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여명을 상대로 ‘종친회’라고 속이고 판매한 가짜 족보. 사진 혜화경찰서 제공.
‘종친회’라고 속이고 가짜 족보를 팔아 45억여원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종친회라고 속이고 가짜 족보를 판매해 44억 6250만원을 뜯은 혐의(사기 등)로 유아무개(61)씨와 박아무개(65)씨를 기소의견으로 8일 검찰에 송치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들에게 가짜 족보를 제공하고 찍어낸 출판업자 박아무개(58)씨는 사기방조 혐의로, 범행에 가담한 가짜 종친회 지사장과 텔레마케터(전화판매원) 등 20명은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들은 2014년 9월부터 지난 9월까지 서울 종로구 숭인동 등 수도권에 가짜 종사편찬위원회 사무실을 운영하며 전화 영업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헌책방에서 학교 동창회나 종친회 명부를 구입해 얻은 개인정보로 족보를 먼저 보내고 전화로 “우리 집안을 알기 위한 뿌리책이 발간됐다. 마음에 들면 20만원을 송금해달라. 문중에 도움이 된다”고 속이는 방식이었다. 3년 동안 피해자가 전국 71개 성씨 2만685명에 이른다.
이들은 족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적다는 점을 노렸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제작한 3권짜리 가짜 족보는 한자가 아니라 한글로 만들어졌다. 성씨별 선조 사진, 조선왕조실록 등에 실린 선조에 대한 설명, 족보학에 대한 설명 등을 인터넷에서 모아 만든 것으로 내용이 많이 부실하다”고 말했다. 이 가짜 족보는 이미 2012년에도 같은 범행을 저질러 입건된 적이 있는 출판업자 박씨가 한 세트에 3만원에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요 범행 대상은 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6·70대였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사회적 지위가 있으나 종친회나 문중에 기여한 바가 없는 사람들의 부채감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경찰 수사는 족보 사기판매 피해 신고 여섯 건에서 시작했다. 수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피해자 대부분은 피해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찰은 유사한 방식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또 다른 업체가 있을 것으로 보고 추가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문중에서는 전화 영업으로 족보를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응대하지 않거나 정확히 확인한 후 구매를 결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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