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5월23일 왼쪽 옷깃에 수인번호 '503번'을 달고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최유진 기자 strongman55@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고인들에 대한 1심 판단이, 이 사건 공범으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블랙리스트’ 관련 심리는 아직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터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 대한 판결문과 재판기록이 증거로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블랙리스트’ 사건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부당하게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의 사직서 제출을 지시한 부분을 ‘위법행위’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사건의 핵심 쟁점인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행위에 대해선 책임을 물을 근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비쳤다.
먼저 재판부는 노태강 전 국장에 대한 사직 요구의 정점엔 박 전 대통령 지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이 (사직서 제출을) 강요하고 이를 교문수석과 문체부 장관이 문체부 공무원에게 하달해 실행한 것으로, 대통령을 공범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은 공무원에 대한 임면권을 갖고 있지만,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사직하게 하는 것은 신분보장과 직업공무원제도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위법하고 부당한 지시임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등도 일관된 증언을 하고 있어, 박 전 대통령도 이 부분의 유죄를 피해가긴 어려워 보인다. 다만 재판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적용에 소극적인 문체부 1급 공무원 3명의 사직을 강요한 부분은 위법한 행위로 보지 않았다. “1급 공무원의 경우 국가공무원법의 신분보장 대상에서 제외된 만큼 의사에 반해 면직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기획과 작성, 집행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부분은 향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문체부 보고서 내용을 보고받았을 개연성이 크지만, 지원배제 범행을 지시하거나 지휘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이 보고를 받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볼 구체적 증거나 정황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재판부는 사실상 김 전 실장이 정점에서 ‘블랙리스트’ 집행을 지휘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블랙리스트’ 재판에선 박 전 대통령 ‘손때’가 묻은 정황들이 다수 제시된 터라, 무죄를 예단할 수 없다는 평가도 있다.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박 전 대통령이 회의나 만찬 자리에서 “롯데, CJ 투자자들이 좌편향 성향으로 투자하고 있다”, “문화계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 MB 때 좌파척결에 있어 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김종덕 전 장관 역시 2015년 1월 초 박 전 대통령이 “보조금 집행이 잘 돼야 한다. 편향적인 데 지원되면 안 된다”고 말한 데 이어 김상률 전 수석을 통해 “문체부 예술지원 사업 관련 건전콘텐츠를 잘 관리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한 바 있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대통령의 이런 말은 사실상 특정 성향 단체나 인물을 분리해서 지원하라는 가이드라인으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서울 지역의 한 판사도 “박 전 대통령 가담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심리가 이뤄졌다고 볼 순 없다. 김 전 실장 등이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거나 지시받은 내용 등에 대한 증거가 보강되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최씨에 대해선 “김 전 실장 등과 공모하거나 실행행위에 가담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공범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