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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전문]‘빨간 우의’ 인터뷰 전문

등록 2016-10-19 16:39수정 2016-10-19 22:35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대회 당시 백남기 농민화 함께 있었던 일명 `빨간우의'씨가 19일 낮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5@hani.co.kr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대회 당시 백남기 농민화 함께 있었던 일명 `빨간우의'씨가 19일 낮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5@hani.co.kr

결국 ‘빨간 우의’ 남성이 직접 나섰다. 지난해 11월14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있을 때, 이 남성은 그를 구조하기 위해 다가갔다가 자신도 물대포를 맞고 백 농민 위로 쓰러졌다. 이후 극우 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에서 ‘백 농민은 물대포가 아니라 이 남성이 때려서 중태에 빠졌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김진태·나경원 등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를 받아 부풀렸다. 당시 여러 각도에서 찍은 동영상에서 그가 손을 바닥에 짚었음이 확인됐으나, 검경도 이 남성을 백 농민의 부검 영장을 신청하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했던 것이 지난주 확인됐다. 더는 논란을 키울 수 없다는 판단에 그는 19일 낮 <한겨레> 등 7개 언론사와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 전국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40대 남성으로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조합원으로 현재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지난 17일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그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지난해 12월11일 조사해 올해 3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고 밝힌 바 있다. 다음은 <한겨레>가 정리한 빨간우의 남성과의 인터뷰 전문이다.(*인용시 ‘한겨레 정리본’ 표기)

저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소속의 40대 조합원 ○○○입니다. 사실 제 신상은 지난해 11월14일 투쟁이 있은 뒤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아 경찰이 아는 상태입니다.

저는 ‘빨간 우의’ 이야기가 믿을 만한 공신력 있는 매체나, 사실에 입각해 뭔가를 확인하려고 하는 분들의 입에서 나왔다면 충분히 (먼저 나서서) 반응도 하고 이야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인터넷 사이트에서 오고간 편집된 내용과, 이것을 바탕으로 정치인들이 이야기를 하니까 없었던 수사를 하고, 제가 소환 대상자가 되고, 피의자 신분이 돼서 경찰의 조사를 받은 지난 12월11일 상황이 생각납니다.

백남기 어르신이 쓰러진 직후 언론, 정부, 특히 경찰은 백 어르신을 불법집회를 했던 행위자로 낙인찍고 경찰은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해 아무 잘못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위 참가자가 쓰러지고 상태가 위중한 데 대한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니까 방향을 돌린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최근 언론에서 이렇게 드러나는 정보나 사실관계를 보면 경찰 또한 애초에 저와 관련 내용은 조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후에 제가 특정돼 수사가 진행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소환조사가 이뤄졌고 서울청 대책반이 있었던 남대문경찰서로 가서 4시간 조사를 받았습니다. 조사 받는 과정에서 담당한 경찰들은 제게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들이 파견나와서 몇주 동안 각종 동영상을 돌려보면서 그걸 바탕으로 사진, 증거자료를 확보했다고 했습니다. (경찰이 제게)증거자료를 제시하기 전에 먼저 제 신상과 당시 착용한 복장 같은 것들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저는 허무맹랑하게 조작된 것들에 대해 숨기고 할 문제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해서 경찰이 특정하는 용모와 복장을 다 인정했고, 그 후에 경찰이 제시한 사진들 가지고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경찰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는데,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자료를 다 가지고 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단, 예상 밖으로 백남기 어르신과 관련된 그 시간대의 사진만 제시하지 않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 앞뒤로는 다 물었습니다. 그 자료대로라면 주어진 자료라면 저를 서울청이 (직접) 부를 이유가 없는 단순 참가자였습니다. (제가 사는)지역 경찰에서 조사를 해야 할 단순 참가자였습니다. 무슨 의도가 있으니 오라고 했고, 퍼즐을 맞추려 했는데, 당시 상황이 전부 찍힌 동영상과 사진이 꽤 많이 나돌면서 경찰이 스스로 하려고 했던 것을 멈춘 것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행한 변호사도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그쪽에서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빨간우의 가격설)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조사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 경찰은 추가 조사가 가능하다고 했고 저는 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11개월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어떤 조치가 되었다거나 하는 연락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 경찰청장이 불구속 송치했다고 말한 것을 뉴스로 들었습니다. 제가 알기론 그런 것은 당사자에게 통지하는 걸로 아는데 저는 받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스스로 말하길 면밀한 조사와 폐회로텔레비전 영상(CCTV) 포함해서 언론과 개인들이 찍은 자료, 인터넷 자료를 모두 분석하고 거기에 따라서 조사를 했다고 했습니다. 다른 여타 행동들로 미뤄보면 수뇌부에 해당하는 서울청으로 부른 것은 특별한 것이라고 보여지는데 관련 내용은 묻지도 않고 어떤 조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12월 조사가) 끝난 이후로 일베를 포함해 시끄러운 게 없어졌죠. 한동안…

저는 그게 그들 스스로 억지스럽게 만드려고 했던 모든 것이 당시의 증거자료를 통해서 해소가 돼서 그걸로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 어르신은 (병원에서) 사투를 벌이셨죠. 그렇게 시간이 한참을 지나고 지난달 백 어르신이 돌아가신 시점을 전후해서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 것 같습니다. 사전에 준비되고 뭔가 그림을 맞추는 듯한 흔적들이 있었습니다. 저도 기사에서 봤는데 진단서, 발부된 압수수색 영장에 명기된 것을 최근에 봤습니다. 제가 얻은 정보는 언론매체 정보 외에는 없습니다. 그것도 최근의.

다시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억울하게 고통속에 돌아가신 분을 두번 세번 죽이는 행위고, 유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주는 행위인 줄 뻔히 알면서도 마치 경찰에 의한 살인이 아니고 제3의 누군가… 말로 표현은 안했지만, 성명불상인가요? 그것은 많은 분들이 추측컨대 빨간우의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 하는 말씀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경찰이 부르고 누가 부르면 당당히 나가서 피하거나 도망다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줍잖게 엉뚱한, 말도 안 되는 일베에 응하는 것 말고요. 진실을 알려고 하시는 분들과는 언제라도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상황에 제가 왜 주인공이 돼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날은 노동자와 농민이 최근에 보여주지 못한 모습으로 대통령과 대화하겠다고 평화적 행진을 하고 있었고 그걸 가로막은 것은 경찰이었습니다. 경찰은 아무리 집회 참가자라 하더라도, 살인 게임을 하듯이 계속해서 직사 살수 물대포를 쏘아댔습니다. 저는 영상을 두번 밖에 안 봤어요. 작년 12월에 조사 받으면서 봤고, 이번에 뉴스타파에서 분석한 영상을 봤습니다.

트라우마 같은 게 생겼습니다. 물대포에 등을 맡고 넘어지면서 손바닥으로 아스팔트 바닥을 버티면서 제 두눈으로 직면했던 것은, 눈을 감고 미동도 없는 백남기 어르신이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최루액에 뒤범벅이 돼서 마치 덕지덕지 화장을 한 듯 있는 그분을… 아주 가까이서 (백 어르신을) 대면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감각이나 이런 것이 사실 뚜렷하지가 않은 상황입니다.

그분이 쓰러져 있는 줄 알면서 경찰이 왜 계속 물대포를 쏘아댔는지를 따져야 되는 게 상식 아니었을까요?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달려들어서 쓰러진 그분을 안전한 곳으로 모시고자 했지만, 경찰은 그분들한테도 물대포를 쏴서 움직일 수 없게, 눈을 뜰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당시 생각한 것은 물대포를 몸으로 막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직사로 내려오는 것을 등으로 막으면 충격을 완화시키면서 쓰러져 계신 백 어르신에게 직접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영상으로 보셨겠지만 쓰러진 백 어르신 근처에 접근을 할 수 없도록 물대포를 쏴댔어요.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도와야 될 상황인데 몇 분밖에 안 보이셨잖아요. 다가갈 수도 없고, 눈도 뜰 수 없고…

그렇게 한 경찰에 대해서는 조금 더 철저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영상으로도 그렇게 분명한 것을 흐리려고 하는 것에 이용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백남기 어르신 유족들과 많은 시민들이 장례식장 지키고 있고 그러잖아요. 진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문제가 아닌 가공된 그림에 꿰맞추기 위한 엉뚱한 방향으로 뭔가를 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나서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가 도저히 없었습니다.

원래 논점은 제가 백남기 어르신을 그렇게 만든 것인가요? 경찰도 인정하고 있잖아요. 고맙게도 발달된 미디어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그런데 제 말이 필요하고 제 등장이 필요하게끔 되었습니다. 저는 그날 집회에 참가한 사람이고, 저 아닌 누구라도 그분께 달려들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뭐라도 들고 있었으면 도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혹시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 게 도움이 되겠냐고 공공운수노조와 상의를 하고 이런 자리가 마련된 것 같습니다. 저는 경찰이든 검찰이든 조사에 언제라도 응할 생각이 있습니다. 이미 저한테는 없지만, 저한테는 증빙할 자료를 수집하기 힘들지만, 이미 여러분도 알고 공개된 자료도 충분하잖아요. 가지고 있을 것이잖아요. 이것을 아닌 척 모르는 척 하면서 키우는 걸까요. 그래서 엉뚱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부검이라든가, 그들이 목적한 것을 위해 연기를 피우는 듯한 모습을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항상 그들은 그래왔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제게도 아이들이 있고, 그래서 백남기 어르신 유족분들이 아버지를 보내고 애통하고 추모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채 이러고 있는 모습들에 우리 아이들이 오버랩이 되고 그랬습니다. 제가 필요하다면 개인적으로는 어느 곳에든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만, 왜 제 주변의 가까이 있던 분들까지 이렇게 좀 불똥이 튀게하는 것은 제가 그분들 동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은 바라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질문을 하면 궁금해하시는 것이 무엇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준비된 원고는 없어요. 이것도 갑작스럽게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마련된 자리이기도 하고, 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경찰도 폐기 처분한 거 아닌가 했는데 최근에야 자각하기 시작했다고 하나요?

그런 상황이라서 그날 그 상황의 잔상은 그 영상이 없으면 도무지 다 기억해낼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제가 대면한 그 모습 장면 하나가, 다른 분들은 못 보셨을 것이니까요. 그 장면 그 모습의 나머지 것들이 생각나지 않아요. 생각나지 않아요. 제가 움직였던 것은 경찰이 다 가지고 있을 거에요. 온갖 자료 캡처해 들이댔던 경찰이 가지고 있겠죠. 저도 왜 저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각하는데 저보다 억울한 분들 많을 것 같아요. 제 억울함을 강변할 수 없는 것은 저보다 억울한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이야기 드렸는지 모르겠네요.

-백 농민이 물대포에 맞았을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시면?

저는 방호벽에 있었고 양옆으로 차벽이 있었습니다. 도로에 있었고 도로 왼쪽편, 방호벽 앞에 있었습니다. 대열 앞쪽이죠. 백남기 어르신은 대열의 오른쪽이고… 방호벽에 접근하셨다가 그렇게 큰일을 당하신거죠. 물대포는 두개 세개 나중에는 방호벽 위에 살수장치가 추가되고,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바로 쏘고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계속 쏘아대고 있는데, 먼 발치긴 합니다만 그분이 쓰러져 계셨어요. 그분이 조합원인지 농민인지 몰랐어요. 두분인가가 돌아가서 머리 쪽에서 끌어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계셨는데, 물대포는 계속 쓰러져 계신 분을 쏘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은 제가 게임을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마치 무슨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거였어요. 거기에 접근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다른 물대포가 계속 쏘아져서 많은 분들이 그쪽으로 이동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저는 대열 앞쪽이었고, 물대포 움직임을 조금 더 볼 수가 있었기 때문에 맞는 분 피해서 앞쪽으로 접근하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앞쪽으로 가서 물대포를 직접적으로 맞는 것은 피하면 이동이 용이하지 않을까 그랬는데… 굉장히 수압이 세서 저 한사람 정도는 능히 쓰러뜨리기 충분할 정도였습니다. 앞으로 넘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안 넘어지려고 버텨봤는데, 잘 되질 않았습니다. 넘어지면서 이제… (한동안 말 잇지 못함)… 팔을 뻗었고… 아스팔트 바닥에 넘어지면서 오는 충격이 남아 있었고, 백남기 어르신 얼굴을 보고 순식간에 물대포는 쏟아지고 정신 없고 그런 상황에서 조금씩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몇분이 더 오셨고, 백남기 어르신을 쏴댔던 물대포로부터 먼거리, 차벽 왼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경찰차벽 앞쪽은 물대포가 덜했습니다. 그쪽까지 다른 분들과 함께 옮겼고. 현장에 의료지원하는 분들도 오셨기 때문에 그분들을 찾고 119를 부르고, 주변에서 그러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많은 분들이 둘러싸서 계셨고, 제가 전문가는 아니라서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어요. 안전하게 모셔지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원래 있던 대열로 이동했습니다. 그 시간이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실제와는 좀 다른 것 같더라고요. 온몸이 젖었고. 그런 것이었습니다.

-물대포가 몸으로 견디기 힘들정도였다고 했는데, 이후에 몸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으셨나요?

저나 많은 분들 비슷하게 원체 많은 충격과 최루액 쓰라림이 있잖아요. 그러니 어디가 진짜 아픈지 모르겠다. 온몸에 역한 냄새는 나고 다른 분들과 내려가는데 차안에 냄새가 많이 났어요. 어디가 쑤시고 하는지는 그냥 모르겠어요.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백남기 농민에 대한)기억의 잔상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 나머지 기억은 내가 그때 아팠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11개월이 지난 지금 기억할 수 있는 한계가 있어요.

-작년에 경찰 조사를 정확히 며칠 받았는지, 경찰이 폭행 혐의 조사는 진행됐는지 전혀 없었는지요.

제가 처음 들은 소식은 애초에는 없었던 사람 맞다. 빨간 우의 찾고 있나 보다. 그러고 나서 서울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소환날짜 임박해서 통지서가 오는 바람에 처음에 연기를 좀 했어요. 그 당시는 일정 조정도 안 됐고 왜 부르는지도 몰랐어요. 담당자한테 내가 피의자냐 참고인이냐 물었고 그쪽에서 피의자라고 했습니다. 내 혐의가 뭐냐고 했더니 그것은 조사 받아보면 안 다고 했습니다. 통지서에도 구체적인 내용 없고 일반적인 상황으로 묘사가 됐어요. 연기를 한 차례 하고 나서 12월 11일에, 경찰청장이 고맙게 알려줘서 그 날짜인 것 같네요. 금요일에 갔으니.

남대문서 몇층인가, 당시는 신분 확인도 엄청했어요. 당시 한상균 위원장 수사하던 상황이라 보안 강화했던 듯해요. 조사를 그렇게 받았고 저를 서울청에서 특정해서 부를 이유가 그거(빨간우의)밖에 없을텐데,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 인상착의 복장은 다 조사를 했습니다. 그 부분만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추가소환가능하다는 말만 했고 그뒤로 아무 통지가 없었습니다.

-집시법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빨간우의라는 것은 없었나요?

(경찰이) 사진 보여주며 빨간 우의 맞죠 한 것이죠. 정황상 다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면 저를 서울청으로 부를 이유가 없었어요. 제가 한 행위가 뭐가 있냐고 사진 찍어놓은 거 보여주면서, 도로 위 대열 앞에서 구호 외치고, 원래 없던 살수 장비를 방호벽 위에 설치하려고 할 때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막 밧줄을 잡아당길 때 잠시 도왔던 그 몇컷이었습니다. 그사람들이 이야기하기는 동영상 다 확인해봤는데 이런 거였다는 거죠.

-백남기 질문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제가 대열 오른쪽에 있었고, 대열 뒤에서 오는 것은 동그라미 표시를 했는데 왼쪽으로 백어르신 쪽에 있었던 사진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어요. 그들이 보여준 사진이 그랬어요. 모든 영상 돌려보지는 않았는데…

-왜 이제 나섰는지. 신상 노출을 우려했나.

아니요. 신상 노출은 제가 나서기로 하면서 걱정이 됐습니다. 터무니없는 내용을 경찰이 특정해서 조사한 것이잖아요. 그 이후로 조치가 없었던 것은 그들도 스스로 접은 거 잖아요. 작년 11월, 12월에… (그후)어떤 통보도 없었습니다. 그 후로 언론도 마찬가지고 그 내용들은 그렇게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았는데, 백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후로 그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어요.

저는 본질적이지 못한 문제예요. 제가 나서는 것이, (백남기 농민 죽음이) 경찰이 한 거냐, 제3자 빨간우의가 가격해서 한 것이냐를 가리는 문제가 필요한 것이냐는 거에요. 오히려 그동안 경찰이나 검찰이 몇몇 언론들이 하는 방식은 그냥 이것을 아니면 말고 방식으로 해서 여론을 분위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는 데 이용하려고 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근래에 들었던 거예요. 원래 이 문제는 마치 돌아가시길 기다렸다는 듯이 그림을 맞춘 거 같잖아요. 그 이후에 빨간우의가 ‘나 아니오’ 하는 것은 그게 그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의 먹잇감 외에 진실과 뭐가 닿아 있는 거죠. 영상도 영상이지만, (서울대 의대) 교수마저도 관련이 없음을, 진료기록에서 보여주잖아요. 왜 제가 일베류의 이런 것에 반응을 굳이 해가면서 제가 마치 이 전쟁에 주인공인 것 마냥 행세를 해야 하는가 싶어요. 그런데 나설 이유는 없는데, 다만 이 몰상식한 분위기가 나오게 한 거죠. 부검을 강행하기 위한 핑계로 직접적으로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연기를 피워가면서 저를 끄집어 내는 거죠. 검경이 그런 선택을 했다고 봅니다. 자의로 나오게…

저는 다 이야기를 했고 자료는 충분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거기서 또 옥석이, 똥인지 된장인지 뭔지 맛보고 알겠다고 하면 거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게 결정하고 해야 겠다고 하고 나서 좀 걱정이 됐던 것은 가족이나 아시는 분들이 괜히 그분들 의사와 관계없이 저로 인해서 혹시나 조금 힘들어지거나 상처 받지 않을까 싶고…

-기자회견에 나오게 된 특정할 수 있는 계기가 있나?

상황이 이상한 거 같아요. 돌아가셨잖아요. 경찰은 숨기고 있었지만 다 알고 있었고, 저도 조사 받았잖아요. 여러분이 알만한 자료에 따르면 진실에 근접해 있는 거죠. 그 행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포장하고 그림을 맞추느냐에 따라서 외인사냐 병사냐 가지고 논쟁을 하고, 부검을 해야 하냐 말아야 하냐로 가고, 제3의 인물을 논의하는 거잖아요.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이게 막 개인의 입장에서 정보를 소화할 능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는 것 같아서 혹시 나로 인해서 저 때문에 꼬인 거거나 제가 나서서 뭔가 이게 흐트러진 것이 되돌려지는 것이 되겠느냐라고 생각이 들어서 연락을 했던 것이죠.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이냐고, 할 수 있으면 제가 필요하다면 억울한 것을 풀고 진실에 가까운 것을 밝힐 수 있게 나선 것이죠. 제가 어느 시점에 계시받듯이 한 것이 아니라,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끼어있는 거 같은, 어설프게 맞추진 것 같아서 이야기한 것이죠. 그 시점은 특별히 뭐…

-연락한 게 언제?

지난주에 뉴스를 보다가 한번, 당시에 제 변호한 노조 법률원 변호사한테 물어봤죠. 상황이 어떤지 혹시 내가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지 몰라서 도움이 되는 건지 엉뚱하게 가십거리 만드는지 몰라서, 지금에 온 것 같아요. 재차 노조에서는 괜찮겠냐고 물어왔고요. 많이 부담되고 어려울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가 인터넷에, 포털에 올라와 있는 것인데 빨간우의가 성명미상으로 검경 영장이 나온 것을 보고 엉뚱하다 싶어서.

-종로경찰서에서는 ‘빨간우의’ 수사의뢰도 받았는데 종로서에서 이야기 없었죠? 수사 기관도 묻지 않은 상황이었나요?

제가 불구속 기소 처분 받은 것도 뉴스로 봤습니다. 이야기가 왜 없다가 지펴지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어요.

-백남기 유족분들은 아버지를 구하려고 하셨다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유족 쪽과 따로 연락을 하셨거나 한 적은 있나요?

제가 �은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냥 거기에 참가한 사람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고마워하세요’라고 나설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쓰러져 계신 백남기 어르신이 쾌유하길 바라는 집회나 행사에는 참가했지만 서울에 가지는 못했습니다. 유족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제가 잘 모르겠어요. 어떤 행동을 하고, 어느 시기에 입장을 드러내고 하는 것이 그분들께 도움이 될지…

만일 그분들이 ‘그 사람 찾습니다’ 했으면 나갔겠죠. 엉뚱한 데로 튈까 싶을 수 있으니, 그분들 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나서는 것은 마치 오지랖이 넓은 행동 아니었겠나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는데 제 생각이 짧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 생각이 제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는데 남들이 보기엔 아닐 수 있잖아요.

-빈소 방문하신 적은?

시골에서 바쁜 일이 있어서… 그 지역에 분향소 설치돼 있어서 거기에서 가족들과 함께 분향했습니다. 서울에 올라오지는 못했어요.

11월에 또 총궐기가 있다고 해서, 그전에 해결되면 좋겠지만 이 정부 안에서는 그때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데요. 그때 올라오면 찾아뵙는 것도 생각을 해보는데, 저라서 꼭 거기에 가는 것은 아니에요.

-일베류의 문제제기에 대응할 필요 없다고 했는데 그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가격 자세다, 손으로 얼굴을 어떻게 했다, 복부를 짓눌렀다’ 그러는데 신체 접촉이 있었나요? 어느 정도로 있었나요? 그 정도 접촉이면 그런 영향 안 미쳤을까요?

(안경을 벗었다 끼면서)블랙홀 같아요. 특정 장면 때문에 나머지 것들이 빨려 들어가서… 정확한 표현을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아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짧디 짧은 동영상, 그런 것이 있어서 고맙죠. 제 기억으로 어떤 자세 취해보라고 하면 잘 재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확실한 것은 넘어지면서 쓰러져 계신 분 위를 덮치게 되는 꼴이 되니까 팔을 뻗어서 바닥을 짚으니까 얼굴이 또렷이 가깝게 보여지고 그 장면이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침묵) 그것 때문에 나머지… 저도 영상을 두번째로 봤다고 했는데, 그렇게 찍힌 거 외에, 기억할 수 있는 게… 느낌이 없습니다. 눈과 팔 외에 나머지 부분에 느낌이 기억나지 않아요.

-어느 정도 무릅 압박 있었는지 기억 안나나요?

그 영상 보고 저렇게 넘어졌나 알았습니다. 그 영상이 없었으면 어떤 자세였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생명에 위협될 정도인가요?

물대포 때문에 의도한 방향이 아닌 곳으로 넘어졌잖아요. 피하려고 몸부림치고 팔을 뻗었던 것입니다. 지금에서야 신체 접촉 이야기하지만 저한테는 그것 보다는 백농민께 쏟아지는 물대포를 막아야 하고 막으면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지… 그정도면 몸에 안 닿고 충격을 안 주고 이런 것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 영상 외에 기억은, 막으려고 했는데 넘어졌고 그분 얼굴을 봤고, 그 직후에 옮기는 것 이런 거에요.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실장: 의료기록을 확인했다. 가슴 쪽으로는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 확인이 됐다. 가슴을 누른 것도 정확하게 2초다. 머리 뒤통수로 물대포를 맞은 다음에 그 뒤에 가방 뒷부분을 때리는 바람에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상황. 그 다음에 물줄기가 가방을 쳐서 직접 안 덥치려고 손을 짚고 나간 것이 2초다. 그 충격이 상상을 할 수 없는 거다. 손을 아스팔트에 한 것도 뉴스타파에 나갔다. 백남기 농민이 얼굴 방향에 미동이 없다. 얼굴 자체 이동이 없다. 충격을 전혀 안 받으신 것이 맞다.

-이전에 백농민 만난 적은?

저도 처음 뵙는 분이었고. 나중에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그분의 신상이 나오고 그 뒤에 알았습니다.

-언제든지 조사에 응할 계획이라고 하셨는데, 먼저 의견서를 제출하실 생각은 없나?

수사하면 응하겠습니다.

-애초에 일베에서 제기된 문제가 김진태, 나경원 등 정치인에 의해 확대된 것인데,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생각은 안 하나요?

저는 주인공이 아니에요. 지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살려고 거리로 나온 분이 자신을 보호해줘야 할 국가에 의해서 생명을 잃었다는 것이고, 증거자료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다른 것들을 주인공 삼아서 끌어올리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 그분이 뭘 이야기하려고 했고 그분이 왜 이렇게 됐는지 잖아요. 거짓과 진실이 바뀌는 것 같아요. 지금도.

빨간우의요? 여러분이 확인해보면 되잖아요. 그쪽도 증거자료가 그것 아닐까요? 저한테는 더 가져갈 것 없어요. 다 아는 자료예요. 왜 그렇게, 방향을 정해놓으면 다들 그리로 달려가려고만 하는지 싶어서… 명예훼손 대응은 나중에 차차 대응해도 늦지 않는다고 봐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법률 대응한다’ 이러면 제가 링에 선수로 뛰어들게 돼요. 그러면 다른 게 묻힐 텐데…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는 것도, 차차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잖아요. 그게 혹시 관련되어 있다면, 그들이 불렀든 스스로 나왔든 제가 숨고자 했던 것도 아니니까요. 그들은 왜 알고 있었으면서 연기 피우면서 부풀리는 걸까요? 이게 저와 이야기 나눈 데서 가져가야 할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언론에 나오기로 결정했나요?

지난주에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다가, 제가 나서는 것이 필요할까를 저보다 정보가 있을 것이라 해서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 물었습니다. 그분들도 판단이 서지가 않아서 검토해보겠다고 이야기하셨고, 그게 지난주 말인가요? 이번주 초에 혹시나 여러 생각했지만 힘들 수도 있고 부담될 수 있는데 괜찮느냐고 저한테 물어봤고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괜찮다고. 제가 나가는게 이 시점에 맞다면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좀 지나서 그 힘든 것이라는 것이 주변이 힘든 것이 마음에 쓰이더라고요. 이런 것을 노조 법률원이나 중앙 분들이 염려되어서 저한테 이야기한 것이었나봐요.

어제 뉴스가 나와서 타이밍 조절을 한 것은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나가겠다고 했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제가 언론과 직접 만나서 하는 것이 좋을지 또 다른 방식일지 판단했던 것 같고, 그 도움을 받아서 이런 방식으로 사실대로 보도해주실 수 있는 분들과 만나는 방식으로 조정이 된 것 같습니다.

-이후로 어떻게 할지 계획이 있나요?

협의를 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검찰 수사는 대응하겠는데, 조문하거나 이런 것은 응당 해야 하지만 지역에서도 했고… 이것을 제가 제 판단 능력으로는, 그것을 뛰어넘는 모종의 이런 것에 이용되지 않는 것이 유족들과 백남기 농민에게 나을 것이라고 봅니다. 만일 방문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이 낫겠다고 하면,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아직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럭비공같이 튀는 검·경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이렇게 한 뒤에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제가 갈 곳은 모르고 제가 원하는 데로 가지 않을 수도 있는거죠.

김지훈 허승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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