제한하고 전자식으로 계근한다면 운임 과당경쟁도 줄어들어 바다 위, 도로 위 과적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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