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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촛불이 없었다면 세월호가 올라왔을까

등록 2017-11-06 08:21수정 2017-11-06 11:20

기자가 현장에서 지켜본 촛불 1년/ 세월호

‘기자가 현장에서 지켜본 촛불 1년’의 마지막 촛불은 세월호 참사 뒤 팽목항과 목포신항을 오가며 취재한 안관옥 기자, 안산 세월호 가족을 취재해온 김기성 기자의 이야기다. 두 기자는 말한다. ‘진실을 감추려 했던 자들은 누구인지’ ‘세월호 7시간(반) 동안 무엇을 했는지’ ‘왜 선체 인양이 늦어졌는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고.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 사회가 이런 의문을 풀고, 촛불시민들은 생명을 존중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함께 가야 한다고.

촛불이 없었다면 세월호가 올라왔을까?

인양하느라 고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선체 인양에 반신반의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내가 3년 동안 취재해온 전남 진도 팽목항 분위기가 그랬다. 팽목항에 머물렀던 미수습자 가족들은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를 얼마나 껄끄러워하는지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마지못해 세월호 인양 계약을 했지만 건지는 시늉만 한다고 여겼다. 아닌 게 아니라 인양 작업은 선체 밑에 암반층이 있다거나 인양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이유로 끝없이 미뤄졌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기다리다 지쳐 마른 풀잎처럼 시들어갔다.

양 선생님, 현철아, 영인아, 권재근씨와 혁규야, 제발 돌아와요

횃불 되어 타오른 촛불이
잊혀가던 세월호를 되살렸다

박근혜 내려가자
세월호가 올라왔다

리본을 뗄 때가 아니다
아직 진실이 갇혀있다

지난해 10월부터 타오른 촛불은 세월 속에 잊히던 세월호를 되살려냈다.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풍선과 노란 리본이 광화문 광장에서 흑산도 선창까지 방방곡곡을 뒤덮었다. 세월호 안에 아직도 사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은 시민들이 앞다퉈 촛불 대열에 합류했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다 함께 부르고, “박근혜는 내려가고, 세월호는 올라오라”고 외쳤다. 아픔과 분노가 뒤섞인 함성은 시간이 갈수록 더 거세졌다. 썰렁해졌던 팽목항에도 찾아오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분위기는 바뀌었지만 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월호가 침몰해 있던 맹골수도를 바라보며 조바심을 쳤다. ‘아직도 안 건지는 것인지, 못 건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촛불 물결 속에 헌법재판소가 3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이날 팽목항 가족식당에서 중계방송을 보고 있던 단원고생 은화 엄마와 다윤 엄마는 물기 어린 눈으로 말꼬리를 돌렸다. “그나저나 세월호는 언제 올라올까요?”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던 가장 큰 잘못을 파면 이유에서 빠뜨린 헌재 결정에 서운함이 묻어났다.

선체 인양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이날 팽목항을 찾아온 문재인 대통령(당시 후보)한테 전달됐다. 그는 탄핵이 결정되자마자 ‘가장 절망적인 곳에서 희망을 다시 시작하자’며 이곳을 찾은 터였다. 분향소 방명록에는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 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1000만 촛불이 되었다’고 썼다. 한시가 급했던 가족들은 유력 대선주자였던 그에게 ‘미수습자 수습이 무엇보다 최우선이다’라는 쪽지 메모를 받았다. 지켜보던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저러실까.’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시민 4475명이 지난 2015년 4월17일 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모였다. 이들의 손에 는 건전지로 작동하는 촛불 모양의 전구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진행된 ‘세 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이란 이름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행사를 주최한 민주주의국민행동과 세월호참 사국민대책회의는 영국 세계기네스협회에 ‘사람이 만든 가장 큰 촛불 이미지’에 도전하기 위해 시민 4160명을 모 으려 했지만, 시민들은 꼬리를 물며 행사장에 입장해 목표보다 300명 이상 늘어났다. 이 슬픈 도전은 이날 밤 9 시6분 기네스북 등재에 성공했다. 공동취재사진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시민 4475명이 지난 2015년 4월17일 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모였다. 이들의 손에 는 건전지로 작동하는 촛불 모양의 전구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진행된 ‘세 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이란 이름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행사를 주최한 민주주의국민행동과 세월호참 사국민대책회의는 영국 세계기네스협회에 ‘사람이 만든 가장 큰 촛불 이미지’에 도전하기 위해 시민 4160명을 모 으려 했지만, 시민들은 꼬리를 물며 행사장에 입장해 목표보다 300명 이상 늘어났다. 이 슬픈 도전은 이날 밤 9 시6분 기네스북 등재에 성공했다. 공동취재사진

돌아보면 세월호 참사야말로 촛불의 씨앗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구할 수 있었던 아이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분노했다. 세월호를 둘러싼 수많은 질문은 광장에 촛불을 지피는 불쏘시개가 됐다.

촛불시위가 막바지로 치닫던 3월22일 세월호는 거짓말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구속(3월31일)으로 이어지는 숨 가쁜 순간이었다. 3년을 끌던 세월호는 그날 하루 만에 물 밖으로 올라왔다. 한 미수습자 가족은 “이렇게 쉬운 걸 여태 뭐 했는지 모르겠다. 촛불을 든 국민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요즘도 “세월호가 ‘기적처럼’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세월호는 4월10일 우여곡절 끝에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됐다. 6개월 동안 선체와 해저 수색으로 미수습자 9명 중 단원고 학생 조은화·허다윤양, 교사 고창석씨, 일반인 이영숙씨 등 4명이 돌아왔다. 단원고생 남현철·박영인군, 교사 양승진씨, 일반인 권재근·혁규 부자 등 5명은 아직 찾지 못했다.

촛불 이후 1년 동안 세월호 선체를 인양해 수색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피해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위로하는 등 변화가 있었다. 해양수산부가 선체 수습을 진행하고, 세월호 선체조사위는 사고 원인을 찾고 있다.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의미하는 304개의 구명조끼가 놓여 있고 그 아래 희생자의 이름이 쓰여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의미하는 304개의 구명조끼가 놓여 있고 그 아래 희생자의 이름이 쓰여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그러나 아직도 ‘세월호 7시간(반) 동안 무엇을 했을까’, ‘왜 선체 인양이 늦어졌나’, ‘누가 진상 규명을 방해했는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이런 의문이 풀려야만 교훈을 얻고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촛불시민은 안전한 사회, 생명을 존중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동행해야 한다. 슬픔조차 가누기 힘든 당사자한테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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