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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든 논다, 어른들 세상으로 가두지 않으면

등록 2016-05-31 19:52수정 2018-10-05 16:51

지난 27일 오전 순천시 에코그라드호텔 오리엔탈룸에서 놀이터 전문가 네 명이 <한겨레>와의 대담 전 ‘놀이와 놀이터’ 관련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왼쪽부터 편해문 기적의 놀이터 총괄 디자이너, 수전 지 솔로몬 놀이터 이론가, 아마노 히데아키 일본모험놀이터만들기협회 총괄이사, 귄터 벨치히 놀이터 디자이너. 순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27일 오전 순천시 에코그라드호텔 오리엔탈룸에서 놀이터 전문가 네 명이 <한겨레>와의 대담 전 ‘놀이와 놀이터’ 관련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왼쪽부터 편해문 기적의 놀이터 총괄 디자이너, 수전 지 솔로몬 놀이터 이론가, 아마노 히데아키 일본모험놀이터만들기협회 총괄이사, 귄터 벨치히 놀이터 디자이너. 순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놀이터 전문가 대담
귄터 벨치히 독일 놀이터 디자이너

수전 지 솔로몬 미국 놀이터 이론가

아마노 히데아키 일본 모험놀이터만들기협회 이사

편해문 한국 기적의 놀이터 총괄 디자이너

사회: 양선아 기자

지난 26일 전라남도 순천시 순천만 국제습지센터 콘퍼런스홀에서 열린 ‘어린이놀이터 국제심포지엄’의 열기는 뜨거웠다. ‘기적의 놀이터 1호 개장’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이 심포지엄에는 독일의 귄터 벨치히, 미국의 수전 지 솔로몬, 일본의 아마노 히데아키, 한국의 편해문 놀이운동가까지 네 나라의 놀이터 전문가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놀이터의 미래에서 아이들의 미래를 보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뒤 토론을 벌였다. <한겨레>는 이들에게 아이들의 놀 공간, 놀 시간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단독 대담을 진행했다. 대담은 지난 27일 오전 순천시 에코그라드호텔 오리엔탈룸에서 열렸다.

어른들은 몰라요

아이들 세계는 놀이의 세계
공부보다 쉬는 시간에 더 많이 배워
학교에서 놀이를 아예 교과목으로

공간 없어서 놀지 못한다고 하는 건
놀지 못하게 하려는 알리바이에 불과

놀 권리 선언이나 헌장 많아지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어

양선아(이하 양) 한국의 초등학생 10명 중 8명은 사교육에 시달리며 잘 놀지 못한다. 아동의 삶의 만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수년째 꼴찌다. 아이들의 놀 시간, 놀 공간의 문제 어떻게 보나?

통제가 기본인 도시화가 큰 영향

귄터 벨치히(이하 귄터) 아이들의 세계는 놀이의 세계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하수구에서조차도 놀 수 있는 존재다. 놀 공간이 없어서 놀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려는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아이들은 도시 아무 곳에서나 놀 수 있어야 한다. 놀이에 대한 어른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학교 운동장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이 돼야 한다.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놀이를 통합시키자. 학교에서 하루 1시간을 아예 놀이시간 교과목으로 채택하는 것은 어떨까.

아마노 히데아키(이하 아마노) 환경과 공간에 대해서는 벨치히와 같은 견해다. 나 역시 아이들은 어디서든 놀 수 있는 존재라고 본다. 어른들의 놀이에 대한 인식이 가장 큰 문제다. 아이들을 통제하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도시화가 아이들의 놀이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시는 ‘컨트롤’(통제)에 입각해서 형성된다. 예측 불가능한 것을 싫어한다. 사실 도시의 모든 요소들 중에서 가장 컨트롤 안 되는 것이 아이들일 것이다.(모두 웃음)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을 자꾸 통제하려 한다.

수전 지 솔로몬(이하 수전) 어른들은 “성공하려면 공부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더 많이 배운다. 어른들이 교육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쉬지 않고 계속 공부만 하는 아이보다 휴식 시간이 충분히 보장된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덜 불안해했다.

편해문(이하 편) 지난해, 올해 한국에서 아이들의 놀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다. 그만큼 우리 아이들의 놀 권리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놀 권리를 알리기 위한 선언이나 강령, 놀이 헌장은 많이 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로드맵이 없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구체적으로 놀 시간을 만들고, 놀 장소를 제공해야 한다.

위험하다고요?

아이들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 발휘
안전 지키는 능력 키우는 게 최고 안전

지루한 표준적 놀이터에서
되레 안전사고가 더 많이 나

교통사고로 사람들이 죽는다고
도로를 폐쇄해야 하나

모험놀이터, 부모가 나서 가능

그런 의미에서 36년 전부터 시작된 일본 모험놀이터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놀이터에서 불놀이가 가능하다는 것도 신선했다. 그러나 어른들의 거부감이 강했을 것 같다. 이 운동이 유지될 수 있었던 저력은 어디에서 나왔나?

일본에서 모험놀이터 운동이 시작된 시기는 80년대로 지금의 한국처럼 아이들을 너무 몰아붙인 시기다. 그래서 왕따, 자살 문제가 심각했다. 부모들이 그때부터 아이들의 환경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 한국은 아직 부모들이 스스로 이런 운동을 해야 하는 당사자인 줄 모르고 있다. 이제 부모 스스로 나서는 단계로 갈 필요가 있다.

아마노 모험놀이터가 지속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부모들 스스로 이 운동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반대 의견이 많지 않았고, 반대가 있더라도 부모 스스로 대적할 준비가 돼 있었다. 두 번째 놀이활동가(플레이 워커)의 힘도 컸다. 어린아이의 눈높이에서 놀 수 있는 어른들을 확보했다는 점이 주효했다.

일본의 모험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다. 아마노 히데아키 제공
일본의 모험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다. 아마노 히데아키 제공

수전 미국도 한국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 아이들을 공부하라고 몰아붙이고 시험을 잘 보라고 강요한다. 나는 미국에서 부모가 나서 뭔가 해보려다 좌절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봤다. 부모들이 나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톱다운(Top-down) 방식이 낫다. 놀이 공간에서는 부모들도 덜 강박적이 되고, 밀착 감시도 안 한다. 부모 설득을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부모들의 합의가 오래 걸리니까 부모와 아이들에게 먼저 매력있는 공간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솔로몬이 심포지엄에서 보여준 풍력발전소의 ‘날개’를 이용한 놀이터나 ‘석유 탐사기’를 이용한 놀이터 등은 인상적이었다. 버려질 수 있는 산업 폐기물들을 재활용하는 놀이터 사례가 많나?

수전 유럽에 많다. 비싼 돈을 들여 놀이기구를 구입하지 않고도 사물의 용도를 전환하거나 산업 폐기물을 재활용해 비용을 낮춰 놀이터를 설계했다. 조경가, 설계가, 조각가와 같은 예술가를 동원해 그런 산업 폐기물의 용도를 전환하거나 재활용해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이 그런 놀이터를 좋아하나?

수전 당연히 아이들은 그런 놀이터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모험도 감수하고 위험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개방적인 부모들은 이런 색다른 놀이터를 훨씬 더 선호한다.

다양한 도전으로 세계 넓혀나가야

어제 심포지엄 참석자들이 가장 관심 가진 의제는 놀이터의 안전, 놀이터에 들어가는 고비용 문제였다. 어떤 이들은 ‘기적의 놀이터 1호’에 들어간 돈이 5억원인데 고비용 아니냐는 문제제기를 했다. 산과 숲이 많으니 오히려 아이들을 숲에 데려가 놀고, 놀이 활동가를 지원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수전 부모들은 놀이터에서 발생한 사고 건수만 따로 떼놓고 본다. 통계를 볼 때 맥락을 살펴야 한다. 미국의 경우 7년 전 통계이지만 9년 동안 놀이터에서 발생한 사망 건수는 40건 정도였다. 부모들은 그 수치만 보면 기겁을 하지만, 미국 아이들은 교통사고로 하루에 3명꼴로 죽는다. 또 놀이터에서 놀다 응급실로 실려간 아이들이 20만명인데 그 가운데 입원한 아이들은 6명뿐이었다.

귄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안전사고가 많이 나는 놀이터는 지루한 놀이터라는 점이다. 표준적인 놀이터에서 더 사고가 많이 난다. 아이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발휘한다. 독일은 법이 발달해 있고 규범이 많은 나라인데도 1년에 2명씩 아이가 놀이터에서 사고로 죽는다. 그렇다고 놀이터를 폐쇄하거나 안전하고 지루하게만 만들 것인가? 교통사고로 사람들이 죽는다고 도로를 폐쇄하는 논리와 뭐가 다른가.

아마노 본인의 안전을 스스로 지키는 능력을 키우는 것 이상의 안전이라는 개념이 있을까? 사람은 생명이 주어진 순간부터 죽음이라는 위험(리스크)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다. 교통사고, 질병 등등 얼마나 많은 위험이 우리 삶에 존재하는가. 최악의 위험(리스크)은 외부로부터의 요인이다.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어른들이 전쟁을 일으켜서 아이들이 죽어간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말도 안 되는 위험이다. 완벽한 안전이라는 개념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아이들은 삶 속에서 다양한 도전을 하며 본인의 세계를 넓혀 나가야 한다. 놀이터는 아이들이 그런 도전을 해볼 수 있는 장소다. 아이들은 도전하면서 다칠 수 있다. 이때의 위험(리스크)은 외부로부터 강요된 위험이 아니라 본인이 삶을 개척하기 위해 아이들 스스로 선택하는 위험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우리 아이가 안전하게 살아있으면 돼’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는 부모들이 아이가 만족할 만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진심으로 바랐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서 살아줘’가 아니라 그 아이가 스스로 반짝반짝 빛나도록 부모들이 도와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험’(리스크)는 아이에게 필수적인 요소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위험을 만나야 한다. 다만, 어른들은 아이들이 다치는 정도를 작은 규모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은 삶 속에서 다양한 도전을 하며 본인의 세계를 넓혀나가야 한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그런 도전을 만난다. 아이들은 도전하면서 다칠 수 있다. 이때의 위험(리스크)은 외부로부터 강요된 위험이 아니라 본인이 삶을 개척하기 위해 아이들 스스로 선택하는 위험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다치는 정도를 작은 규모가 되도록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고비용이라고요?

폐기물 등 용도 바꾸고 재활용
조경·설계·조각가 등 예술가가 멋지게
핵심은 놀이기구가 아니라 사람

멀리 숲속 놀이터 가는 것도 좋지만
걸어서 가는 동네 놀이터가 더 중요

몇억 든다고 비싸다면 자린고비
어른들 쓰는 비용의 백분의 일도 안돼

블록 끈 나무판자 등 사는 것이 전부

수전 숲 놀이터는 아이디어는 좋지만 차를 타고 숲으로 가야 한다. 그 자체로는 멋지지만 아이들에게는 동네에 있는 놀이터가 더 중요하다.

아마노 솔로몬 의견에 동의한다. 놀이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이 스스로 걸어서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험놀이터에서는 거의 돈이 안 들어갔다. 우리가 구입하는 것은 도구, 공구, 재료가 되는 블록, 벽돌, 끈, 나무판자가 전부다. 1년에 800만원 정도 들었을까. 더 중요한 문제는 놀이기구가 아니라 사람이다. 안전에 대한 고민을 할 거면 사람한테 투자하라. 아이들에게 닥칠 위험을 최소화해줄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결국, 고용의 문제다. 아이들에게 닥칠 위험(리스크)을 최소화할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돈을 잔뜩 들여 놀이터를 만들어놓으면 아이들이 어떻게 망가뜨리겠나. 어른들도 당연히 보존하려고 할 것이다. 놀이 기구나 놀이터는 아이들이 망가뜨릴 것을 전제하고 만들어야 한다. 돈을 안들이면 안들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귄터 아마노 선생님은 모험놀이터에서는 비용이 안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얘기를 할 때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돈이 안 들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 일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모험놀이터의 놀이활동가(플레이워커)가 자원 봉사를 했다고 했는데, 나는 그런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선생님, 유치원 선생님도 아이들을 가르치며 돈을 번다. 놀이 활동가는 아이들의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이고 놀이를 가능하도록 보살펴주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그런 사람들이 자원 봉사를 해야 하는가.

벨치히 선생님은 “지금 세상은 어른들이 어른들을 위해 만든 세상”이라고 말했다. 지금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세상 속에서 사느라 너무 힘들다. 놀이터에 5억 썼다고 고비용이라고? 너무나 자린고비 같은 이야기다. 자신들이 다른 것들을 위해 쓰는 비용을 생각해보라. 그것의 1천분의 일, 100분의 일도 안 된다. 이런 이야기 자체가 “너희(아이들)는 조그만 존재이고 시혜를 기다리는 자들이야”라는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

아마노 우리는 아이들에게 투자를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만큼 아이들과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확실하게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놀이터 중요하고 아이가 중요하다면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돈을 줘야 한다. 아이들에게 완성품을 주면 소비자가 된다. 놀이는 생산적인 활동이고, 생산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본인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나무가 있으면 자르고 싶어하고 구덩이를 파는 것을 좋아하고 망가뜨리고 쓰러뜨리는 것을 좋아한다. 기지도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에는 다양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위험에서 안전을 보장해줄 어른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확실히 투자해야 한다. 놀이에 대한 인식 개선, 놀 공간의 확보, 놀이 활동가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세 분의 전문가가 얘기한 것처럼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완전하게 보호하는 안전은 없다. 다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위험을 다룰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렇다면, 위험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 나올까? 그 장소와 사람들에 대한 신뢰, 그리고 지속성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기적의 놀이터 1호에서는 면밀한 사고 일지를 작성하고 있다. 반창고 하나 붙이는 것까지 다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는 신뢰를 주기 위해서다. 무조건 아이들을 위험에 노출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순천/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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