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지난달 6일 오후 국회에서 연 청문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15년 7월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독대를 앞두고 청와대가 준비한 대통령 말씀자료에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한 삼성 쪽의 지원이 부족하다’고 질책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드러났다.
2일 검찰과 특검, 재계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은 이 부회장 독대를 위해 사전 준비한 ‘말씀자료’에서 삼성이 운영하는 대구와 경북의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센터가 이벤트 행사 한번 하는 곳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있다”, “유망 중소기업 발굴도 기존에 거래하던 하청업체 위주로 하고 있다”는 등의 지적이다. 또 “대구 센터에 비해 경북 센터를 홀대하고 있다는 불만이 있다”며 “지역 갈등이 되지 않도록 경북 센터도 지원해주길 바란다”는 뜻도 담겼다.
박 대통령은 삼성의 추가 지원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삼성의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데, 결국 삼성이 성과나 결과로서 극복해 나갈 수밖에 없다. 좀더 분발해달라”고 한 것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민관 합동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총 18곳 만들어졌으며, 벤처기업-중소기업-지역특화기업 등을 지원한다. 삼성은 2014년 9월과 12월 이후 각각 대구와 경북 지역 센터의 운영을 맡아왔다.
박 대통령이 국내 최대 재벌 총수를 만나기 전 강한 톤의 질책을 준비한 것은 이례적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다른 재벌 총수와 독대할 때는 이 부회장과 달리 별다른 질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청와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을 써준 뒤 삼성의 지원을 요구하는 차원에서 칭찬보다 질책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당시 삼성의 부진한 ‘승마 지원’과 관련해 이 부회장을 혼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독대 자리에서 승마 지원과 관련해서 제대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이 부회장을 심하게 다그쳤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만남 뒤 삼성은 경북 센터에 스마트공장 아카데미를 세우기로 하는 등 지원을 확대했다. 최순실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에게도 220억원을 지원하기로 하고 실제 80억원을 지원했다. 삼성은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에도 국내 기업 가운데 최다인 204억원의 출연금을 냈다.
한편, 박 대통령은 2014년 9월15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서 이 부회장을 따로 만나 대한승마협회 회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삼성은 이듬해 3월 한화가 맡던 승마협회 회장직을 맡았고, 이후 정유라씨에 대한 200억원대 지원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특검은 박 대통령이 정씨에 대한 우회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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