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대회 당시 백남기 농민화 함께 있었던 일명 `빨간 우의' 남성이 19일 낮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5@hani.co.kr
결국 ‘빨간 우의’ 남성이 직접 나섰다.
그는 지난해 11월14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있을 때, 백씨를 구조하기 위해 다가갔다가 자신도 물대포를 맞고 백씨 몸 위 쪽으로 쓰러졌다. 극우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 등에선 ‘백씨는 물대포가 아니라 이 남성이 고의로 가격해 중태에 빠진 것’이라는 억측을 제기했고, 최근 백씨의 부검 공방이 쟁점이 되자 김진태·나경원 등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를 받아 부풀렸다. 검경도 ‘빨간 우의 가격설’을 부검 필요성의 주된 명분으로 삼았다.
‘빨간 우의’ 남성은 19일 낮 <한겨레> 등 7개 언론사와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 전국언론노조 사무실에서 1시간가량 인터뷰에 응했다. 40대의 그는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의 조합원으로 현재 지역에 살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해 12월11일 그를 조사해 올해 3월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시위 참가자가 상태가 위중한 데 대한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니까 경찰이 나에게로 방향을 돌리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하지만 또다시 검경의 조사 요청이 온다면 언제라도 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대열 앞에 있었는데, 먼발치서 물대포는 계속 쓰러져 계신 분을 쏘고 있었다. 마치 (컴퓨터 슈팅)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백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가 자신의 등으로 물대포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무술 유단자의 주먹질만큼 강한 물대포는 그를 순식간에 넘어뜨렸다. 그는 “손바닥으로 아스팔트 바닥을 짚고 버티면서 제 두 눈으로 직면했던 것은 눈을 감고 미동도 없는 백 어르신의 얼굴이었다. 피를 흘리며 최루액에 뒤범벅돼서 마치 덕지덕지 화장한 듯한 그분 얼굴의 잔상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서 나머지 기억은 뚜렷하지가 않다. 트라우마가 생겨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나서지 않았던 데 대해 “‘내가 빨간 우의요’하고 나서는 것은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의 먹잇감밖에 안 된다고 봤다. 왜 제가 일베 부류의 의혹에 반응을 굳이 해가면서 마치 이 전쟁의 주인공인 것처럼 행세를 해야 하는가 싶어 나서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빨간 우의 가격설’이 세간의 의혹을 넘어 검경에서 백씨의 부검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한 것을 알게 되자 진실을 명확히 하기 위해 세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달 25일 백 농민이 사망한 뒤 검경이 법원에 청구한 부검 영장 청구서에 “빨간색 우의 착용자가 넘어지면서 피해자를 충격한 사실이 있어 피해자에 영향을 미친 원인 행위가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다”고 쓴 것이 <한겨레> 보도 등으로 밝혀졌다. 그는 “지난주 인터넷 포털에 ‘빨간 우의’가 성명 미상으로 (영장에 등장했다고) 나온 기사를 봤다. 엉뚱하다 싶었다.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 법률원에 혹시 내가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물었다”고 설명했다.
공공운수노조 쪽은 의혹 제기에 나선 국회의원들과 일베 회원, 기사에 허위 댓글을 단 사람들까지도 명예훼손으로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기자회견에서 박준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은 “(경찰의 책임을 가리기 위한) 작전 세력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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