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국정교과서 사용반대 긴급포럼 왜 학부모들은 국정교과서 사용을 반대하는가'에서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박근혜 정부가 강력한 반대 여론에도 오는 28일 국정 역사교과서 공개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일부 시도교육청이 국정교과서 검토과정 참여 거부, 교과서 대금 지급 거부 등 국정화 저지를 위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학부모, 역사교수, 변호사 등 각계의 반대 성명도 잇따르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22일 성명을 내어 “정부는 28일로 예정된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를 당장 중지하라”며 “국정교과서 배포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대책을 단계적으로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이에 따라 시교육청 소속 교사들이 국정 역사교과서 검토과정에 참여하지 않도록 조처한다는 방침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현장검토본이 공개됐을 때 교사들이 개인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겠지만, 교육부가 교육청을 통해 일선 교사의 검토 의견을 일괄적으로 받는 것에 협조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검토과정을 거치지 못한 국정교과서는 반쪽 교과서로 전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교육청은 국정교과서를 대체할 역사교과서 보조교재를 개발해 학교 현장에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교육청은 학교별로 지난 9월 진행한 국정 역사교과서 주문을 취소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시교육청의 다른 관계자는 “교육청이 나서서 교과서 배포를 막는 것은 교육부 고시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논의를 좀 더 해 봐야 한다”며 “그만큼 교육청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뜻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해다.
장휘국 광주시 교육감도 지난 21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미 ‘최순실 교과서’로 조롱거리가 됐고, 대통령 집안을 미화하려 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며 폐기를 촉구했다. 특히 광주시교육청은 중학교 국정교과서의 대금지급을 거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등학교의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학부모들이 돈을 내고 사야 하지만, 의무교육 과정인 중학교 국정교과서 대금은 교육청이 내고 있다. 대금 납부 거부를 통해 고등학교 학부모들의 국정 역사교과서 구매 거부 움직임을 끌어내겠다는 취지다. 학부모들의 반대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학성여고 등 고교 학부모들은 이날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국정교과서 사용반대 긴급 포럼’을 열어 국정교과서 사용을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학부모 선언’을 발표했다.
역사 교수들의 국정화 반대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전국 102개 대학 역사학·역사교육과 교수 561명은 이날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를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교수들은 이 편지글에서 “국정화는 당초부터 교육부의 자체 방침이 아니라 청와대 및 극소수 정치세력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이들의 결정과 지시가 교육 당국의 업무가 돼선 안 된다”며 국정화 폐기를 촉구했다.
변호사들도 나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날 성명을 내어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속에 이뤄진 대표적 정책 왜곡 사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며 “국정화는 위법·위헌성 외에도 정당성과 추동력을 이미 상실했다.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국정화 고시 효력정지 결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교육부는 이날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정책적으로 변경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다”며 “예정대로 28일 현장검토본(웹전시본)을 공개할 방침이고, 같은날 오후 1시20분께 이준식 부총리가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교과서 도입의 필요성 등에 대해 대국민 설명회를 열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김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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