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검찰 깃발이 태양아래 펄럭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검찰이 지난 17일 독재정권의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들을 위해 직접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8월에는 문무일 검찰총장이 과거사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과거사 사건의 대표적 가해자인 검찰의 첫 공식 사과다. 다행스럽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검찰의 ‘반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지금이 2017년이기 때문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사법부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고 사과한 게 2005년 9월이다. 사과 두 달 전인 2005년 7월 서울고법은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인 함주명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고, 12년이 지난 지금도 재심 무죄 판결을 기다리는 피해자들이 법원을 찾고 있다.
정작 그 12년 동안 검찰은 무엇을 했나. 검찰은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에 항고, 재항고로 상급 법원에서 다시 판단해 달라며 맞섰고, 무죄 판결이 나면 기계적으로 항소, 상고를 해왔다. 2012년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한 임은정 검사에게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내린 것도 검찰이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께 깊이 사과한다”는 문무일 총장의 말이 2005년에 나왔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2017년의 사과에는 반드시 지난 12년 검찰이 했던 일에 대한 반성도 담겼어야 했다. 지난 8월 문 총장의 사과나 검찰의 이번 직권재심 청구 발표를 보면, 마치 지난 12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한 6건의 사건 중에도 검찰이 무죄 판결에 항소·상고하지 않은 건 아람회, 태영호 사건뿐이다.
검찰이 재심을 청구하겠다는 ‘남조선 해방 전략당 사건’ 피해자 유가족인 이명재씨에게서 18일 연락이 왔다. 이씨의 아버지 이강복씨는 이 사건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1971년 암으로 숨졌다. 이씨는 2009년 아버지의 재심을 청구해 2011년 무죄가 선고됐지만, 검찰의 상고로 2014년에야 무죄가 확정됐다. “검찰이 재심에서 무죄가 나도 무조건 상고해서 3년을 기다렸거든요. 학수고대하던 무죄였는데 상고하면서 국가를 원망하고, 땅을 치고,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데…. 검찰이 우리한테도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한발 늦었지만, 검찰이 지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10년 뒤 평가는 또 달라질 수 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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