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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공무원이 음주운전 하고 신분 감춰도 되나요

등록 2016-08-26 20:20수정 2016-08-26 20:28

[한겨레] 친절한 기자들
허승
사회에디터석 24시팀 기자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폭염도 이제 막을 내린다고 합니다. 지나고 보면 폭염의 끈질김은 염치를 잃어버린 정관계 인사들의 끈질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듯싶습니다. 각종 비리 의혹에 휩싸이고, 언론 보도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고, 여론의 반대와 비판을 받아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버티는 권력자들의 모습은 무더위보다도 더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높입니다.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내고도 공무원 신분을 감춰 징계를 피한 사실이 드러나 국회의 동의도 받지 못한 경찰청장 후보자를 하루 만에 임명 강행하는 현 정권의 모습도 그중 하나입니다.

안녕하세요? 지난달부터 경찰청을 출입하고 있는 사회부 24시팀의 허승 기자입니다. 지난 24일 이철성 경찰청장이 신임 청장에 임명됐습니다. 경찰청장은 공무원 직제상 차관급에 불과하지만 그 영향력은 웬만한 장관 이상입니다. 경찰은 업무 영역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8월 현재 기준으로 14만4945명(의경 등 포함)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음주 교통사고를 내고도 공무원 신분인 것을 숨겨 징계를 피했고 그 이후 승승장구한 인물이 이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찰청장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이 청장이 후보로 지목되기 한 달 전인 지난 6월 감사원은 경찰의 협조를 받아 음주운전에 적발되고도 신분을 숨겨 징계를 피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소속 교육공무원 940명을 적발해 대규모 징계 절차에 착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들 교육공무원처럼 이철성 청장도 징계를 받을 수는 없었을까요?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불가능합니다. 징계 시효가 지났기 때문이죠. 이 청장은 강원지방경찰청 소속이던 1993년 11월 혈중알코올농도 0.09%인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경기도 미금시(현재 남양주시에 통합)에서 중앙선을 침범해 차량 2대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냈습니다. 경찰공무원법상의 징계 규정은 모법인 국가공무원법을 준용하고 있습니다. 국가공무원법은 징계 시효를 징계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3년 이내로 정하고 있고, 금품 및 향응 수수, 공금 횡령 등 직무상 비리의 경우에도 5년을 시효로 정하고 있습니다. 시효가 지난 뒤에 이뤄진 징계는 법적으로 무효가 됩니다. 같은 이유로 교육공무원들을 조사한 감사원도 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최근 3년 이내의 음주운전만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이철성 청장 스스로 청문회 자리에서 밝혔듯이 사고 당시 공무원 신분을 숨기지 않고 징계를 받았다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오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른 공무원은 물론 일반 시민 입장에서도 당연히 부당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공무원이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을지언정 법적으로는 문제삼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행 법령은 공무원이 범죄 혐의로 입건되거나 형사 처분을 받게 되면 그 사실을 소속 기관에 알리도록 하는 책임을 수사기관에 두고 있을 뿐, 공무원 개인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힐 의무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 법은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것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범죄 사실을 은닉하는 것조차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처벌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익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신분 은폐 행위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수사 환경에서는 법이 인정하는 피의자의 권리인 묵비권과 진술거부권조차 제대로 보장받기 어려운 실정인데, 공무원이라고 스스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도록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제 공무원들은 음주운전을 하고도 민간인을 사칭하면 될까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 그런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 경찰청이 운영하고 있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킥스·KICS)이 업그레이드돼서 지난해 8월부터는 이 시스템에 피의자 정보를 입력하면 공무원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공무원 신분을 확인해 징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관되고 공정한 처분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수많은 경찰공무원 수험생들이 민간인 신분 때 저지른 음주운전 경력 때문에 우수한 성적에도 순경조차 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신분을 속여 처벌을 피한 뒤 경찰청장까지 된다면 대체 누가 법과 원칙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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