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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거 다 조작이야” 박사모는 추첨결과도 승복할 수 없었다

등록 2017-05-19 17:18수정 2017-05-20 14:24

‘박근혜 첫 재판’ 방청권 추첨현장 가보니
까톡~까톡!

야근하고 쉬는 다음 날 팀장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19일은 출근하지 말고 여기로 가세요” 팀장 지시사항과 함께 기사 링크가 도착했다. “확률은 중요하지 않아요. 무조건 방청권을 가져오세요~” 팀장은 ‘우주의 기운’을 받아 꼭 방청권을 뽑아오라고 했다.

법원, 박근혜 전 대통령 첫 재판 방청권 추첨

서울중앙지법이 오는 23일 열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 첫 재판 방청권을 추첨하겠다고 밝혔다. (중략) 방청을 원하는 국민은 오는 19일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서울 서초동 서울회생법원 제1호 법정에 와서 응모권을 직접 작성해 제출하면 된다. 방청권 추첨은 같은 장소에서 11시15분부터 공개 추첨한다.

6시30분부터 늘어선 줄…60대 이상이 가장 많아

운명의 날이 밝았다. 선착순은 아니었지만 아침 일찍 법원에 도착했다. 오전 8시40분. 서울 서초동 서울회생법원 209법정(제1호) 앞에는 이미 20여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줄의 가장 앞자리는 네댓명의 어르신들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 뒤로 노란 세월호 리본을 단 청소년이 보였다. 다양한 연령이 있었지만,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가장 많았다.

9시가 가까워지자 줄은 50~60여명으로 길어졌다. 한 방송사 기자가 가장 앞줄의 어르신을 인터뷰했다. “6시30분에 도착해서 현관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어요” 또 다른 젊은 여성은 “박근혜가 어떻게 말하는지 듣고 싶어서 방청 신청을 하러 왔다”고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중년 여성 한 명이 두리번 거리며 손가락으로 머릿수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연신 카카오톡 문자를 보내기 시작한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글자가 너무 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종북좌파들 숫자가 늘어나고 있어 위압감이 느껴집니다”

생면부지의 군중 속에서 ‘종북좌파’를 골라 낸 중년 여성은 ‘애국보수 동지들’에게 급보를 띄워 “화력 지원”을 요청한 뒤 일행으로 보이는 다른 중년 여성과 귓속말을 나눴다.

9시를 넘어서자 줄은 빠르게 길어졌다.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들었고, 막 도착했을 때의 무거운 정적은 출근하는 법원 직원, 민원인과 방청 신청자, 취재진의 웅성임으로 바뀌었다. 긴 줄의 꼬리는 금새 복도 끝을 넘어 오른쪽으로 꺾였다. 혼란은 없었으나 더 이상 줄을 설 자리가 없었다.

복도가 복잡해지자 법원은 예정보다 15분 이른 9시45분부터 추첨장소인 209법정 입장을 허용했다. 법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법원 직원 2명이 색깔이 다른 종이 두 장을 나눠줬다. “흰색은 23일, 녹색은 25일 재판 방청 응모권입니다” 두 장의 응모권에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내 번호는 19번.

법정에 들어선 뒤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은 응모권을 추첨함에 넣었다. 접수가 진행되는 동안 “휴대전화 메시지로도 당첨자 안내가 전달되니 용무가 있으면 추첨을 보지 않고 가도 된다”는 안내가 반복됐다. 하지만 대부분은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11시. 추첨은 빠르게 진행됐다. 법원 직원은 응모함을 수차례 뒤집었다. ‘골고루’ 섞어 공정하게 뽑기 위함이리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과장, 형사단독1과장·2과장 등 3명이 23일 방청권을 뽑았다. 68명이 선발됐다. 번호가 하나씩 불리고 숫자가 화면에 뜰 때마다 작은 환호성과 박수, 탄식이 엇갈렸다. 당첨자가 절반 쯤 나왔을 때 “앞 번호가 너무 안 나온다. 말이 안 된다”는 작은 항의가 있었다. 빈 칸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결과는? 나는 ‘역사적인 첫 재판’의 방청인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기회는 한 번 더 있다. 곧바로 25일 방청권 추첨이 이어졌다. 추첨에 앞서 “앞 번호가 나오지 않았다”는 항의가 이어지자 법원 직원은 보란 듯이 온 힘을 다해 큼직한 투명 응모함을 흔들었다. 방청객들은 이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추첨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빠르게 번호가 불릴 때마다 마찬가지로 가벼운 박수와 환호, 탄식이 오갔다.

“어이고~”

법정에서 한 남성의 탄식이 새어나왔다. 추첨 번호가 자신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너무 큰 소리 탓에 팽팽하던 긴장감이 깨졌다. 방청객들과 법원 직원들, 취재진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71번부터 74번이 연달아 뽑혔다. 그리고 76번이 나오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75번 불쌍하다.”

경쟁률은 7.7대 1…일부는 ‘추첨 조작’ 의혹 제기도

추첨은 금세 끝났다. 경쟁률은 7.7대 1. 두 차례의 추첨에서 ‘19번’은 불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법정을 나섰지만 일부는 추첨에 부정이 있다며 법원 직원들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자리를 지켰던 어르신들은 “선착순으로 해야지!”라며 강한 불만을 표했고,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이 이렇게 일을 하면 되느냐”며 훈계하는 이도 있었다. 한 중년 여성은 “한 자리 숫자는 하나도 안나왔다”며 “앞 번호 응모권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른 아침부터 ‘종북좌파’를 감별하던 여성은 법원 직원에게 ‘항의반 욕설반’을 퍼붓다 퇴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다 조작이야, ○○.”

법원에서 보낸 ‘방청 당첨’ 메시지
법원에서 보낸 ‘방청 당첨’ 메시지
빈손으로 회사에 돌아갈 생각에 민망하던 중 뜻밖의 희소식이 들려왔다. 함께 온 동료기자가 25일 방청권을 뽑았다고 한다. 아쉽지만 역사적인 현장은 동료기자가 대신하는 걸로…

조승현 기자 sh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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