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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조카 덕후감> “캐리 언니는 떠났어, 날 좀 봐줘”

등록 2017-04-02 10:27수정 2017-04-02 13:34

나만 바라보던 조카가 캐리 언니에게 빠져버렸다.
나만 바라보던 조카가 캐리 언니에게 빠져버렸다.
[토요판-칼럼] 남지은의 조카 덕후감

③ 그에게 애인이 생겼다

나만 보면 좋아 죽는 조카가, 나보다 더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 바로 ‘캐리 언니’. “캐리 언니가 좋아, 고모가 좋아?”라고 물으면 지체 없이 “캐리 언니”가 튀어나온다. 아니, 캐리 언니가 뭐가 좋아서? “다 좋아!”

캐리 언니는 유튜브 영상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 진행자다. 조카 또래의 아이들한테는 ‘캐통령’(캐리+대통령)이라고 불린다. 캐리 언니가 새로운 장난감을 갖고 노는 내용인데, 구독자 수만 140만명에 이른다.

처음엔 인정할 수 없었다. 나만 바라보고, 나만 생각할 땐 언제고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다니. 내가 가면 자다가도 뛰어나오는 조카가 캐리 언니 영상을 보고 있을 땐 고모 따윈 안중에도 없다.

“대현아 고모 좀 봐.”

“…”

“고모 친구와 화상통화 하자.”(조카는 화상통화를 좋아한다.)

“…”

나는야 질투의 화신. 급기야 아이가 보던 휴대폰을 뺏으며 관심을 호소한다. “고모 고모 고모 안 돼!”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지만, 이 사랑은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세상을 알아가면서 뽀로로, 케이캅스 등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졌고, 그럴 때마다 고모에 대한 사랑은 줄었다. 은근 서운했다. 이번엔 캐리 언니인가. 그래도 어쩌겠나. 조카가 이렇게 좋아하는 걸. 이게 바로 조카와 애인의 다른 점. 바람난 애인은 응징해야 마땅하지만, 조카는 응원해줘야 한다.

지난해 연말 조카의 생일을 앞두고, 뭘 해줄까 고민하다가 캐리 언니가 떠올랐다. 당시 캐리 언니는 어린이 프로그램 <티브이 유치원>(한국방송2)에도 출연하고 있었다. 조카 사랑에 눈이 멀어 ‘민원 금지’라는 자체적으로 세운 철칙을 무너뜨리고 홍보팀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녹화날 조카 데리고 구경 가도 될까요?” 괜찮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캐리 언니가 진행하는 코너가 바로 끝나면서, 결과적으로 만남은 불발됐다.

잊고 지낸 지 서너달, 이후 조카도 잠잠했다. 역시, 지나가는 사랑이었다며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던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조카가 아빠한테 눈짓을 준다. “대현이가 고모한테 할 말이 있대.” 그렇다. 이 아이는 지금껏 기다리고 있었다. 고모가 제 손을 잡고 캐리 언니한테 데려다주는 날을. 바쁜 고모한테 재촉도 않고, 손꼽았던 모양이다. “주원이(대현의 절친)한테도 ‘같이 캐리 언니 만나러 가자’며 약속을 해놨다”고 동생이 말했다. “고모한테 말하라니, 고모 바빠서 괴롭히면 안돼~라고 하더라고.” 아, 이 속 깊은 아이가 내 조카입니다!

티도 안 내고 기다렸을 조카를 생각하니 대견하면서도 미안해졌다. 근데, 1대 캐리 언니 장혜진씨는 이미 그만뒀고, 2대 캐리 언니가 활동 중이다. 조카한테 캐리 언니(장혜진)와의 만남은 영원히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대현아, 무심했던 고모를 용서해. 고모가 절대 질투나서 방해한 건 아니야.

H6s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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