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사고가 일어난 2014년 4월16일 오후 5시께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해 전남 진도해상에서 발생한 여객선 침몰사고와 관련 상황 보고를 듣고 있다. 청와대 제공
12일 100만의 시민이 운집한 서울 도심. 분노의 시계추가 2014년 4월16일로 되돌아갔다.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된 ‘대통령의 7시간’을 호출했다. 그날 대통령은 오전 10시30분 해경청장에 “해경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를 끝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가 다시 중대본 현장에 선 것은 오후 5시15분. 세월호가 침몰하는 7시간 동안 그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아직도 명쾌히 알려진 것이 없다.
청와대는 ‘7시간’ 공개 요구에 묵묵부답이다. 녹색당이 참사 당일 대통령에게 이뤄진 보고와 대통령의 행적 등을 공개하라며 청와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도 시간 끌기를 한다는 비판이 인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4부(재판장 조경란)는 지난 8월30일 청와대의 사실조회 신청을 받아들였다. 미국·독일·일본에서 대통령 기록물 및 정보공개 관련 법령이 어떻게 돼 있는지 법원이 각국 주재 한국 대사관에 요청해 확인해달란 요구였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런 사실조회신청이 이례적이란 해석이 나온다. 사실조회 신청은 재판에서 쟁점이 되는 특정 사실과 관련해 다른 기관·법인이나 개인에 법원의 이름으로 조회를 요청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누구나 접근이 용이한 일반적인 사실이나 법령, 판례 등은 조회대상이 되지 않는다. 공신력 있는 연구기관이나 검색 시스템을 통해서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7시간’ 관련해 낸 소송에서도 청와대는 유사한 종류의 사실조회를 신청했지만,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유진현)는 “문헌을 찾아보면 나오는 내용이라 사실 조회할 사안이 되지 않는다”며 거부한 바 있다.
사실조회 신청을 통해 외국 법령을 확인하면 재판이 지연될 우려도 있다. 외국 주재 대사관에 우편으로 조회서를 보내고, 확인된 내용을 돌려받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녹색당이 낸 소송에서 법원이 청와대 쪽 요청을 받아들인 건 지난 8월30일인데, 11월14일 현재까지 한 건도 회신이 오지 않았다. 문서를 회신받을 때까지 다음 재판은 미뤄진 상태다. 청와대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12·28 한일 합의 당시 양국 정상 간 통화 내용을 공개하라며 낸 소송에서도 같은 취지의 사실조회 신청을 해 첫 회신을 받기까지 2달 넘게 걸렸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다른 나라 법령은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신속한 재판을 원했다면 전문가나 연구기관을 통해 빨리 제출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청와대가 법원을 경유해 사실조회 신청까지 추진하는 것은 대통령 임기 종료 시점까지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의도란 지적이 나온다. 2018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세월호 및 ‘위안부’ 합의 관련 기록은 상당 부분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공개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거나 개인의 사생활에 관련된 내용을 담은 기록물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정해질 수 있는데, 일단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되면 짧게는 15년에서 길게는 30년까지 공개나 열람이 제한된다.
청와대의 ‘시간 끌기’ 전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청와대는 대통령에게 이뤄진 서면보고 자료를 비공개 제출하라는 법원의 명령에도 명확한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재판부는 청와대 쪽이 비공개 명령을 따르지 않을 때 변론을 재개하며 선고를 미뤄왔다. 1심 결과가 나오기까지 녹색당 소송에선 1년5개월, <한겨레>의 경우 1년10개월이 걸렸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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