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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상처받은 단원고 졸업생들, 그건 네 탓이 아니야”

등록 2016-08-09 17:14수정 2016-08-09 17:20

단원고 김은지 스쿨닥터가 안산에 ‘마음센터’ 연 까닭
참사 간접피해 학생·교사·주민도 왜곡보도 등에 고통

지난 6일 세월호 참사 당시 2학년 학생과 교사들이 사용하던 안산 단원고 교실에서 희생자 오영석 학생 어머니 권미화씨가 편지를 쓰고 있다.  이 교실은 8월21일까지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으로 이전될 예정이다. 안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6일 세월호 참사 당시 2학년 학생과 교사들이 사용하던 안산 단원고 교실에서 희생자 오영석 학생 어머니 권미화씨가 편지를 쓰고 있다. 이 교실은 8월21일까지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으로 이전될 예정이다. 안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세월호 참사는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김은지 전 단원고 마음건강센터장도 그런 사람들 중 한명이다.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그는 참사 직후인 2014년 4월18일 단원고에 자원봉사를 위해 달려가면서 학교와 인연을 맺었다. 석달 뒤인 그해 7월부터 ‘스쿨닥터’가 됐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올 6월 말, 김 전 센터장과 임상심리사 2명, 행정실무사 1명이 지난 2년간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의 마음을 돌보던 ‘마음건강센터’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2014년 참사 뒤 교육부는 단원고에 심리치료 및 상담팀을 배치해 2016년 말까지 운영한다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단원고 마음건강센터 운영 중단에 대해 “애초 고용계약 기간이 6월 말까지였다. 학교 쪽에선 올해 들어 상담 건수가 줄어 기존 상담센터가 (마음건강센터가 해오던 일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보아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단원고를 떠난 김 전 센터장은 그러나, 쉽게 안산 단원구를 등지지 못했다. 그는 7월11일 단원고에서 2㎞ 남짓 떨어진 안산문화광장 바로 옆 상가 5층에 마음토닥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을 개원했다. 병원 안에는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 공간 말고도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세월호 피해자들에 대한 상담이 진행되는 ‘마음건강센터’였다. 단원고에서 함께 일했던 임상심리사와 행정실무사도 이 병원 마음건강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김 전 센터장은 매주 월요일 하루 동안 시간을 비워 세월호 관련 상담만 진행한다. 학교 안에선 상담을 받지 않았던 교사나 대학에 진학한 생존 학생들이 여전히 이곳을 찾고 있다. 8일 김은지 전 센터장에게 왜 연고도 없는 안산에 눌러앉게 됐는지 물었다.

-서울에 살고 있고 특별한 연고도 없는 안산에 병원을 개원한 이유가 궁금하다.

=애초 재난 지역 심리지원은 1~2년 계획만으로는 끝날 수 없는 일이다. 정신과 치료 자체가 환자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상황이나 재난을 겪은 사람들은 ‘마음을 털어놓기로 결심한’ 의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진료하던 환자들이 계속 잘 될 수 있도록 살피는 것이 의사의 일이다. 치유를 이어나가기 위해 안산에서 병원을 개원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세월호에서 살아 돌아온 직접 피해자뿐 아니라 교직원들과 참사 당시 1·3학년 학생 같은 간접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병원 안에 마음건강센터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더라. 마음건강센터를 어떻게 꾸려갈 예정인가.

=세월호 피해자들이 우리를 찾아올 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 병원과 마음건강센터 공간을 분리했다. 세월호 관련 지원 활동을 지속하고 싶다는 우리의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처음엔 병원을 열심히 운영해서 수익 일부를 마음건강센터 쪽으로 적립하는 걸 생각했는데 너무 큰 꿈인 것 같다. 차차 마음건강센터를 어떻게 운영할지 방법을 찾을 거다. 병원과 같이 운영하되 비영리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을 만드는 쪽으로 계획하고 있다.

단원고 스쿨닥터였던 김은지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을 도닥여온 마음건강센터는 6월말 문을 닫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단원고 스쿨닥터였던 김은지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을 도닥여온 마음건강센터는 6월말 문을 닫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최근 김 전 센터장은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로부터 의뢰를 받아 ‘세월호참사 피해자 등에 대한 언론보도 피해 및 명예훼손 실태조사’ 보고서를 펴냈다. 설문조사 결과, 생존 학생들과 부모·참사 당시 단원고 3학년 및 교직원·안산지역 주민 등 직·간접 피해자 163명 가운데 68.5%(85명)는 “세월호 관련 보도나 인터넷 게시물을 보고 고통받았다”고 답했다. (▶관련 기사 : “친구 팔아 대학 간다는 말에 멘붕”)

세월호 참사는 재난을 직접 경험한 사람뿐 아니라 피해자와 긴밀한 연관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트라우마를 안겼다. 가라앉는 배를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 희생자 대다수가 고등학생이었던 현실, 무분별한 보도, 인터넷 비난 글 등이 이러한 특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1년여 동안 세월호와 관련한 명예훼손·모욕·음란물 유포 등으로 처벌된 판결문을 보면, 문제가 된 표현에서 고등학생·여성·안산 지역 특징에 대한 혐오와 조롱이 나타난다고 했다. 이러한 표현은 단원고나 안산과 관련된 이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김 전 센터장은 직접 피해자뿐 아니라 간접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가 관심을 더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참사 당시 단원고 구성원, 지역 주민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인터넷 게시물로 인해 상처가 컸나?

=참사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힘들 게 뭐가 있냐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경우 미디어의 과열 경쟁에 따라 무분별한 보도가 이어졌고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통해 참사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 표명이 활발했다. 간접 피해자들도 세월호를 비하하는 글에 노출되면 참사로 인해 갖게 된 심리적 어려움이 더 커질 수 있다. 세월호 관련한 기사를 자기 이야기라고 인식하고, 그 밑에 달리는 댓글도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에 올린 글에 악플이 달리면, 나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지는 것과 같다. 그런데 사회에선 간접 피해자들이 받을 수 있는 상처에 대해선 ‘자기가 당사자도 아닌데. 그냥 댓글 안 보면 되지’ 라고 하기 쉽다는 거다.

-마음건강센터가 학교 밖으로 나오자, 비로소 이곳을 찾는 선생님도 있다고 들었다.

=교사들은 참사 1~2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자기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었다. 2주기가 지나면서 그런 교사들이 더 생기는 게 아닐까 싶다. 너무 많은 아이들을 잃은 것, 동료를 잃은 것, 본인이 속해있는 학교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대형 재난이 일어난 것, 참사 수습과정에서 겪은 여러 가지 어려움 등이 누적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 불안으로 발전된 경우가 많다.

2015년 1월9일 경기 안산시 단원고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생존한 2학년 학생이 졸업생들에게 ‘보내는 글’을 읽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안산/공동취재사진
2015년 1월9일 경기 안산시 단원고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생존한 2학년 학생이 졸업생들에게 ‘보내는 글’을 읽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안산/공동취재사진

-올해 졸업한 생존 학생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생존 학생들 개개인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 즉 외상 후 성장 중이다.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전공으로 진로를 바꾼 학생도 있다. 처음엔 단원고 출신이라고 밝히는 걸 무서워했고 어떻게 밝힐지가 큰 숙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단원고 생존 학생임이 알려졌는데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산 지역 공동체 자체는 여전히 여러 가지 문제로 갈등이 많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공동체 회복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보고서를 보면, 간접 피해자 가운데 2014년 당시 단원고 3학년 학생들의 상처가 깊더라. 심층면접에 응한 6명 가운데 6명 모두 언론보도 및 인터넷 게시물로 인한 정서적·신체적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참사 이후 세월호 특별법 이야기가 나오면서 정원외 특별전형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이냐는 논의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2014년 당시 단원고 3학년 학생들은 특별전형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이와 관련해 오해를 많이 받았다. 사람들이 참사를 겪은 2학년 학생들 앞에선 민감한 이야기를 꺼내는 걸 조심하지만 3학년 학생들에겐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간접 피해자들이 많다.

김 전 센터장은 2014년 당시 3학년 학생들 소식을 묻자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들이 이러한 기사를 보고 ‘내가 힘든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2014년 당시 단원고 3학년이었던 이들은 올해 봄 심층면접 조사에서 이러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대학 입학 뒤 자기소개 때) ‘저는 안산이다. 단원고다’ 그러면 그때부터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해요. 선배들이 ‘쟤 그럼 특례야?’ 그래요. 저는 ‘아니에요 특례는’ 이렇게 말은 해주는데 믿지는 않아요. 세월호 1주기 날 공부를 하고 있는데 ‘너 왜 공부해?’ 이렇게 물어요. 단원고 출신이지만 시험 기간이라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너 안 슬퍼?’라고 물을 때마다 단원고란 이름을 지우고 싶다는 심정이 들어요.”

“교실이나 그런 거에 대해서 안 좋은 기사가 나오면 또 유가족들 욕하는 사람들도 있고 저희들도 통틀어서 욕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거 보면 우리가 그렇게 욕을 먹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리고) 친구 팔아서 대학 갔다 이런 말도 그렇고. 특례입학이라고 소문을 내서… 아닌데… 댓글들이 왜 걔네들은 ‘나도 후배들 잃고 좋은 대학 가고 싶다’ 이런 거…. 그것 때문에 화났어요.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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