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신한일전기주식회사 공장에서 장년의 여성 노동자들이 펌프를 조립하고 있다. 이 회사는 1998년 이후 이렇다 할 신규채용을 하지 못해 여성노동자의 평균연령이 49살에 달한다. 부천/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 철도차량과 군용 장갑차 등을 생산하는 경남 창원의 현대로템은 한달에 두번씩 외부에서 의사가 찾아온다. 생산직 1700여명의 평균 연령이 52살에 달해 근골격계 질환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박종출 금속노조 현대로템지회 사무장은 “노동자들이 고령이다보니 허리·어깨 등 근골격계 질환이 많아 근골격계 예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며 “한번에 20~30명씩 신청해 줄을 서 치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009년까지 20여년간 신규 채용을 하지 않았다. 2010년 이후로는 일부 채용에 나서고 있지만, 2020년까지 정년퇴직 예정자가 700명에 달해 사업장 내 ‘인구절벽’에 직면하고 있다. 박 사무장은 “업종의 특성상 용접·도장 등 숙련기술이 필요한데 기술전수가 안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직에 허리가 없다보니 조직문화에도 문제가 생긴다. 생산직 직원 가운데 막내뻘인 입사 6년차 김아무개(30)씨는 “아버지 같은 선배들이 아들처럼 대해주시긴 하지만, 아무래도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2. 지난달 18일 찾은 경기 부천의 펌프 제조업체인 신한일전기도 상황은 비슷하다. 제품 조립라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노동자의 평균 연령은 49살이다. 이 회사는 1998년 이후 명예퇴직이나 정리해고를 한번도 시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속적인 물량 감소로 인해, 현장실습을 나왔던 특성화고교 학생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 말고는 신규 채용이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이날 공장에서 만난 최고령 노동자 김아무개(58)씨는 “정년(60살)까지 일하다가 퇴직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산업현장의 고령화 속도는 전체 인구의 고령화보다 더 빠른 편이다. 기대수명 증가로 길어진 노후에 대비하기 위한 고령 노동자의 취업이 늘어나는 반면에 저성장과 청년취업난 등으로 젊은층의 고용은 부진한 점이 겹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고용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해 50대 이상 장년층 취업자는 965만4천명으로 20~30대 취업자(936만9천명)보다 많았다.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처음으로 장년층 취업자가 청년층보다 많아진 것이다.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도 지난해 기준 44.4살로 2004년 41.1살에 비해 3살이나 늘었다.
■ 이미 고령화된 생산인구 실제로 최근 몇년새 우리나라의 고용 증가는 베이비붐 세대가 포함된 50살 이상 장년층 인구가 주도하고 있다. 2000년만 해도 전체의 23%에 그쳤던 장년층 취업자 비중은 지난해 37.2%로 높아졌다. 지난해 증가한 취업자 33만7천명 중에서 60살 이상이 17만2천명으로 절반을 웃돈다. 반대로 20~30대 취업자 비중은 2000년 50.2%에서 지난해 36.1%로 뚝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해서도 우리나라의 청년 및 중년층 고용률은 회원국 평균보다 낮은 데 비해 장년층 고용률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장년층 고용률은 55.3%로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50~64살로 좁혀서 보면 고용률이 70.6%에 이른다.
이런 추세는 아무래도 인구 고령화에 따른 영향이 크다. 50살 이상 인구는 전체 생산가능인구(15~64살)의 40.6%를 차지한다. 게다가 현재 45살 이상 연령대를 보면 연령이 낮을수록 인구규모가 크다. 따라서 향후 상당기간 장년층 인구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인구수로 보면 최근 15년새 50살 이상은 788만2천명이 늘어난 데 견줘 20~30대는 192만2천명이 감소했다. 노인으로 살아가는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노동자들은 될 수 있으면 더 오래 일하고 싶어 한다. 현대로템 직원인 박아무개(51)씨는 “퇴직금은 자녀를 위해 쓰게 될 것 같고 실제 노후소득은 국민연금 월 100만원 남짓이 될 것 같다. 이 때문에 퇴직 이후에도 사내하청으로 재입사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후가 불안한 이들이 많으니 주차장 경비직 자리 따내는 것도 순번을 기다려야 겨우 얻는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주된 일자리에서 빨리 퇴직하게 되는 이들에게 ‘재취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장기근속 일자리 퇴직연령은 49살이지만 실제 노동시장에는 70살 이후(남성 72.9살 여성 70.6살)까지 머무른다. 비자발적으로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난 이후, 고용형태가 불안정하고 임금수준이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게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오래 일한 일자리의 연령과 근속기간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데 견줘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연령은 올라가고 있는 추세다. 고용부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원자료(올해 5월 기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55~64살 남성의 경우 87.3%가 일을 하기 원하고 있으며 현재 취업자의 91.5%가 장래에도 일을 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도 기업들이 경기침체를 이유로 신규 채용을 꺼리고 청년층 채용이 획기적으로 늘지 않는 이상 생산현장 고령화는 지속될 전망이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연달아 은퇴하게 되면, 추후 노동력 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시균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생산인구 감소도 문제지만 생산현장 고령화 이후 고령인력의 퇴직에 따른 숙련 단절도 큰 문제”라며 “현재도 제조업 현장에서 숙련인력이 이주노동자로 채워지는 것처럼 전 산업에서 이런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구 고령화보다 빠른 ‘노동 고령화’
수명 길어져 고령자 취업 늘고
저성장 탓 청년 고용은 부진
베이비붐 세대 은퇴 이어지면
노동력 부족현상 발생할 수도
세대간 일자리 경쟁 우려 있지만
‘고령퇴직-청년고용’ 상관관계 약해
“고령 친화적 노동환경 만들며
청년고용 늘리는 대안 모색해야”
■ 아버지가 아들 일자리 뺏는다? 생산현장에 고령자가 많아질수록 세대간 일자리 경쟁이 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올해 300인 이상 기업부터 정년 60살이 법제화됐다. 실제로 공공기관·대기업 등의 좋은 일자리에선 이런 ‘일자리 경쟁’ 양상이 일부 드러날 조짐이다.
해마다 신규 채용인원 가운데 3%를 34살 이하 청년으로 채용해야 하는 공공기관 가운데 10곳 중 3곳은 지난해 청년 고용의무를 지키지 못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7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청년고용 의무를 지키지 못한 122곳 가운데 102곳은 이를 지키지 못한 이유로, 현원 대비 정원 충족(29.4%), 정부로부터 받은 총액인건비 초과(16.7%) 등을 들었다. 특히 정년연장의 혜택을 받은 베이비붐 1세대(1955~1964년생)의 은퇴연령이 늦춰졌고 바로 뒤따르는 베이비붐 2세대(1965~1975년생)와의 직장 내에서의 인사적체 등을 둘러싼 갈등이 현실화된 상태다. 현재 장년층인 베이비붐 세대들은 학력수준이 높고 종사직종도 전문직·사무직 등 고숙련업종이어서, 청년층과 경합관계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청년 일자리와 장년 일자리가 서로 대체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이 상당수 고용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용부가 연세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2014년말 발표한 ‘고령화시대의 국가 인적자원 개발과 고용정책방향 연구’를 보면 “청년층과 고령층 고용은 보완관계에 있다는 것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경험에서도 증명되고 있다”며 “청년실업의 원인은 고령자의 과잉고용 때문이 아니라 경력직 채용 등 고용구조변화와 일자리 미스매치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고령자들이 퇴직한다고 해서 청년층 고용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 고령자 위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등 필요 전문가들은 고령화에 따른 노동시장의 과제로, 향후 노동력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 현재 고용률이 부진한 청년·여성 등의 고용률을 올리는 한편 좀더 고령친화적 노동시장 개편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우선 현재의 임금시스템은 고령 취업자가 더 오래 노동시장에 머무르도록 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인상되는 호봉제를 퇴직 때까지 유지하기보다는 고령자들이 은퇴를 앞두고 시간선택제 일자리 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등 점진적 퇴직을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청년 때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중년에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체계는 애초의 고용계약에서 마치고, 정년이 60살로 바뀌면서 새로 늘어난 근무기간에 대해선 생산성에 맞는 임금을 받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도 “60살 정년 이후에 경비냐 장사냐의 문제를 고민하게 할 것이 아니라, 4시간 일해도 사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시간 단축, 작업환경 개선 등 고령층 노동자에 적합한 고용구조를 구축할 필요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노동력 고령화에 대한 노사관계적 대응’ 보고서를 보면, 연구팀이 조사한 100인 이상 기업 272곳의 인사담당자들은 ‘고령화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45.2%가 임금피크제·성과급강화를 통한 정년연장을 꼽았고, 25.4%가 퇴직 후 계약직·임시직 등으로 재고용 또는 근로형태 다양화를 꼽았다. 교육훈련 강화(8.1%)·작업환경개선(5.5%)·직무개발(5.5%)을 꼽은 기업은 드문 축에 속했다. 연구에 참여한 이호창 노사발전재단 수석연구위원은 “한국 기업의 고령화에 대한 준비나 대응은 인건비 부담 절감이라는 관점에 머물러 있다”며 “고령화를 먼저 맞이한 일본처럼 고령자의 건강을 고려한 작업환경의 인체공학적 변화라든지 노동시간 단축 등을 통해 고령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