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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전국 판사대표 100명이 19일 모인다는데…

등록 2017-06-16 20:51수정 2017-06-16 21:08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서울중앙지방법원 단독판사들이 ‘사법개혁 축소 의혹’에 대해 단독판사회의를 개최한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청사 들머리에 법과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 그림이 붙어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서울중앙지방법원 단독판사들이 ‘사법개혁 축소 의혹’에 대해 단독판사회의를 개최한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청사 들머리에 법과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 그림이 붙어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2004년 8월 ‘청렴 법관’의 상징이었던 조무제 대법관은 자신의 퇴임식에서 “이해관계에 얽힌 주위로부터 초연하며 보편성을 띤 사색을 이어나가는 데에는 고독함이 따르지만, 법관은 그 고독함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법원을 떠났다. 지금도 이 짧은 조언이 큰 울림으로 남는다고 말하는 법관들이 많다.

‘엄정한 독립’과 ‘절대 고독’의 업을 쌓아야 하는 판사들이지만, 현실은 판사들을 홀로 그리고 고독하게 내버려두는 것 같지 않다. 오는 19일 전국 각급 법원 소속 판사 100명이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사법연수원에 모인다. 각급 법원의 논의를 통해 대표로 선출된 이들이니, 규모는 100명이지만 의미는 그 이상일 것이다. 판사들의 인사를 주무르는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내부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행사를 축소하도록 압박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것을 두고 일선 판사들이 반발한 결과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판사들이 이렇게 집단적인 행동을 한 사례는 다섯번 정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사법 파동’이라고 부른다. 1차는 1971년 8월이었다. 검찰 공안부가 잇단 시국사건의 무죄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 2명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게 발단이었다. 전국 판사의 36%인 153명이 사표를 냈고, 검찰은 수사를 중단했다. 2차는 1988년 소장판사 335명이 5공화국 사법부 수장의 재임명에 반발해 성명을 냈고, 당시 김용철 대법원장이 사퇴했다. 3차는 1993년 서울중앙지법 판사들의 법관 인사 독립 요구에 변호사단체와 사법연수생들이 가세하자, 당시 김덕주 대법원장이 퇴진했다. 4차는 2003년 남성 중심 대법관 구성과 기수 중심 인사 관행에 항의하는 소장판사들의 연판장 등으로 법관대표회의가 열렸다. 이후 여성 헌법재판관과 여성 대법관이 임명됐다. 5차는 2009년 당시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 재판’ 관여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국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열렸다. 법원장의 사건배당 재량권 제한 등의 후속 조치가 있었지만 신 대법관은 자리를 지켜 빛이 다소 바랬다.

다섯번의 집단행동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법원’과 ‘재판’이 외부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를 위해 법관 인사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원했다는 점이다. 비슷한 점은 또 있다. 2차와 3차, 4차 집단행동이 공교롭게 새 대통령이 뽑히고 정부가 출범한 첫해에 이뤄졌다. 19일 열리는 전국판사회의도 정부 출범 직후에 열린다. 판사들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 그에 상응한 수준의 사법부 개혁을 요구하고 나선 셈이다. 더구나 이런 요구는 사법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나왔다. ‘삼권 분립’의 국가에서,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했다고 대통령이 사법부를 개혁하겠다고 나설 수 없는 노릇이다. 조직 내부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젊은 판사들의 비판적인 목소리는, 조직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기본 조건이기도 하다.

19일 예정된 전국법관회의가 주목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판사들은 회의에서 △법원행정처의 행정권 남용 조사 결과 및 이에 대한 평가 △대법원장을 포함한 책임 규명의 문제 △인사권 남용 재발방지 대책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 등을 논의한다고 한다. 이를 관통하는 핵심은 ‘법관 인사 등 사법행정을 장악한 법원행정처의 비대화와 관료화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최근 대법원이 골프·향응 접대를 받은 부산지역 판사의 비위 사실을 검찰에서 통보받고도 덮었다는 <한겨레> 보도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관료집단화가 낳은 결과다. 판사의 청렴은 우리 사법체계의 마지막 보루이다. 재판을 받게 되는 수많은 서민의 ‘승복’ 문제와 직결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조직 논리를 내세우는 권위적인 관료집단이 생겨나다 보니 추상 같아야 할 청렴의 기준이 뒷순위로 밀리게 된 것이다.

석진환 사회에디터석 법조팀장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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