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현장에서 지켜본 촛불 1년/ 세월호
‘기자가 현장에서 지켜본 촛불 1년’의 마지막 촛불은 세월호 참사 뒤 팽목항과 목포신항을 오가며 취재한 안관옥 기자, 안산 세월호 가족을 취재해온 김기성 기자의 이야기다. 두 기자는 말한다. ‘진실을 감추려 했던 자들은 누구인지’ ‘세월호 7시간(반) 동안 무엇을 했는지’ ‘왜 선체 인양이 늦어졌는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고.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 사회가 이런 의문을 풀고, 촛불시민들은 생명을 존중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함께 가야 한다고.
잊혀가던 세월호를 되살렸다 박근혜 내려가자
세월호가 올라왔다 리본을 뗄 때가 아니다
아직 진실이 갇혀있다 지난해 10월부터 타오른 촛불은 세월 속에 잊히던 세월호를 되살려냈다.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풍선과 노란 리본이 광화문 광장에서 흑산도 선창까지 방방곡곡을 뒤덮었다. 세월호 안에 아직도 사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은 시민들이 앞다퉈 촛불 대열에 합류했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다 함께 부르고, “박근혜는 내려가고, 세월호는 올라오라”고 외쳤다. 아픔과 분노가 뒤섞인 함성은 시간이 갈수록 더 거세졌다. 썰렁해졌던 팽목항에도 찾아오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분위기는 바뀌었지만 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월호가 침몰해 있던 맹골수도를 바라보며 조바심을 쳤다. ‘아직도 안 건지는 것인지, 못 건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촛불 물결 속에 헌법재판소가 3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이날 팽목항 가족식당에서 중계방송을 보고 있던 단원고생 은화 엄마와 다윤 엄마는 물기 어린 눈으로 말꼬리를 돌렸다. “그나저나 세월호는 언제 올라올까요?”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던 가장 큰 잘못을 파면 이유에서 빠뜨린 헌재 결정에 서운함이 묻어났다. 선체 인양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이날 팽목항을 찾아온 문재인 대통령(당시 후보)한테 전달됐다. 그는 탄핵이 결정되자마자 ‘가장 절망적인 곳에서 희망을 다시 시작하자’며 이곳을 찾은 터였다. 분향소 방명록에는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 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1000만 촛불이 되었다’고 썼다. 한시가 급했던 가족들은 유력 대선주자였던 그에게 ‘미수습자 수습이 무엇보다 최우선이다’라는 쪽지 메모를 받았다. 지켜보던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저러실까.’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시민 4475명이 지난 2015년 4월17일 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모였다. 이들의 손에 는 건전지로 작동하는 촛불 모양의 전구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진행된 ‘세 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이란 이름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행사를 주최한 민주주의국민행동과 세월호참 사국민대책회의는 영국 세계기네스협회에 ‘사람이 만든 가장 큰 촛불 이미지’에 도전하기 위해 시민 4160명을 모 으려 했지만, 시민들은 꼬리를 물며 행사장에 입장해 목표보다 300명 이상 늘어났다. 이 슬픈 도전은 이날 밤 9 시6분 기네스북 등재에 성공했다. 공동취재사진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의미하는 304개의 구명조끼가 놓여 있고 그 아래 희생자의 이름이 쓰여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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