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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폭행 당한 것도 아닌데…” 피해자 두 번 울린 여가부 ‘해바라기 센터’

등록 2017-11-14 18:20수정 2017-11-14 22:45

상담 받으러 갔다가 2차 피해 경험담 속출

“CCTV 없어 괜한 고생”, “그러게 왜 혼숙”
“상담원 자격 강화·통합 관리 필요” 지적
지난 1월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던 ㄱ(25)씨는 회식 자리에 갔다가 직장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3개월 동안 마음고생을 하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기관이라는 ‘해바라기센터’를 찾아갔다. 하지만 ㄱ씨가 성추행 피해를 털어놓자 상담원은 이렇게 말했다. “막말로 강간을 당한 것도 아니고,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도 없어서 고소해도 기소가 어려울 것 같으니 괜한 고생 말고 미래를 생각해라.”

ㄱ씨가 가해자가 추행 행위를 인정하는 녹음 파일이 있다고 했지만, 상담원은 내용을 들어보지도 않은 채 “상대가 모르는 대화 녹음은 불법이고 증거가 안된다”며 겁을 줬다. 무력감을 느낀 그는 ‘해바라기센터도 이런 식인데 경찰을 찾아가도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에 가해자에 대한 법적 대응도 포기했다.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해바라기센터가 도리어 피해자에 또 다른 상처를 입히고 있는 셈이다.

“왜 저항 못했냐?”…모욕감 주는 상담원 해바라기센터는 여성가족부(여가부)가 지방자치단체, 경찰, 병원 등과 협업해 성폭력 피해자의 치료, 심리상담, 수사까지 한꺼번에 지원하는 기관이다. 가구업체 ‘한샘’에서 벌어진 사내 성폭력 논란 당시 피해자는 “해바라기센터에서 남자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여경과 국선변호사가 왜 저항을 못했는지 추궁한 점이 괴로웠다”고 적은 바 있다.

ㄴ(29)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모인 친구 6명과 오프라인에서 만나 모텔방을 잡고 술을 마셨다. 일행과 함께 잠을 자다가 일행 중 한 남성이 ㄴ씨를 성폭행하려 들었다. 간신히 뿌리치고 모텔을 빠져나온 그는 경찰의 권유로 해바라기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상담원은 “알만한 나이에 혼숙을 해? 요새 그런 거 원하고 모이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등의 말을 건네며 모텔까지 간 이유를 추궁했다. 급기야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듯 “가해자는 동의 하에 하려다 기분 나쁘다고 나갔다던데 증거는 어디 있냐”고 묻기까지 했다. ㄴ씨는 상담원의 태도에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서수연 한국임상심리학회 이사는 “성폭력 피해자는 보통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는데, 그 시점에 누구를 만나느냐는 대응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발언을 듣는 등 2차 피해를 당하면 트라우마 회복이 더뎌지고 피해자가 대응을 포기하는 등 숨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상담사의 일은 판단이 아니라 객관적 정보와 선택지를 피해자에게 제공해 의사결정을 돕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술한 상담원 채용기준·콘트롤타워 부재’ 이런 사례가 재발되는 이유로는 해바라기센터의 허술한 상담원 채용기준이 꼽힌다. 여가부는 각 지역 병원 등에 해바라기센터 운영을 위탁하고 있다. 채용도 각 병원에서 따로 진행한다. 여성가족부에서 낸 ‘2017년 해바라기센터 사업안내’를 보면,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심리학, 아동학, 여성학 등을 전공하고 성폭력, 가정폭력 상담원으로 2년 이상 경력이 있다면 상담원 자격요건이 충족된다. 민간에서 주먹구구로 발행하고 있는 자격증만 갖추면 심리치료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할 수 있는 셈이다.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해바라기센터를 통솔해 관리하는 콘트롤타워가 부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해바라기센터의 채용은 각 병원에서, 상담원 교육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중앙지원단에서 따로 진행한다. 해바라기센터 서비스에 대한 민원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여성가족부가 받는다. 해바라기센터의 여경과 진술조력인, 국선변호사 등은 각각 경찰청과 법무부에서 담당한다. 책임 소재가 여러 갈래로 나뉘다 보니 성폭행 피해자를 위한 치료, 수사, 상담, 법적 지원 등을 유기적으로 관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명호 단국대 교수(심리학·충남 해바라기센터 자문위원)는 “중앙부처 차원에서 해바라기센터의 운영?관리만 전담하는 중앙지원단이 필요하다. 지금은 인력이나 자금이 상당히 부족하고 사실상 콘트롤타워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블로그 갈무리
여성가족부 블로그 갈무리

“상담원 자격기준 강화해야”…청와대 청원까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8월20일 청와대 게시판에 ‘여가부 산하 해바라기센터 심리치료사 자격기준 강화 필요’라는 제목의 청원도 올라온 상태다. 청원자는 “고도의 전문성 필요로 하는 성폭력 심리치료사 자격요건에 공인 자격증 보유 여부도 들어있지 않아 2차 피해 위험성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계에서는 여가부가 민간위탁으로 각 기관에 지나치게 많은 재량권을 부여해 센터별 격차가 크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 권익정책과 관계자는 “센터 상담원들은 단순히 관련 분야 전공자일 뿐 아니라 전국 시군구에 신고된 101개 교육시설에서 100시간 교육훈련을 이수했기 때문에 검증이 안된 종사자라고 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문제를 인지한 이상 내부적으로 협의를 해보고 채용 자격 강화, 교육 등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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