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 엄마·아빠들, 산마루에 천막텐트
2015년 8월부터 세월호 인양 현장 지켜봐
바위에 건 ‘기다립니다’ 펼침막은 어느새 찢겨…
언제 내려갈거냔 질문에 “쟤들이 가야 나도…”
2015년 8월말 세월호 유가족들이 동거차도 바닷가에 걸었던 ‘9명의 미수습자 가족이 기다립니다’라고 적힌 가로세로 각 4m 정도의 펼침막. 세월호 인양작업을 맡은 중국 국영기업 상하이샐비지 관계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인양 작업이 신속하고 온전하게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거친 바닷바람에 이 펼침막은 6개월만에 찢기고 상했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제공
25일 ‘9명의 미수습자 가족이 기다립니다’라고 적힌 대형 펼침막이 비바람에 찢긴 모습. 2015년 8월말 세월호 유가족들이 동거차도 바닷가에 내걸었지만 6개월만에 비바람에 찢겨 훼손됐다. 지금은 접혀서 바위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것을 사진을 찍기 위해 펼쳤다가 원상태로 돌려놨다. 저 멀리 바다에서 세월호 인양 작업이 한창인 현장이 보인다. 김규남 기자.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 세월호 인양 가족 감시단 천막이 있는 산마루에서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은 좁은 숲길이다. 원래는 동거차도 주민들이 이따금 낚시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풀이 무성하고 폭이 좁은 길이어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엄마·아빠들이 손수 ‘정글도’와 낫으로 풀을 베며 길을 다듬었다고 한다. 한겨울에도 눈이 쌓이면 길인지, 길 옆 낭떠러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그 길을 엄마·아빠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르내렸다고 한다. 그 바닷가가 세월호 인양현장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것, 그 이유 하나 때문이다.
“이렇게 가까운데.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들이 세월호 안에 가만히 있지 않고 밖으로만 나왔어도 둥둥 떠서 이 가까운 동거차도로 와서 살 수 있었을 텐데…” 이 바닷가로 내려와 보고 아빠·엄마들은 가슴을 쳤다고 한다.
2015년 8월말 동거차도 바닷가에서 세월호 유가족이 세월호 인양작업을 카메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제공
15분 남짓 좁은 숲길을 빠져나오자 온통 바위투성이인 경사로가 나왔다. 저 아래에서 파도가 철썩철썩 쳤다. 25일 오전 동거차도 앞바다 3km 남짓 떨어진 곳에서는 세월호 인양 작업이 한창이었다. 세월호를 싣기 위해 잠수했던 반잠수선이 부상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반잠수선이 해수면 위 2m 올라왔고, 앞으로 14m를 더 상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바닷가에서는 산마루에서보다 인양 작업 현장이 더욱 가까워 보였다.
2015년 8월말 동거차도 바닷가 평평한 바위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설치한 텐트. 앙상한 텐트는 거센 바닷바람에 이틀도 못 버티고 망가졌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제공.
지난 2015년 8월29일 엄마·아빠들은 동거차도의 야산 산마루에 천막을 쳤다. 열흘 앞선 8월19일, 세월호 침몰 490일째인 이날 세월호 인양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인양현장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었던 엄마·아빠들은 현장에서 가까운 바닷가 쪽으로 내려갔다. 바다 위 완만한 절벽에 텐트를 쳤다. 이곳에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설치해 인양작업을 24시간 갈무리했다. 늦여름 바닷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앙상한 텐트 하나로 버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틀 만에 망가진 텐트를 뒤로하고 산마루로 올라왔다. 대신 ‘9명의 미수습자 가족이 기다립니다’라고 적힌 가로세로 각 4m 정도의 커다란 펼침막을 바위에 걸어뒀다. 위에는 빨간 글씨의 중국어로, 아래는 검은 글씨의 한국어로 적었다. 세월호 인양작업을 맡은 중국 국영기업 상하이샐비지 관계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인양작업이 신속하고 온전하게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거친 바닷바람에 이 펼침막은 6개월 만에 찢기고 상했다.
25일 동거차도 ‘엄마·아빠 루트’에 걸려 있는 노란 리본. 김규남 기자
25일 동거차도 ‘엄마·아빠 루트‘에 피어있는 진달래와 노란리본. 김규남 기자
산마루와 바닷가. 20분 남짓 거리다. 그 사이의 길에는 “미안하다” “고맙다” “보고싶다” “사랑한다” 등의 모정과 부정이 적힌 노란 리본이 길을 안내했다. 엄마·아빠들이 길을 다듬었고, 엄마·아빠들의 마음이 가득 담긴 그야말로 ‘엄빠·아빠 루트’였다. 이 길에는 봄의 전령사인 보랏빛 진달래가 피어있었다.
25일 동거차도 바닷가에서 바라본 세월호 인양 현장. 반잠수선이 해수면 위 2m 올라왔고, 앞으로 14m를 더 상승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규남 기자
오전 11시 인양 작업 현장 지휘선인 상하이셀비지의 ‘센첸하오’에서 긴 고동 소리가 동거차도 산마루까지 울려 퍼졌다. 인양 작업자들이 모든 장비를 일자로 도열하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 295명과 미수습자 9명에 대해 묵념하는 의식을 행하는 소리였다. 산마루의 세월호 인양 가족 감시단의 한 아빠는 언제 여기서 내려갈 거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쟤들이 가야 나도 가는 거야.”
동거차도/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