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길우근 형사과장이 중학생 살인 및 사체유기 사건 피의자 이아무개씨의 살해동기 및 수법 등에 대한 수사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금니 아빠’ 이아무개씨가 딸의 친구인 피해 중학생을 추행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지난달 초 아내가 투신해 죽은 뒤, 딸에게 “엄마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설득해 피해자를 유인한 뒤 추행하고 숨지게 했다.
13일 오전 서울 중랑경찰서는 이씨를 청소년성보호법의 강제추행살인 및 추행유인·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살해 사실을 알고서도 도피를 도운 지인 박아무개(36)씨도 범인도피·은닉 혐의로 함께 검찰에 송치했다. 추행유인·사체유기 혐의를 받고 있는 이씨의 딸(14)은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과 협의 후 신병을 처리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씨가 한달 전 아내의 자살을 방조했다는 의혹이나 온라인 성매매를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 1주일만에 드러난 범행 전모 경찰의 수사 결과를 종합하면, 이씨는 지난달 30일 낮 12시30분께 중랑구 망우동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딸을 통해 피해자를 유인한 뒤, 딸을 시켜 전날 준비한 수면제가 든 음료수 병을 피해자에게 건네 먹였다고 한다. 이씨는 피해자가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자 딸이 집을 비운 사이 피해자를 추행했고, 이튿날인 1일 낮 12시30분께 깨어난 피해자가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자 신고할 것이 두려워 수건과 넥타이를 이용해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고 한다. 이씨는 이후 딸과 함께 피해자의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넣어 트렁크에 실은 뒤, 이날 밤 9시30분께 딸과 함께 강원도 영월군 야산에 유기했다고 한다.
이씨는 피해자를 유인하는 과정에서 “한달 전 엄마가 죽었으니 엄마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며 딸을 설득해 피해자를 집까지 오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범행 당시 이씨는 피해자가 깰수도 있다고 생각해 수면제 3정을 더 먹였다고 진술했다”며 “피해자가 반항을 하는 등 의도대로 되지 않자 우발적으로 살인한 뒤 유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딸은 왜 범행에 가담했나 경찰은 딸이 아버지인 이씨에게 심리적·경제적으로 강하게 종속되어있는 상태로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딸은 집에 도착한 피해자에게 전날 수면제 3정을 넣어둔 음료수를 줬고, 이후 친구가 “감기기운이 있다”고 하자 아버지 지시가 없는 데도 수면제 성분의 알약 2개를 감기약으로 속여 먹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딸의 심리를 분석한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한상아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은 “딸은 아버지로부터 유전병을 물려받아, 병에 대해 상담할 사람이 아버지밖에 없었다. 또 아버지가 자신의 치료를 위해 모금활동을 통해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다”며 “심리적으로 매우 강한 종속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비정상적인 아버지의 행동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상태였다”고 분석했다. 프로파일러는 이어 “면담을 토대로 보면 딸은 이번 일로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아버지가 비난을 받는 건 견디지 못하거나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야중학생 살해·시신유기 사건의 공범인 ‘어금니아빠’ 이모씨 딸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12일 오전 도봉구 서울북부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양의 구속영장은 이날 밤 기각됐다. 연합뉴스
■ 이씨, ‘사이코패스’ 성향도 경찰은 이씨의 심리 상태를 분석한 결과, 한달 전 아내가 숨진 뒤 자신의 성적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자 딸의 친구를 범행 대상으로 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를 면담한 프로파일러는 “이씨의 성적 각성 수준이 병적이거나 집착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일반적 시각에서 과한 수준인 것은 사실”이라며 “아내가 죽은 뒤 (성적 욕구 충족을) 대신할 사람이 필요했고, 성인 여성을 생각하다가 구하기 여의치 않자 통제가 쉬운, 어린 청소년을 고민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사이코패스 성향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파일러는 “이씨가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인식했고, 장애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놀림과 따돌림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자신을 놀리던 반 친구들을 한 대씩 때리는 등 폭력적으로 대응하기도 했다”며 “사이코패스(반사회성 인격장애) 분석 결과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중학생 살인 및 사체유기 사건 피의자인 이아무개씨가 13일 오전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며 사죄의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경찰, 초동수사 실패했나 첫 실종신고 뒤 피해자가 12시간 정도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토대로, 결국 경찰이 초동수사에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의 부모는 피해자가 이씨의 집에 가고 약 11시간 뒤인 지난달 30일 밤 11시20분께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은 중랑구 망우지구대는 피해자의 휴대폰 신호가 끊긴 지역 주변을 2시간40분 가량 수색했으나 소득이 없었고, 이후 피해자 부모에게 “피해자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행적을 알아봐달라”고 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최초에는 대수롭지 않은 단순 가출로 본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처음엔 그렇게 판단을 했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신고만으로 범죄와 연관짓기에는 무리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부모는 첫 실종신고를 할 때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돌아오지 않았고,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내용까지 경찰에 전달했다. 피해자가 만난 친구가 누구인지, 친구의 집이 어디인지에 대해 빠르게 수색했어도 죽음을 막을 시간이 있었다는 대목이다. 경찰은 결국 범행 당일인 1일 밤 9시께 피해자 부모로부터 “피해자가 이씨의 딸과 만났다가 헤어졌다고 들었다”는 얘기를 전달받았다.
수사도 늘어졌다. 경찰은 이튿날인 1일 새벽 2시까지 피해자의 휴대폰이 꺼진 지역을 중심으로 3시간 가량 수색한 뒤인 1일 오전 내내 별다른 수색을 하지 않았다. 오후 4시가 돼서야 김양 주변인물 에스엔에스 등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본격 수색은 2일부터 시작했다. 김양은 1일 낮 12시30분께 살해됐다
경찰은 2일 오전 11시께 이씨의 집을 방문했으나 문이 잠겨 있어 그대로 철수했고, 이날 밤 6시께 이씨의 집 주변 카센터 폐회로텔레비전(CCTV)를 통해 피해자가 이씨의 딸과 함께 집에 들어갔다가, 딸만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밤 9시께 사다리차를 동원해 이씨의 집을 재차 방문했으나 여기서도 별다른 소득 없이 철수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이씨의) 집에 들어간 것을 확인했지만, 처음엔 (폐회로텔레비전) 화면에 작게 나와서 100% 믿을 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초기 수사를 담당했던 중랑경찰서 여성청소년과는 결국 3일 밤 8시부터 형사과와 공조 수사를 시작했고, 이틀 뒤인 5일 낮 10시24분께 이씨의 집에서 이씨와 딸을 체포했다. 최초 신고부터 경찰이 피해자가 이씨의 집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에 약 42시간, 범인을 검거하는 데에는 꼬박 4일 하고도 10시간이 더 걸린 셈이다.
한편, 이씨는 이날 오전 서울 북부지검에 송치되기 전 중랑경찰서에서 나오면서 “아내가 죽은 뒤 약에 취해있었고, 한동안 제 정신이 아니었다. 사죄드리고 천천히 그 죄를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황금비,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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