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팜띠엔번(오른쪽 둘째) 전 대사 등 한-베친선협회 대표단이 서울 연남동 ‘하노이의 아침’을 방문해 고 리영희 선생의 딸 미정(가운데)씨와 리영희재단 권태선(왼쪽 둘째부터) 이사, 백영서 이사장 등에게 초청장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리영희재단 제공
팜띠엔번(68) 전 주한 베트남 대사는 지난 22일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응유엔짜이 대학교 총장과 함께 서울 연남동 맛골목에 있는 한 음식점을 찾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고 리영희 <한겨레> 논설고문의 부인 윤영자씨와 딸 미정씨에게 오는 10일 하노이에서 열리는 한-베 수교 25돌 기념행사 초청장을 전달했다. 딸 미정씨가 운영하는 그 음식점은 우연찮게도 베트남 쌀국수 전문이다.
리 선생 가족 일행은 10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하노이 응우옌짜이대학 학생들을 만나 리 선생에 대해 소개하고, 한-베친선협회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지난 24일 만난 번 전 대사는 3년 전 우연히 한국인 친구의 소개로 리 선생에 대해 알게 됐다고 했다. “리 선생이 (독재)정권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한국인들에게 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뒤늦게나마 특별히 존경하는 마음으로 베트남에 리 선생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리 선생은 1969년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로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면서 베트남 파병을 비판한 것을 시작으로, <전환시대의 논리>(1974), <베트남 전쟁: 30년 베트남 전쟁의 전개와 종결>(1985) 등 저서에서도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자 애썼다. 88년 <한겨레> 창간 초기 인기 칼럼 ‘한겨레논단’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미국 중심의 베트남전 인식을 바꾸고자 애썼다.
한국어가 유창한 번 전 대사는 베트남 최고의 한반도 전문가다. 1967년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조선문학을 전공한 그는 1972~92년 주북한 대사를, 2005~10년에는 주한 대사를 맡았다. 2010년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양국 협력을 위한 가교 구실을 맡고 있다.
한-베 수교 25돌에 대해 그는 “기적”이란 말로 표현했다. 그는 92년 외교부 실무진으로서 양국 수교 과정에도 참여했다. “25년 동안 두 나라는 정치·경제·국제 등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뒀습니다. 관광, 결혼 등 민간교류도 활발해서, 가까운 이웃이자 사돈 관계라고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두 나라 사이엔 ‘민간인 학살’이란 숙제가 남아 있다. 내년은 한국군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지 50년이 되기도 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이 중심이 돼 만든 시민평화법정 준비위원회는 지난 21일 한국 정부에 학살의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번 전 대사는 “과거에 우리가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잊지 않고 있다”면서도 미래 지향적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한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베트남은 성실하게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것”이라며 “남북의 화해,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통일을 베트남 사람들도 변함없이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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