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억합니다’ 누리집 갈무리.
“휴가를 얻어 그날 태국 여행을 하고 있었다. 택시를 탔는데 현지인이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너희 나라에 큰일이 났는데 괜찮냐고.”(제목 ‘기억의 조각’)
“저는 대학병원 레지던트였고 교수님과 아침 회진을 돌며 침몰 장면을 병실에 틀어진 티브이로 보았습니다. (…) 오후 회진 때도 환자들은 슬퍼하며 그 자리에 똑같은 자세로 티브이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너무나도 안타깝고 미안한..’)
“그날은 간호사인 제가 아침 근무 8시 주사 처치를 나가서 병실마다 틀어져 있는 뉴스 속보를 환자들과 함께 보고 있었습니다.”(‘세상에 하나’)
“그날은 엑소 콘서트 티켓 예매 오픈일이었는데, 예매해보겠다고 낑낑대는 딸을 도와주다 결국 실패하고 포털을 띄웠는데… 고래가 물을 뿜듯 배에서 솟구치는 물이 충격적인 장면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오보…아무도 사과하지 않았어요’)
“그날 대구에 있는 악기사에 악기 수리를 맡겨두고 후배 부부와 식사를 하면서 소식을 들었죠. 악기를 다시 찾으러 악기사에 갔을 때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곳에 애기들이 아직 있다는 것을.”(‘이학림’)
“독서실에서 영어 라디오를 듣다가 9시부터… 그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뉴스 생방송을 틀었다. 저녁반 아르바이트생이 부스에 와서 무슨 일이냐고… 어쩌냐고… 고1 때 대형선박 타는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배운 대피법, 구명조끼 착용법이 생생히 떠올랐다. 내가 저기에 있었으면 도와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속상했다. 그때 인연이 닿은 애들한테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친구들도 울고 있었다. 가끔씩 꿈을 꾼다. 그때의 기억과 7시간이 뒤범벅되어서…”(‘독서실에서’)
“저는 그 당시 초6이었네요. 제가 일본에 살았어가지고 등교가 8시여서 7시에 일어났어요. 학교에 다녀온 후 엄마 아빠가 한국 티브이로 연결시키고 뉴스를 보더군요. 세월호 언니 오빠 그리고 사람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거짓말쟁이’)
“그날은 제가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지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수영장에 들어가려고 사물함에 옷을 넣고 핸드폰 속보를 확인하는데 구조 중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다 아이를 데리러 가려는데 뉴스가 이상해지더군요. 그 이후로 저는 수영장에서 물이라도 먹으면 그 아이들이 그랬겠다 울면서 배웠어요.”(‘희윤채윤맘’)
“교사로서의 삶에 첫발을 내디딘 해였습니다. 팽목항과 가까운 해남의 한 학교에서 사고 소식을 접했습니다. (…) 동료 시민으로서, 교사로서 세월호 희생자분들을 평생 추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빚’)
“기억합니다. 비가 조금 내리던 흐린 날이었어요. 출장 와서 밥 먹으러 갈 때 식당 티브이로 뉴스를 봤습니다. 전원구조 뉴스에 농담 삼아 ‘저 학생들은 평생 기억에 남을 수학여행을 보내겠구나. 정말 다행이다’라고 지인들과 이야기했습니다. (…) 그 수학여행이 평생 기억에 남은 건, 그날의 그 친구들이 아닌 바로 제가 되었습니다.”(‘부끄럼’)
22일 현재 ‘우리는 기억합니다’ 페이지엔 3000명 넘는 시민이 세월호 참사 당일 기억을 증언해두었다. 누리집 갈무리
이슈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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