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7일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최근 법원이 구속적부심사를 통해 수사의 핵심 피의자들을 잇따라 풀어주면서 법원과 검찰 사이 물밑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선 ‘불구속 수사’라는 대원칙에 공감하면서도, 불과 보름 만에 구속영장 심사와 구속적부심의 판단이 정반대로 나오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1부(재판장 신광렬)는 지난 30일 밤 전병헌 전 수석의 측근인 한국이(e)스포협회 조아무개 전 사무총장의 구속적부심 청구를 받아들여 석방했다. 재판부는 조씨가 협회 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긴 하지만, 검찰에서 밤샘조사를 받고 긴급체포된 점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구속적부심에서 석방이 결정된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이 25일 오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검찰은 지난 14일 조씨를 긴급체포한 이유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다가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제시되자 불안한 심리를 보였고, 조씨의 심리상태 등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긴급체포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위법성이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검찰은 구속영장 심사 때 이런 사정을 이야기했고, 그 결과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지난 15일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점도 강조한다.
형사51부가 최근 구속적부심에서 피의자를 풀어준 것은 조씨가 세번째다. 앞서 같은 재판부는 지난 22일과 24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도 잇달아 구속적부심에서 풀어준 바 있다. 재판부는 석방 이유도 ‘범죄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내용 판단에서부터 ‘구속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형식적 절차까지 다양하게 제시했다. 그동안 변호사들이나 피의자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구속적부심제도’ 자체에 대한 주목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댓글 공작'을 주도한 실무책임자인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이 구속이 합당한지 판단해달라며 법원에 구속적부심사를 요청한 가운데 30일 오후 이 전 3차장이 구속적부심 심문을 받기 위해 호송차량을 타고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조계에선 구속적부심 청구가 헌법(12조 6항)에 규정된 피의자를 위한 권리이기 때문에 이번처럼 구속 사유에 문제가 있으면 피의자를 석방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더구나 이번에 재판부가 지목한 ‘긴급체포의 위법성’은 그동안 검찰과 법원 사이에 계속 논쟁이 있었던 사안이다. 검찰은 ‘불안한 심리상태’ 등을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서라며 긴급체포를 해왔지만, 법원 내부에선 ‘그런 이유는 법이 규정한 긴급체포 사유에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판사는 “그동안 과거 긴급체포에 위법소지가 있었는데도 그걸 눈감고 있었던 게 문제이지 지금 이 관행을 바로잡은 것을 문제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법원이 이 사건 말고도 다른 사건도 그렇게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 왔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법원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원이 이번 ‘사이버사령부 수사’와 ‘전병헌 전 수석 수사’처럼 국민적 관심이 크고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에 대해 영장실질심사 결과를 며칠 만에 구속적부심에서 뒤집는 판단을 내놓은 것은 스스로에게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같은 법원에서 다른 기준으로 ‘구속’하고 ‘석방’한 것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으면 사법부 신뢰가 저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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