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적부심에서 석방이 결정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11월22일 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와 차 안에 앉아 있다. 의왕/연합뉴스
검찰이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거나 권력형 비리 수사를 하면 예외 없이 법원과 구속영장을 두고 다툽니다. 법원이 “핵심 영장들을 기각해”(지난 9월 서울중앙지검 성명서 중) 수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검사와 판사가 직접 싸우는 일은 없습니다. 주로 기자(언론)를 사이에 두고 싸웁니다. 그 싸움을 중재 또는 중계하느라 법조팀 기자들이 바쁜 관계로 ‘담당’도 아닌 제가 나왔습니다.
구속은 ‘예외’입니다. 수사나 재판에 필요할 때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법(형사소송법)은 구속의 사유를 규정하고 ‘이럴 때만 구속하라’고 제한합니다.
우리 법에서 정한 구속 사유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고 + ①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②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③도망할 염려가 있을 때’뿐입니다. 법원의 결정에 반발하는 검찰이 흔히 언급하는 이유 중에 ‘혐의가 무거운데’ ‘사안이 중한데’라는 말은 구속 사유가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의무적 고려사항’, 즉 판사가 구속 사유를 심사할 때 고려할 사항입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검찰은 “혐의가 중하면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커지는 것 아니냐”고도 합니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형사소송법의 ‘의무적 고려사항’은 2007년 법이 개정되면서 추가됐습니다. 판사가 구속 여부를 결정할 때 사실상 ‘종합적으로’ 고려되던 요소들을 법률에 반영한 결과입니다. 애초 고려사항이 아닌 구속사유에 추가하자는 게 개정안의 원안이었으나 무죄추정원칙 및 불구속 수사(재판) 보장에 역행할 우려를 고려해 ‘톤 다운’ 된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원안을 발의한 이는 검찰 출신 장윤석 의원(당시 한나라당)이었습니다.
이 의무적 고려사항을 두고 검찰과 법원의 해석이 갈립니다. 특히 영장이 기각되면 더욱 그러합니다. 법원은 기각 사유에 사안의 중대성이나 범죄의 경중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본건 혐의에 따른 피의자의 죄책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 기본적 증거자료가 수집되어 있는 점, 주거가 일정한 점을 종합하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그러자 검찰은 즉시 “이씨의
혐의가 무거운데도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혐의가 ‘무겁다’의 기준은 없습니다. 보석의 제외 사유에 해당하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의심받고 있는 경우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 정도 혐의면 무겁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혐의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속은 죄를 지은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처벌’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모든 피의자(피고인)는 무죄로 추정됩니다. 구속은 처벌이 아니기 때문에 혐의의 종류(경중)에 따라 구속 여부가 결정될 수 없습니다. ‘교과서적’으론 그렇습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구속적부심에서 풀어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1부 재판장 신광렬 판사를 향한 비난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향하고 있는 권력형 비리 사건입니다. 구속 결정을 내린 (같은) 법원이 11일 만에 피의자를 풀어줬습니다. 그동안 법원의 구속적부심 인용(석방)률이 10%대였던 걸 고려하면 충분히 ‘의심’을 살 만합니다. 법원은 국민들이 왜 그런 의심을 하는지, 어쩌다 “납득하는 동료들이 없다”는 내부 비판에 직면하게 됐는지, 무죄추정의 대원칙을 ‘가진 자’들에게만 적용해온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겠지요. 구속영장을 발부하거나 기각할 때 틀에 박힌 말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피의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선에서 구체적인 사유, 상황 변경 내용 등을 충분히 설명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대신 “혐의가 무겁고 사안이 중대한 피의자를 풀어줬다”는 검찰과 언론의 목소리는 가려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구속은 혐의가 중한 피의자를 예비적으로 구금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기고 이번 사태를 봐야 합니다. 구속의 문턱은 높이고 구속 후 석방의 문턱은 낮추는 게 헌법이 규정하는 신체의 자유, 형사소송법이 강조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맞는 방향입니다. 구속됐던 11일 동안 수사가 진행돼 증거 인멸, 도주 우려가 사라졌다면 형사소송법의 무죄추정의 원칙과 구속 사유를 고려해 석방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순진한 믿음이지만, 신광렬 판사의 석방 결정엔 이러한 배경이 작용했을 거라 믿습니다. 이 믿음은 언제 다시 무고한 국민을 향해 ‘혐의가 중하고 재범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할지 모를 검찰과 이에 동조하는 법원을 견제하는 밑천이 될 겁니다.
박현철 토요판팀 기자 fkco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