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정은주 기자, 세월호 유가족 동행
인양 작업 가까이 지켜보려는
희생자 가족과 ‘진실호’에 탔다
“살기 위해 몸부림쳤을 고통이
온몸으로 느껴져 부들부들 떨려”
배 안에서 준형이 아빠가 말했다
5분을 달리자 세월호가 눈앞에…
가라앉은 때 모습 그대로다
“아이들 목소리 들리는 듯해요”
경빈이 엄마가 오열했다
24일 오후 진도 동거차도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세월호가 인양되고 있다. 진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아이가 고통스러운 마지막 순간을 보냈던 배를 만나러 가는 아빠, 엄마의 길은 그 자체가 고통이다. 세월호 인양을 손꼽아 기다리며 3년을 보냈지만, 이들에게 떠오른 배를 보는 것은 오롯이 아픔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배 모습을 똑바로 보기 어렵다. 수없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침몰하는 모습이 얼마나 잔인한 영상인 줄 아느냐”고 동거차도로 들어가는 배 안에서 단원고 희생자 준형군의 아빠 장훈씨가 말했다. “제발 어떤 심경이냐고 묻지 마라. 내 아이가 저 배에서 겪었을 고통이 온몸으로 느껴져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당신들에겐 아이들이 숨진 무덤이 떠오르는 것이지만, 나에겐 아이들이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생의 마지막 고통을 마주하는 일이다.”
24일 세월호의 인양 작업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지켜보려고 단원고 피해자 가족들은 경기도 안산에서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팽목항에서 다시 동거차도로 들어갔다. 2년 전 여름 나는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와 단원고에서 팽목항을 거쳐 대전 월드컵경기장으로 800㎞를 38일간 함께 걷고 걸었다. 이들과 울고 웃으며 함께 보낸 시간만큼, 세월호의 아픔을 가슴에 품었지만, 세월호를 집어삼킨 그 바다와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다. 별이 된 아이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품은 배 앞에서 난 무엇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오후 2시30분,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의 배 ‘진실호’ 엔진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시동을 걸었다. 엄청난 바닷바람을 맞으며 물살을 가르는 배엔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라는 노란 깃발이 휘날렸다. 이 배는 피해자 가족들이 동거차도에 가족감시단을 꾸려 인양 작업을 지켜보기 시작한 무렵인 2015년 9월 뜻있는 몇몇 가족들이 1억2000만원을 모아 구입한 5t 배다. 가족의 애달픈 마음을 헤아린 시민들이 나중에 이 배를 후원했다. ‘진실호’를 운항하기 위해 단원고 생존자 애진양의 아빠 장동원씨는 배 운전을 배웠다. 1시간에 휘발유 40리터, 6만원이 드는 비싼 배를 세월호 유가족들은 하루 2차례씩 몰고 인양 현장에 나간다.
5분 정도 달리자 좌현으로 누운 세월호가 350m 눈앞에 펼쳐졌다. 13m까지 올라온 세월호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가라앉은 때 그대로 각도였다. 주황색 예인선이 물 밑으로 와이어를 연결한 세월호를 끌어내려고 연기를 내뿜고 있었고 재킹바지선을 끌어당기는 또다른 파란색 배 4척도 눈에 띄었다. 이 배들은 세월호가 재킹바지선에 접촉하지 않도록 밖으로 끌어주며 안전지대에 대기 중인 반잠수식 선박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재킹바지선과 세월호 사이에는 고무타이어를 넣어 선체 손상을 막고 있다고 했다.
장훈씨는 “선미 램프(차량 출입문)가 낡아 빈틈이 생겨서 바닷물이 들어오는 바람에 세월호가 빨리 침몰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를 확인할 선미 램프를 해양수산부가 맘대로 어제저녁 절단해버렸다”며 “언론에 브리핑하기 10분 전에 유가족들에게 전화로 그 사실을 일방 통보했다”고 말했다.
인양 모습을 가까이 지켜보기 위해 진실호가 다가서자 흰색 해경 배가 접근을 가로막았다. 곧이어 회색 해군 배도 다가왔다. 방제선까지 추격에 가세하자 유가족들이 분노로 몸서리쳤다. “우리 아이들이 부를 때는 그렇게 안 오더니 왜 이제 난리냐.” 결국 단원고 희생자 임경빈군의 엄마 전인숙씨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동거차도는 이들에겐 통한의 섬이다. 참사 현장과 가장 가까운 이곳에 피해자 가족들은 천막으로 된 감시초소를 짓고 매주 반별로 조를 짜서 중국 상하이샐비지의 인양 작업을 지켜봤다. 단원고 희생자 동수군의 아빠 정성욱씨는 “세월호가 떠오르자 아이 얼굴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부글부글 속이 끓어올라 하루 종일 울었다”고 말했다. 경빈군의 엄마 전인숙씨도 “사고 날 이 동거차도를 알았다면, 여기서 세월호를 보여줬다면…”이라고 가슴을 쳤다. “우리는 망망대해에서 배가 침몰한 줄 알았다. 근데 얼마나 가깝나. 크레인만 있을 때보다 배가 나오니까 얼마나 세월호가 큰지, 얼마나 섬에서 가까운지 실감이 난다.” 동거차도 감시초소에서 처음 사고 현장을 본 단원고 희생자 오경미양의 엄마 전수현씨는 “이렇게 가까운지 몰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저 배에서 작업하는 소리가 다 들릴 만큼 가까운데,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때문에 아이들이 발이 묶여 나오지 못하다니….”
동거차도 가족감시단의 초소 앞쪽 나뭇가지엔 2015년 11월 처음 유가족들이 매어놨던 노란 리본이 아직 걸려 있다. ‘국민이 꼭 밝혀줄게’라는 글자의 ‘혀줄게’가 바닷바람에 낡아 사라져 있었다. 이렇게 리본이 낡고 해지는 시간 동안, 가족들은 동거차도에서 인양 작업을 지켜봤다. 외롭게 초소를 지키는 이들을 찾지 않았던 기자들이 최근 무더기로 동거차도에 들어와서 인양되는 세월호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는 가족들의 얼굴을 찍는다. “2014년 4월16일로 되돌아온 것만 같다. 침몰한 세월호 주변에 20여척의 배와 헬기가 떠 있는 모습이 그날의 모습과 똑같다. 눈물 흘리는 희생자 가족의 모습을 찍어대는 언론까지….” 장훈씨가 말했다.
진도 해상, 동거차도/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세월호를 향해 다가가는 ‘진실호’ 영상 보기 ▶‘진실호’ 에서 바라본 세월호의 처참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