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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청탁금지법 1년…‘귀찮은 예의’가 사라졌다, 거절이 쉬워졌다

등록 2017-09-25 15:55수정 2017-09-25 22:01

[청탁금지법 1년]
고등교사 “선물 건네려는 학부모에
‘김영란법’ 언급하면 쉽게 수긍”

공기업 직원 “더치페이 하니까
술자리 많이 줄어서 더 좋다”

국민 10명 중 9명 “법 효과 있다”
법 시행 찬성비율도 1.8%p 늘어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가 지난해 8월18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청탁금지법 시행과 기업의 대응과제 설명회에서 법령의 주요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가 지난해 8월18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청탁금지법 시행과 기업의 대응과제 설명회에서 법령의 주요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영란법 때문에요.”

고등학교 교사 유아무개(31)씨가 지난해 10월 이래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다. 선물을 들고 자신을 찾는 학부모에게 이 한마디만 하면 서로 무안하지 않게 상황이 정리됐다. 그는 “학부모들도 학교에 올 때 빈손으로 와서 부담이 없고, 선물을 가져와도 ‘김영란법’을 언급하면 학부모들이 쉽게 수긍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28일부터 시행된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 이른바 ‘김영란법’)이 상대방의 ‘호의’와 ‘청탁’의 구분이 애매한, 그래서 더 골치아픈 작은 ‘성의 표시’를 거절하기 위한 ‘핑계’가 되어줬다고 여러 공무원, 교사 등은 평가했다.

껄끄러운 청탁 자체를 물리치는 일도 더 편해졌다. 검찰 공무원 장아무개(28)씨는 “아는 사람이 곤란한 부탁을 할 때 거절하기 난처했는데 김영란법 핑계를 대면 되니까 좋다. 서로 안 주고 안 받으면 불편할 것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한 과장은 “병원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복지부에는 장관부터 말단까지 병원 예약 등의 민원이 몰렸는데, 김영란법 이후 그게 없어져 편하다”고 말했다.

‘번거로운 예의차림’, ‘의례적 눈치보기’도 사라졌다. 13년차 공기업 직원은 “정부기관 사람들과 만날 때 선물 생각 안해도 돼서 좋고, 더치페이하니까 술자리가 많이 줄어들어서 더 좋다”고 말했다. 한 초등학교 보건교사는 “학부모들한테 받는 것에 대한 거절이 쉬워진 것뿐만 아니라, 명절 등에 다른 교사들한테 선물주지 않아도 돼 좋다”고 말했다. 통상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으로 5만원 이하의 선물은 문제될 게 없지만 현장에서는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선물을 거의 주고 받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학자 정수복은 청탁금지법에 대해 “연고주의 등으로 얽힌 한국인의 ‘마음의 습관’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짚었다. 청탁금지법은 미풍양속이나 마땅한 도리로 여겨온 호의와 성의도 거절하라고 마련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한국사회학회가 주최한 ‘청탁금지법 1년과 한국사회’ 학술대회에서 그는 “‘정의보다 의리’가 앞서는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친척이나 동창으로부터 청탁을 받았을 때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부담감을 느낀다”며 “청탁금지법을 계기로 의리보다 정의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개개인의 마음 속에 뿌리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뜨끈하고도 끈끈한 전근대적 관계의 습성을 냉정하지만 깔끔한 합리적 상태로 바꿔놓는 전기로 청탁금지법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민원인을 대접하기도 하고, 결혼식을 알리지 않는 일도 늘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 민원실에서 근무하는 한 경위는 “청탁금지법 홍보가 잘 돼 뭘 가져오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민원인이 가져오더라도 시시티브이(CCTV)를 가리키며 ‘김영란법 때문에’라면서 박카스 한병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끼리 일하면서 먹는 음식 있으면 오히려 민원인들과 나눠먹는다”고 했다. 한 국회 공무원은 “상대가 밥이라도 사면 차라도 사야하나 심리적으로 발동동 구르던 게 사라졌다. 아예 주고 받는 게 없어져 편하다”며 “예민한 동료들은 본인 결혼 소식도 알리지 않는다. 괜히 축의금이나 화환 들어오면 곤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탁금지법 시행 1년,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은 법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임동균 서울시립대 교수(도시사회학)가 20일 한국사회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지난달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1202명 가운데 89.4%가 “청탁금지법이 효과가 있다”고 대답했다. ‘선물 교환이 줄었다’, ‘직무 부탁이 줄었다’고 답한 응답자도 각각 65.5%, 65.9%였다. 57.2%는 더치페이가 늘었다고 답했다.

법 시행에 찬성하는 비율은 83.6%(지난해 11월 1566명 조사)에서 85.4%로 올라갔다. 지난 1년간 부정적 여론이 적지 않게 소개됐음에도, 식사·선물·경조사비 등 제한과 관련해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도 48%였다. 공직자 등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자 중에서도 36.6%가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임 교수는 “전반적으로 청탁금지법은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 법이 실질적으로 사회적 관습과 문화적 측면에서 변화를 낳았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박수지 신지민 박수진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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