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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동 성폭행 파문’ 워마드…‘미러링’ 사라지고 ‘혐오’만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7-11-23 10:11수정 2022-08-19 15:24

[더(THE) 친절한 기자들]
‘호주 아동 성폭행’글 올린 ㄱ씨 체포
“남성 누리꾼이 조작한 것” 주장도 제기돼
“온라인 ‘주목 경쟁’ 속에서 ‘미러링’ 취지 사라지고 혐오만 남아”

‘워마드’(WOMAD)발 ‘호주 아동성폭행’ 논란이 쉬이 사그라지지 않는 모양새입니다. 호주 경찰이 해당 글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 ㄱ씨를 체포하면서 수사도 본격화했습니다. <코리아헤럴드>는 22일 “체포된 여성이 두 달 가량 구속수사를 받을 전망”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워마드’ 회원들은 이에 맞서 해당 글이 “남초 커뮤니티의 자작”이라고 반박하고, ㄱ씨 변호사 선임비용 모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워마드’가 논란에 휩싸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요. ‘여성 혐오’가 ‘남성 혐오’로 재반박되는 ‘미러링’(혐오적 행동과 발언을 의도적으로 모방해 가해와 피해의 처지를 역전시키는 행위)이 잘못된 일인 걸까요? ‘더(the) 친절한 기자들’에서 자세히 짚어봤습니다.

■ ‘워마드’ 호주 아동성폭행 논란은 어떻게 발생했나

호주 연방경찰은 21일(현지시간) 공식 누리집에 “(호주에 거주하는) 27살 한국인 여성이 아동 학대·착취물 생산 혐의로 체포, 기소됐다. 오늘 법정에 출두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호주 경찰은 또 “‘아동 음란물’(child pornography)이란 표현은 피해 아동이 동의했다는 의미로 보일 수 있으니 해당 용어를 쓰지 말아달라”며 “우리가 압류한 사진은 실제로 아동이 학대를 당하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ㄱ씨가 실제로 해당 사진과 영상을 직접 촬영한 주체인지, 아니면 타인이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보유하거나 내려받았는지, ㄱ씨가 다른 아동학대물 등을 소지하고 있었는지 여부가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ㄱ씨는 지난 19일 ‘워마드’ 커뮤니티에 자신을 “호주의 복합 휴양시설 직원”이라며 “호주 남자 어린이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성폭행을 했다”고 구체적인 정황을 설명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남자아이의 나체 사진과 동영상 소장 화면을 갈무리한 사진, 오렌지 주스에 수면제를 타는 사진도 함께 올렸습니다. 해당 게시글에는 영상을 공유해달라는 요청 댓글이 달리기도 했습니다. 논란이 확산하자 일부 누리꾼들은 게시글 작성자를 ㄱ씨로 유추했고, 호주 출신 방송인 샘 해밍턴 등과 함께 호주 대사관을 통해 호주 연방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ㄱ씨가 평소 유튜브에서 “호주에서 일한다”고 밝히며 ‘한국 남성’을 비판해 온 점, 영상에서 드러난 ㄱ씨의 컴퓨터 배경화면과 게시글에 올라온 배경화면이 같은 점 등을 근거로 ㄱ씨를 특정한 겁니다.

‘워마드’ 이용자들이 제작한 ‘호주 성폭행’ 관련 반박 자료
‘워마드’ 이용자들이 제작한 ‘호주 성폭행’ 관련 반박 자료

■ 왜 ‘워마드’ 논란이 거듭되는가

‘워마드’가 논란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엔 남성 상사들에게 자동차 부동액을 탄 커피를 타줬고 그 상사가 입원했다는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부동액의 주요 원료로 사용되는 ‘에틸렌글리콜’은 신경독성물질로 신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물질입니다. 이후 해당 내용이 허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수사가 종결됐습니다.

올해 초엔 대중목욕탕 남탕에서 몰래 촬영한 남성의 나체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죠. 당시 ‘워마드’에 대해 수사에 착수한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남탕 몰카’ 사건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 여러 회원들이 사용하는 데다 운영 서버가 미국에 있다 보니 쉽지 않다”면서도 “이후 ‘워마드’ 글은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워마드’에는 왜 이런 글이 올라오는 걸까요. ‘워마드’의 탄생과정과 ‘호주 아동 성폭행’ 사건에 대한 입장문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워마드는 ‘여성 혐오와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커뮤니티입니다. 2015년 ‘김치녀’, ‘김여사’와 같이 온라인에 난무하는 여성혐오성 발언을 남성들에게 되돌려주는 이른바 ‘미러링’(mirroring)을 하는 ‘메갈리아’ 사이트가 탄생했습니다. 이후 메갈리아 페미니즘 내부에서 ‘게이 혐오’를 두고 거센 논쟁이 일어납니다. 여성만을 위한 페미니즘에 게이들도 배격해야 할 대상이라는 일부 회원들이 등장한 겁니다. 이에 반대하는 ‘메갈리아’ 운영진에 반발하며 독립한 파생 커뮤니티가 바로 ‘워마드’입니다.

이들은 게이와 같은 성소수자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도 결국 여성을 차별·혐오하는 ‘기득권 남성’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들을 혐오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초반엔 ‘일간베스트’처럼 극우·여성혐오 사이트에 대한 ‘미러링’에 집중했지만, 이 ‘미러링’ 방식이 과격해지면서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워마드’ 회원들은 “훨씬 더 많은 수의 남성들과 남초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일을 ‘미러링’하는 것일 뿐”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도 남성들이 몰리는 ‘남초’ 커뮤니티의 사건보다 유독 여성들이 몰리는 ‘여초’ 커뮤니티에 대한 수사가 집중된다거나, 여론의 비판이 과하게 일어난다는 주장을 폅니다.

이번 ‘호주 아동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워마드’ 쪽은 21일 올린 공지글에서 “운영진이 게시글에서 위법성을 확인한 경우 빠르게 삭제해왔으며 일부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간 게시물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나 피해자의 요청을 받고 삭제해왔다”며 “워마드보다 수십배로 쓰레기 글이 많이 올라오는 다른 남초 커뮤니티들이 잘 운영되는 한 워마드도 문을 닫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남초 커뮤니티에도 여성 어린이를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글, 친척 동생 ‘몰카’를 찍고 강간했다는 글 등이 올라오는데 이때는 수사기관도 언론도 방관하다가 여초 커뮤니티에서 올라온 이번 글에는 용의자를 마음대로 지목하고 해당 여성의 신상을 캔다는 주장입니다. 한마디로 ‘이중잣대’라는 거죠.

음란 합성사진 등이 올라온다.
음란 합성사진 등이 올라온다.

■ ‘미러링’과 ‘주목 경쟁’이 만날 때

‘호주 아동성폭행 사건’에 대한 진실은 아직 미궁 속에 있습니다. ‘워마드’는 “(체포된) ㄱ님이 누명과 오해로 힘들어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관리자에게) 물어왔다”며 ”작성자라면 글을 직접 삭제할 수 있는데 사이트 관리자에게 대응을 요청한 것이 ㄱ님이 작성자가 아닌 강력한 증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글이 ㄱ씨를 저격한 남성 누리꾼들의 조작된 글이란 주장도 나옵니다. ㄱ씨가 평소 ‘일베’의 공격을 받았다는 점, 해당 게시글이 올라왔을 때 ㄱ씨가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었다는 점, 사진 속 남자아이는 다른 국외 유튜브 영상에 나오는 아이라는 점 등이 이유입니다. (▶참고 자료1, 참고 자료2) 물론 설령 허위 게시글일지라도 타인의 사진을 도용해 공개적으로 올린 점은 결코 가볍게 넘어가선 안되는 범죄지만요.

“설령 자작사건일지라도 ‘아동 강간’을 장난으로 써 먹는 것은 끔찍한 일”(@no*****)

“(오히려) 한국 여성운동사, 수십년 동안 여성 인권에 기여한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싹 지우는 격”(@bi*****)

“소라넷, 일베 등 남초 사이트에서 여성 불법촬영 게시글이나 성추행 댓글을 달거나 하는 사안들과 비교했을 때 (워마드 사건과) 온도차 등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해당 게시글을 통한) 2차 가해자나 댓글을 달고 소비한 워마드에 대한 실드(옹호)는 안된다”(@ha*****)

거듭되는 ‘워마드’ 논란을 두고 ‘미러링’이라는 운동 방식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특성과 맞물리면서 변질됐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문화비평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미러링’이 애초 기득권에 대한 ‘패러디’의 일종으로 시작했지만, 온라인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 악용되면서 “혐오만 남고 명분은 사라졌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른바 ‘주목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자극적인 글을 올릴 수록 해당 커뮤니티에서 호응을 얻고 관심과 인정을 받다 보니 ‘미러링’을 표방하면서 상식을 넘는 발언과 행동이 경쟁적으로 벌어진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여성 혐오 대응’이라는 애초 취지가 무색해지고 극단적인 혐오만 재생산됩니다. 결국 페미니즘 운동이라는 대의는 사라지고 관심을 끌기 위한 놀이 문화만 덩그러니 남게 되는 겁니다. (▶주목 경쟁 개념에 대한 참고 글 : 주목경쟁의 시대) 이택광 교수는 “(이번 일로) ‘미러링’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건 또 다른 극단적인 결론”이라고 경계하면서도 “온라인 커뮤니티 특성상 ‘주목 경쟁’이 도덕성을 마비시키는 상황이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런 ‘주목 경쟁’이 ‘워마드’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택광 교수는 “사실 ‘워마드’ 뿐만 아니라 ‘일베’, ‘디씨인사이드’, ‘오늘의유머’와 같은 커뮤니티, 초등학생들이 이용하는 게시판부터 어르신들의 단체 채팅방에서까지 주목 경쟁은 어느 곳에서나 벌어진다. 한국 특유의 경쟁 문화가 만들어 낸 병폐”라며 “그런 문화와 ‘미러링’이 만나 너무 극단적으로 가버린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또 “어떤 운동이든 (급진적이거나 과격한)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라며 “(‘미러링’과 같은) 이런 운동의 대의 자체가 문제라는 식으로 나오는 건 (옳지 않다). 다만 ‘워마드’가 혐오를 기반으로 ‘주목 경쟁’을 하다 보니 혼란스러운 상황이 왔고, 이럴수록 오히려 약자들에게 불리해진다”고 짚었습니다. 계속 혐오를 혐오로 대응할 경우 여성운동 자체가 ‘워마드’와 동일시 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이는 오히려 여성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제2의 소라넷’으로 불리는 사이트 ‘꼬뽀넷’(위)과 ‘헬븐넷’. 일반인 여성 ‘몰카’사진
‘제2의 소라넷’으로 불리는 사이트 ‘꼬뽀넷’(위)과 ‘헬븐넷’. 일반인 여성 ‘몰카’사진

■ 혐오를 혐오로 대응하는 방식에 대하여

물론 ‘미러링’은 ‘원본’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워마드’가 주장하듯, ‘제2의 소라넷’으로 불리는 ‘꼬뽀넷’이나 ‘헬븐넷’처럼 여전히 일반인 여성의 ‘도촬’ 사진을 올리거나 여성 연예인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하는 글이 올라오는 사이트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온라인에서 ‘한국 여성’을 비하하거나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댓글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혐오를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야만 그들을 비판할 수 있는 걸까요?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 그들이 반성하고 사죄하나요? ‘미러링’이라는 이유로 윤리적·법적 일탈마저 정당화 될 수 있는 걸까요? 다른 잘못된 사례를 들며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것, 논리학에선 이걸 ‘피장파장의 오류’라고 말합니다.

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학교 교수는 저서 <혐오와 수치심>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번 논란이 어떤 결과로 마무리되든 성찰할 지점을 안겨주는 대목입니다.

만약 모든 사회가 혐오를 지니고 있고, 모든 사회에서 혐오가 강력한 도덕 감정이라면, 사람들이 학습을 통해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 등에 대해 혐오를 느끼도록 교육시켜서 혐오를 이용하는 것은 어떨까?

이러한 제안이 지닌 첫 번째 문제는 혐오가 특정 행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떠한 나쁜 행위에 대한 분노는 범죄자를 회복시키려는 소망이나 가해자의 인권에 대한 존중과 양립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혐오는 오염에 대한 사고가 중심을 이루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 사람이 사라져 버리길 원한다. 그리고 나는 인종주의자와 성차별주의자에 대해 그런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람들과 그들의 행위를 주의 깊게 구분해서, 그들이 저지른 나쁘거나 유해한 행위를 비난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으로서 그들에 대한 존중은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저 혐오스러운 쥐들을 여기서 몰아내자”라고 말하는 것은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혐오가 나쁜 동기와 의도를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라도 말이다.

앞에서 말한 핀란드의 얘기가 예증하듯이, 순수함에 대한 환상 속에는 건설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비현실적인 환상을 갖기 보다] 우리는 인종주의자와 부패한 정치인들이 바람직한 행위를 하도록, 나아가 생각을 고치도록 요구해야 한다. 잘못된 행위를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토사물이나 배변 같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을 개선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우리는 분명 그들을 추방시킬 수 없으며, 설령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래서는 안 된다. 혐오는 우리가 사회적 순수함에 대한 비현실적인 낭만적 환상에 사로잡히게 하며, 인종 관계와 정치인들의 행위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에 대한 사고에서 멀어지게 한다. 어떠한 집단이 비도덕적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오물처럼 취급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마사 누스바움의 저서 <혐오와 수치심>(2015, 민음사)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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