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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재판 앞둔 박근혜, 낡은 ‘방패’ 바꿀까?

등록 2017-04-21 20:30수정 2017-04-21 21:04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3월31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들어서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3월31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들어서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석진환
사회에디터석 법조팀장 soulfat@hani.co.kr

온 나라가 ‘장미 대선’의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지만,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은 그 ‘장미 대선’의 원인을 제공한 이들의 책임을 가리는 일로 분주하다. ‘공범’과 ‘종범’의 재판이 한참 진행됐으나, 역시 ‘국정농단’ 재판의 하이라이트는 ‘주범’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일 수밖에 없다.

이 역사적인 재판은 대선이 끝난 5월 중순께 본격적으로 열리지만, 재판의 첫 절차는 5월2일 시작된다. 공판준비기일이라고 부르는 이 자리에서 검찰과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법정에서 처음으로 만나 정식 재판에 필요한 증거조사 계획 등을 세우게 된다. 계획을 세우려면 박 전 대통령 쪽이 먼저 혐의를 인정하는지 의견을 내고, 검찰이 제출한 서류들을 증거로 채택하는 것에 동의할지 밝히는 절차를 밟는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이 밝힌 혐의 사실 가운데 단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공판준비기일 때도 검찰의 증거 자료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검찰과 박 전 대통령 쪽은 법정에서 혐의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원점에서부터 다시 공방을 벌여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18건에 달하고, 검찰의 공소장만 150여쪽, 관련 수사기록은 수만 페이지에 달한다. 공판 과정은 매우 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마라톤 재판’이 될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세윤)는 공범인 최순실씨를 비롯해 안종범, 정호성, 차은택, 송성각, 김종, 장시호 등 ‘국정농단’ 주요 인물들의 재판도 함께 맡고 있다. 이 재판부는 지난 20일 정호성 전 비서관 재판에서 “이 사건은 공범인 박 전 대통령의 심리를 마친 뒤 하나의 결론으로 선고하는 게 마땅하다”고 밝혔다. 정 전 비서관뿐 아니라 최순실씨 등 공범 관계인 다른 피고인들의 선고를 박 전 대통령과 함께 하겠다는 예고였다. 그러려면 재판부는 대기 중인 다른 공범들을 고려해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 재판이 일주일에 2~3차례 열리는 ‘집중 심리’로 진행될 거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사정 탓에 법조계에선 박 전 대통령이 변호인단을 보강하지 않으면 사실상 재판 대응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변호인단은 방대한 수사기록을 파악하고, 각각의 혐의마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하는 대응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 재판 중 끝없이 이어질 증인신문 준비도 품이 많이 든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은 오로지 유영하·채명성 두 변호사에게만 의지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유영하 변호사의 말만 듣는다”는 건 법조계에선 누구나 아는 이야기가 됐다. 탄핵심판 때부터 지금껏 혐의를 일부 인정하며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조언은 철저히 무시됐다.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 가서도 여전히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 같다”는 냉소가 이어지고 있다.

‘다음주의 질문’은 바로 이 지점이다. 박 전 대통령이 과연 변호인단을 보강하거나 교체할 수 있을까? 5월2일이 공판준비기일이니, 박 전 대통령의 ‘법정싸움’ 준비 기간은 다음주가 마지노선이다.

박 전 대통령을 응원할 처지는 아니라고 해도, 누구든 법정에서 최대한의 방어권을 행사하고 이를 보장해주는 건 언제나 정당하다. 역사적 재판인 만큼 더 엄격하고 치열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태라면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되는 맥빠진 재판이 될 게 뻔하다. 어쩌면 사건 기록도 제대로 읽지 않은 대통령 대리인단이 비아냥과 억지 주장만 쏟아냈던 탄핵심판 변론 수준에도 못 미칠 것이다.

다행히 박 전 대통령이 최근 삼성동 집을 팔고 내곡동으로 이사하기로 하면서, 차액이 꽤 생겼다고 한다. 거절당하긴 했지만 얼마 전엔 존경받는 한 원로 인권변호사에게 변론 요청을 넣었다는 말도 들린다. 누구든 좋으니 대통령 재직 때와 같은 ‘인사 참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주변 조언을 경청하고 삼고초려를 해서 합리적이고 실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길 권한다. 국민은 이미 ‘국정농단’으로 참담할 만큼 상처를 입었다. 수준 이하의 법정 대응으로 상처 난 자존심 위에 소금을 뿌리는 일은 제발 하지 말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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