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D-7’ 현수막이 걸려있는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종합입시학원. 사진 이지혜 기자.
15일 경북 포항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5.4 강진 탓에 수능 시험이 연기되면서, 수능을 앞뒀던 수험생들과 학원가 일대가 혼란에 빠졌다. 대치동·목동 등 서울 시내 학원가는 ‘일주일 특강’을 개설하거나 ‘자율학습’을 운영하는 등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수험생들은 예기치 않게 주어진 일주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수학학원은 1회(5시간)당 8만원대 ‘럭키 세븐’ 특강을 개설했다. 실전 모의고사 2시간 반에 문제해설과 개별 첨삭지도를 포함한 총 5시간짜리 수업이다. 학원 측은 “기존 강의료가 8만7500원이었으나 지진 피해를 고려해 8만1250원으로 할인했다. 선착순으로 수강신청을 마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치동의 또 다른 학원은 ‘지구가 준 선물, 마지막 일주일을 불사르는 지진특강’이 개설되기도 했다. 서울 동대문구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수험생 노아무개(18)군은 ‘일주일 완성 지진특강’ 광고를 본 뒤 인터넷 강의를 뒤적이고 있다. 노군은 “한국사 과목이 좀 부족했는데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수능 날까지 중점적으로 공부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수능 연기 때문에 혼란에 빠진 학생들에게 심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학원도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종합입시학원의 경우 16일부터 이틀간 세차례에 걸쳐 '시험불안&심리안정'이란 이름의 40분 짜리 ‘마음 집중'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16일 울릉도에 있는 고등학교인 울릉고 3학년 수험생들이 경북 포항 남구 해병대 청룡회관에서 수능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시험을 위해 지난 10일 포항에 온 학생들은 보름간 청룡회관에서 숙식을 해결하게 됐다.연합뉴스
특강을 마련하지 않은 일부 입시학원은 자율학습 시간을 마련했다. 수험생들은 강의실에서 자습하고 일부 강사들이 별도 강의실에서 질문을 받아주는 식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종합입시학원은 수능이 연기된 다음 날이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공부하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심아무개(55) 원장은 “전체 900명 학생들 중 500명 정도 등원해서 자습 중이다. 쉬는 시간과 식사 시간까지 수능 당일 시간표에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제는 급식과 셔틀버스 문제로 문의 전화가 400통 이상 올 정도로 다들 걱정이 컸다. 아침에도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걱정을 나누기도 하고 분위기가 뒤숭숭했지만 금방 제자리를 찾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규모 5.4지진이 발생한지 하루가 지난 16일 낮 경북 포항 흥해실내체육관에서 한 고3 수험생이 공부를 하고 있다. 포항/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재수생 최아무개(20)씨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서울 강남구의 한 재수학원으로 향했다. 재수학원으로부터 ‘자율학습을 운영하겠다’는 공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최씨는 “수능 미뤄지기 전까지만 해도 ‘수능 어떻게 보나’ 긴장됐는데, 막상 미뤄진다고 하니 ‘왜 미루나’ 원망스런 마음이 들었다. 안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지만, 수능 시험 뒤 논술이나 면접은 어떻게 진행될지, 차질은 없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배재고등학교 이아무개(18)군은 “마지막으로 봐야 할 것들을 추려서 차분하게 보고 있던 와중에 수능 연기 소식을 들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면서도 “그래도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해서 가장 부족한 과목인 국어를 중점적으로 공부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수험서·참고서를 모두 버린 학생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날 서울 시내 서점 곳곳은 참고서를 사려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강남구 대치동 선경문고 대표는 “아침에 고3이나 재수생만 10명 넘게 책을 사러 왔다. 그런데 수능 앞두고 대부분 책 반품하고 팔려 팔 수 있는 책 별로 없다. 오는 학생들도 그나마 남은 책들만 사 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한솔 선담은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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