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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더 이상 슬프지 않은 세상에서 다시 보자, 내 친구 민호야”

등록 2017-12-06 19:27수정 2017-12-06 21:59

제주 현장실습생 이민호군 영결식 동행
졸업앨범 찍은 사진이 영정사진 될 줄이야
‘애교 많은 막내’ 보내는 어머니 오열
“슬프지 않고 차갑지 않은 세상서 다시 보길”
이군 친구·선후배 100여명 마지막길 지켜
6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에서 엄수된 고 이민호군의 영결식에서 이군의 아버지 이상영씨가 눈물 흘리고 있다. 제주/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6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에서 엄수된 고 이민호군의 영결식에서 이군의 아버지 이상영씨가 눈물 흘리고 있다. 제주/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엄마가 아들의 영정 앞에 국화꽃을 놓았다.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박정숙(49)씨가 아들 이민호(18)군의 사진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그리고 이내 무너졌다. 엄마는 아들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참아왔던 울음을 토해냈다. 졸업 앨범에 실으려 찍었던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쓰일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미안해, 민호야. 너무너무 보고 싶어 민호야.”

300여 추모객이 모인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서귀포산과고) 체육관에는 엄마의 울음소리와 함께 취재진의 셔터 소리만 가득했다. ‘딸 같은 아들’이자 ‘애교 많은 막내’였던 민호군의 마지막 가는 길. 엄마가 단상 위에 올려둔 국화꽃 옆으로 아버지 이상영(54)씨와 민호군의 형(19)이 놓은 국화꽃도 나란히 누웠다.

6일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포산과고 체육관에서 현장실습 중 숨을 거둔 이민호군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영결식은 이군 모교에서 제주도교육청장으로 진행됐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이석문 제주도교육감과 원희룡 제주도지사, 학교 선생님과 친구 등 300여명이 이군이 떠나는 자리를 지켰다.

지난달 19일 숨을 거둔 이군이 차가운 영안실을 벗어나기까지 18일이 걸렸다. 이군이 근무했던 업체 ‘제이크리에이션’ 대표와 학교·도교육청이 뒤늦게 유가족에게 고개를 숙인 뒤다. 이군 주검은 이날 오전 7시20분께 제주시 부민장례식장을 나섰다. 민호군의 연년생 형이 영정을 둘러멨다. 이군 부모는 하얀색 장갑에 얼굴을 파묻은 채 오열하며 뒤따랐다.

이군 주검을 실은 검은색 리무진은 서귀포산과고로 향했다. 리무진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이 행여 험할까봐 한라산 중턱을 지나는 ‘516도로’를 피해 비교적 평탄한 ‘평화로’를 거쳐 돌아갔다. 오전 8시50분께 서귀포산과고 정문부터 영결식이 치러지는 체육관까지 100여m 길목에 교복 입은 이군 친구 100여명이 이군을 맞았다.

“이군은 1999년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부로 활동했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결석 한 번 한 적 없는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이크리에이션 업체에서 노동 재해를 입었고 다발성 장기손상을 입어 18살의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뒀습니다.”

강원효 서귀포산과고 교장이 이군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는 데는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어머니는 울 힘도 없는 듯 바르르 떨면서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었다. 교육감의 조사도, 도지사의 추도사도 유가족의 눈물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너에게 하고픈 말들이 너무 많은데 안타깝게 떠나보내야 하는 이 순간이 정녕 믿기지 않지만 이 세상보다 더 따듯하고 포근한 세상으로 보내려 한다. 더 이상 슬프지 않고 차갑지 않은 세상에서 다시 볼 날을 기약하면서 내 사랑하는 친구, 민호야 잘 가라.” 학생 대표 강진우(18)군이 단상에 올라 영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군은 눈물을 참으려는 듯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고별사를 읽었다.

6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에서 엄수된 고 이민호군의 영결식에서 학생들이 이군을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제주/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6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에서 엄수된 고 이민호군의 영결식에서 학생들이 이군을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제주/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영결식 뒤 이군 영정은 그가 생전 학교를 다닐 때 머물렀던 기숙사 2층을 향했다. 침대 두개에 에어컨과 장롱 하나가 덜렁 놓인 두평 남짓한 209호실은 단출했다. “내 아들이 여기서 살았었는데….” 엄마 박씨가 목놓아 울었다. 이어 영정은 그가 공부하던 3학년 1반 교실에 도착했다. 아버지 이씨는 영정이 한 바퀴 교실을 돌아나갈 때까지 아들의 책상을 손바닥으로 쓸고 또 쓸었다. 영정이 떠난 서귀포산과고 본관에는 ‘사람을 품는 학교, 꿈을 가꾸는 교실’이라는 표지판이 달려 있었다.

서귀포산과고는 이군 형제가 부모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선택한 학교였다. 민호군이 태어날 무렵, 부모는 치킨집을 운영했다. 4개월 된 민호군을 어르고 달래며 어머니는 닭을 튀겼고 아버지는 배달에 나섰다. 그러나 이군이 다섯살 될 무렵 아버지가 새로 시작한 만두 유통업이 위기를 맞으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사업을 접고 함덕 오일장에서 다시 치킨집을 열었지만 2007년 태풍 ‘나리’가 제주도를 덮치면서 모든 것이 다시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민호군이 ‘운동을 참 잘한다’며 친구들에게 자랑하던 형은 지난해 9월 제주도의 한 농지법인회사로 현장실습을 나가 감귤을 따고 나르는 일을 맡았다. 농촌진흥청이 추천하는 ‘나름 괜찮은 회사’였다. 하지만 회사는 지난 7월 “지금 일거리가 없다”며 성산항으로 파견근로를 보냈고, 그는 갈치잡이배에서 외판장까지 갈치 나르는 일로 떠밀렸다. 새벽 3시에 집을 나서는 고단한 노동이었다.

민호군도 알아서 이 학교를 택했다. 학비 걱정 없이 취업도 일찍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 얘기도 안 하고 정했느냐”는 아버지의 핀잔에 “그런 것 정도는 내가 결정해도 되는 것 아니야?”라며 어른스럽게 웃어 보였다고 한다. 현장실습을 나간 뒤 담임인 정경환(32) 교사가 “기숙사 다시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장기 귀가 처리해줄까” 물었을 때도, 민호군은 “여기 취업해서 계속 일할 거예요. 자신 있으니까 기숙사 퇴사시켜주세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혹여 복교하고 싶어질까봐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려는 마음이었을 것으로 주위에선 짐작했다. 지난 7월 드디어 10여년 만에 집안 빚을 모두 갚게 되자 민호군이 말했다. “엄마, 아빠. 우리 이제는 빚 없잖아. 이제 나도 일하고 형도 일하고 넷 다 돈 버니까 열심히 해서 집 사서 같이 살자.”

민호군의 관이 화장로로 들어가자 어머니 박씨가 “아들, 아들” 외치는 소리가 제주시 양지공원의 조그마한 관망실 안에 가득 찼다. 박씨를 부둥켜안은 아버지는 기어이 ‘꺼이꺼이’ 하고 울었다. 장례식 내내 말이 없던 형도 눈물을 훔쳤다. 관이 불길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작은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아버지 이씨는 애꿎은 창문만 텅텅 두드리다가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며 울부짖었다. 가족들은 자꾸만 자기 탓을 했다.

화장된 민호군 유해는 양지공원 봉안실에 안치됐다. 부모는 아직 막내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말 한마디 없이 하늘로 갔는데 땅에 묻으면 흙과 함께 형체도 없어질 것 같다.” 부모는 생각날 때마다 아들 유골함이라도 쓰다듬고 사진이라도 한번 더 보고 싶다고 했다.

이날 영결식은 사고 발생 뒤 28일 만에 치러졌다. 민호군은 지난달 9일 제주시에서 현장실습을 하다가 제품 적재기 프레스에 눌렸다. 열흘간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다가 19일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업체 대표는 유가족의 사과 요구에 침묵으로 일관했고 학교와 도교육청도 뒷짐을 진 채 방관했다.

지난해 ‘구의역 김군’, 올해 초 ‘엘지유플러스 콜센터 홍양’에 이어 또 한 명의 현장실습생이 목숨을 잃자, 특성화고등학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매일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침묵하던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24일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합동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혔고, 지난 1일 교육부는 조기취업형 현장실습제도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 4일 업체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유족에게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현장실습제도 개선방안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민호군이 세상에 마지막 작별을 고한 6일 국회에선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소위가 열려 직업교육훈련촉진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결렬됐다.

서귀포/고한솔 허호준 이지혜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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