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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로스쿨 교수들의 ‘자소서 불감증’

등록 2016-05-04 19:31수정 2016-05-04 21:07

현장에서
“자기소개서에 아버지 직업을 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학생 선발 과정이 불공정했다는 의혹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로스쿨 교수들로부터 흔하게 들었던 말이다. 이원우 서울대 로스쿨 원장도 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직업을 전혀 기재하지 않으면, ‘용접공 출신의 아버지가 노동 문제를 겪고 그래서 노동법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스토리도 전혀 얘기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 역시 “성장하는 과정에서 아버지 직업이 말단 공무원인데, 그 아버지를 보며 공직자를 꿈꿨다 말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법조인 되겠다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용접공·말단공무원의 자녀나 법원장·검사장·대법관의 자녀나 ‘차별 없이’ 평가받을 수 있다는 요지다.

하지만 법학적성시험(리트)이나 영어성적, 학점 등 모든 정량지표들이 비슷한 수준인 용접공 자녀와 대법관 자녀가 경쟁할 때 용접공 자녀가 더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계층 이동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들고 ‘금수저·흙수저론’이 회자되는 현실 탓이다. 교육부가 최근 3년치 합격자 6000명의 자소서를 전수조사한 계기도 국회의원 아버지가 로스쿨 졸업시험에서 낙제한 자녀를 위해 해당 로스쿨 원장을 만난 일이었다. 신평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 4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대다수 교수들은, 법조인 자녀가 법조에 대한 이해가 깊고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졸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 학생에 대해 대체적으로 호감을 갖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용접공 자녀가 합격했다는 것은 개별 사례일 뿐, 25개 로스쿨 가운데 어느 곳도 소득 계층별 합격생 분포 현황을 공개한 적이 없다.

로스쿨 교수들이 자주 거론하는 미국 사례도 한국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다. 한 국립대 로스쿨 원장은 “미국 로스쿨은 표준 자소서 양식 등에 오히려 ‘가족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라, 그게 지원자 개인에게 왜 중요한지 기술하라’고 주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미국의 실력주의는 가족의 배경까지 개인의 실력으로 인정하는 굉장히 포괄적인 의미로 한국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정원 제한이 없는 미국과 달리 한국 로스쿨 정원은 2000명으로 정해져 있고 이들에게만 변호사시험 자격이 주어지므로 학생 선발이 갖는 무게가 다르다”고 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사정관은 “3년 전까지 대학 입학 자소서에 성장배경 항목이 있을 때, ‘아버지가 미국 어느 기업의 대표이사(CEO)다’라고 쓴 자소서가 나왔다. ‘이렇게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되면서 해당 항목이 삭제됐다”며 “입학이든 취업이든 가족 배경을 배제하고 지원자 개인의 능력이나 역량만을 평가하는 추세인데 로스쿨만 뒤처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진명선 기자
국민들은 단지 ‘금수저’가 법조인이 되는 데 반감을 갖는 게 아니다. 공정한 절차를 거친 금수저 법조인은 얼마든지 인정할 수 있는 게 국민 정서라는 것을 로스쿨 교수들만 모르는 것 같다. 전국 25개 로스쿨의 협의체인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교육부 발표의 후속으로 다음주 중 입시제도 개선책을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다. 로스쿨 교수들의 인식이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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