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지난 1월 구금연장 심리가 열린 덴마크 올보르 지방법원에서 휴식 시간 중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유튜브 길바닥저널리스트 갈무리
‘국정농단’ 핵심 인물 최순실(61·구속기소)씨의 딸 정유라(21)씨가 도피 245일 만에 한국에 돌아옵니다. 지난 30일 덴마크를 출발한 정씨는 31일 새벽 경유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의 한국행 국적기에서 검찰에 체포됐습니다. 31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딸이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최씨는 29일 법정에서 “유연이(정유라씨 개명 전 이름)는 삼성 말 한 번 잘못 빌려 탔다가 완전히 병신이 됐고 승마협회에서도 쫓겨났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처음에는 검찰에서 저를 강요, 압박으로 기소했다가 뇌물죄로 정리했는데 승마는 오히려 모르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유연이도 자꾸 죽이려고 하지 마라”고 주장했습니다.
정유라씨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년 넘게 ‘비선’으로 살아온 최씨가 유독 딸과 관련된 승마와 대학 문제만은 직접 나섰고, 박 전 대통령 또한 세월호 참사가 난 다음날 정씨 승마 문제를 챙길 정도였으니까요.(
▶박대통령, 세월호 참사 이튿날에도 정유라 챙긴 의혹) ‘딸 바보’ 최씨는 지난해 12월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로 진행된 국회 국정조사특위의 접견 신문에서도 “본인 때문에 딸 정유라와 박 대통령 중 누가 더 상실감이 크고 더 어려운 상황이 됐겠느냐”는 물음에 울음을 터트리며 “딸이죠”라고 답했습니다.
정씨는 지난 1월1일 덴마크에서 체포된 뒤 인터뷰에서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화여대 학점 특혜 의혹이나 삼성의 승마 지원 문제 등 거의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 “엄마가 알아서 한 일이고, 엄마의 일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자신의 ‘약자적 위치’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4월 덴마크 현지 언론과 만나 “한국에 들어가면 아들을 뺏길까 두렵다”며 최씨의 국정농단에 대해 자신은 아는 것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습니다. 덴마크 올보르 지방법원이 정씨의 한국 송환 불복 소송을 기각한 뒤의 일입니다. 정씨는 이후 다시 한번 고등법원에 항소하며 귀국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만, 지난 24일 돌연 항소심을 자진 철회하며 한국행을 선택했습니다.
최순실씨의 측근이었던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은 정씨를 럭비공에 빗댄 적이 있습니다.(
▶노승일 “정유라는 럭비공, 귀국해 입 열면 다 터진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툭 건드리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이 친구는 여과없이 얘기한다”는 게 노 전 부장의 주장입니다. 31일이면 한국에 도착하게 될 정유라씨. ‘특급 특혜’를 누렸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그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까요? 그가 받고 있는 혐의를 하나씩 정리해봤습니다.
최순실(맨 오른쪽)씨가 2014년 7월19일 경기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마장마술 경기에 참가한 딸 정유라씨에게 음료를 건네고 있다. 과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 업무방해죄 : 이화여대 부정입학·학점 특혜
지난해 12월 특검이 발부받은 체포영장에 적시된 정씨의 혐의는 이화여대 입학·학사 비리 등의 업무방해 혐의입니다. 정씨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키운 기폭제였습니다. 입시비리에 민감한 국민들은 오직 정씨 한 명만을 위해 짜여진 듯 한 특혜에 공분했습니다. 그에게 집중된 특혜 의혹들을 살펴보면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발탁 △이화여대 입학(2015년) △체육특기생 위한 학칙 개정 △각종 학점 특혜 △대한체육회·한국마사회 등 공기업들 특혜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 강제 퇴직 등입니다. (
▶이것만 보면 다 안다, 최순실 게이트 총정리 2탄) 이 가운데 정씨가 주도해 저지른 범법 행위인 것은 별로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각종 특혜의 수혜자로서 어머니 최씨가 저지른 이런 행위들을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판정 논란, 체육특기자 종목 승마 확대, 원서 마감일 뒤에 받은 아시안게임 금메달 실적 포함 등은 모두 정씨를 위한 ‘맞춤 전형’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렵사리’ 이화여대에 입학했지만, 정작 정씨는 학교 생활에 흥미를 못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정씨는 독일에서 승마 훈련을 한다는 이유로 등교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1학년 1학기에 학사경고를 받고 2학기엔 휴학, 2학년 1학기엔 학사경고를 간신히 면한 상태였습니다. 그해 1월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임신 25주차라는 글을 올린 것으로 보면, 정씨는 2015년 5월께 출산을 해 수업에 출석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씨가 제적 위기에 몰리자 최씨는 딸과 함께 지도교수를 찾아가 폭언을 퍼붓고 교수를 교체합니다. 이대는 정씨의 제적을 막아주기 위해 학칙 개정까지 합니다. (
▶ 이대, 최순실 딸 맞춤형 학칙 개정?) 그럼에도 정씨는 여전히 특혜 의혹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지난 1월 덴마크 체포 당시 인터뷰에서 “2016년도에 제적이 될 줄 알았는데, 제가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2016년에) 어머니랑 학교를 가서 류철균 교수와 최경희 총장님을 만났다. 저는 먼저 왔고, 어머니는 학교에 있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아예 몰랐는데 학점이 나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정씨에게 이 특혜들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마음속에 메트로놈 하나 놓고 달그닥, 훅’ ‘해도 해도 않되는 망할새끼들에게 쓰는 수법’ 등의 표현으로 채운 리포트를 내고도 B학점을 받았으니까요. 그가 2014년 12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돈도 실력이니, 능력 없으면 너네 부모를 원망하라”는 ‘금수저론’에 따르면 말입니다.
2. 제3자 뇌물죄 : 삼성 승마지원 수혜
30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는 “정씨에 대한 주된 조사는 특수1부가 담당하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특수1부는 검찰 ‘국정농단’ 특수본 1기 때부터 삼성그룹이 최씨 모녀를 승마 등 특혜 지원한 의혹을 주로 수사해왔습니다. 때문에 정씨의 주요 혐의인 이대 입학·학사 비리 외에도 박 전 대통령, 최씨와 함께 뇌물죄 공범으로 입건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
▶정유라 승마의혹 파헤친 ‘특수1부’서 조사)
삼성은 정상적인 후원으로는 보기 어려운 거액을 정씨의 승마비용으로 사용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삼성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지원하는 대가로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과 정씨의 ‘승마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미래전략실을 통해 삼성 계열사의 이름으로 미르·K스포츠 재단에 204억원을 제공했으며, 정씨의 승마 훈련비 명목으로 213억원의 지원 계약을 맺은 뒤 실제로 78억원을 송금했습니다. 2015년 7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공단의 찬성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결정되고,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삼청동 안가 독대’가 있고 난 직후 결정된 일입니다. (
▶ 국민연금 ‘삼성 합병찬성 결정’ 직후, 청와대에 직보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과의 세 차례 독대에서 뿐 아니라 청와대 업무지시로 ‘깨알같이’ 정씨를 챙겼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1월 김종 문체부 차관에게 정씨를 콕 찍어 “정유라 같은 선수를 지원하라”고 지시하고, 김 전 차관은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을 분기별로 만나 정씨에 대한 승마협회 지원을 논의했습니다. 같은 해 7월에도 박 전 대통령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통해 삼성 합병에 유리하도록 국민연금 쪽에 압력을 행사했습니다. 그 결과 ‘피의자 박근혜’가 최씨와 공모해 삼성으로부터 약속 받은 뇌물이 433억원, 실제 받은 액수는 298억원이었습니다.
지난 2월 구속된 이 부회장에게는 뇌물공여죄가, 안 전 수석과 최씨에게는 제3자뇌물죄가 적용됐습니다. 때문에 ‘전폭적인 특혜’의 수혜자인 정씨 또한 제3자뇌물죄의 공범으로 묶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제3자뇌물죄가 성립한다면 피의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게 됩니다.
3. 재산국외도피죄 : 4억원 넘는 본인 명의 독일 주택소유
검찰은 정씨가 독일에 시가 4억원이 넘는 본인 명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점에서 ‘자금 세탁’ 의혹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씨 모녀는 독일로 이주한 뒤 여러 채의 호텔과 주택을 사들였습니다. 이 가운데 단독주택 한 채는 정씨 명의로 2015년 12월 하나은행 독일법인에서 대출받은 돈 4억5000천만원(36만유로)으로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19살 대학생’이었던 정씨가 어떻게 은행에서 그런 거액을 빌릴 수 있었는지 의혹이 쏟아졌습니다.
해당 자금은 외환은행(현 하나은행) 압구정지점이 강원도 평창 일대의 땅 등을 담보로 발급한 ‘보증신용장’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정씨는 최씨가 독일에 세운 페이퍼컴퍼니인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 재직증명서를 제출해 기업들이 무역거래를 할 때나 쓰는 보증신용장을 발급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하나은행 독일법인이 정씨에게 두 차례에 걸쳐 4억여원을 대출해 준 것입니다. 이 대출을 승인한 하나은행 독일법인장은 대출이 실행되고 얼마 뒤 임원으로 승진했습니다. (
▶ KEB하나은행, 정유라 특혜대출 의혹)
‘특혜 대출의혹’에 대해 정씨는 지난 1월 “아버지 몫의 강원도 땅을 제가 인수를 받고 외환은행에서 담보를 잡았다. 그래서 총 2차례에 걸쳐서 36만유로를 대출받았다. 그래서 1원 한 장 저희 돈 안 쓰고, 그 대출만으로 이 집을 샀다”고 말했습니다. 부동산을 담보로 잡아 대출 받은 돈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해명입니다. 하지만 독일로 돈을 송금하는 간단한 방법을 두고 굳이 복잡한 대출 방식을 택한 점에서 ‘자금 세탁’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외환 전문가들은 이들이 ‘국외 송금 규제’와 ’자금 추적’을 동시에 피한 채 국내 자금을 외국으로 가져 나가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
▶ 정유라 은행에 낸 재직증명서 ‘비덱’…자금세탁 노렸나)
이와 관련해 정씨는 지난해 12월 독일에서도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씨도 이를 의식한 듯 자신은 “회사 일은 아예 모른다”고 주장했지만, 최씨의 국외 차명재산 은닉과 재산국외도피에 공모한 혐의가 포착될 경우 그 또한 엄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최순실씨와 딸 정유라씨 가족이 머문 것으로 추정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그라벤 비센베르그가의 한 주택. 프랑크푸르트/송호진 기자
검찰이 주목하지 않지만 많은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던 ‘혐의’도 있습니다. 정씨가 덴마크에서 체포되며 방치된 그의 반려동물들에 대한 ‘동물 학대 혐의’입니다. 지난 1월 정씨가 체포되면서 남겨 놓고 간 고양이 9마리는 모두 랙돌(Ragdoll·고양이 품종)이나 ‘먼치킨’으로 보이는 비싼 품종묘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정씨가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가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유라는 밉지만…반려동물은 무슨 죄냥, 무사하시개!)
딸의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최씨도, 정씨를 친딸처럼 챙기던 박 전 대통령도 현재는 모두 구속 상태입니다. 31일 인천공항에 도착 즉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돼 조사를 받게 되는 정씨는 이제 이들의 도움없이 스스로 앞날을 개척해야 합니다. ‘럭비공’이라는 평가처럼 국정농단 피의자들에 대한 수사에 불을 지필지, 계속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회피할지 정씨의 태도가 주목됩니다.
지난 1월 정유라씨가 덴마크 현지에서 체포될 당시 정씨의 거주지에서 발견된 고양이들. SBS 비디오머그 화면 갈무리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