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밤 서울 중구 순화어린이공원 인근에서 노숙인 아웃리치 상담원인 이현(30)씨와 양범진(25)씨가 종이상자와 비닐을 덮고 있는 노숙인에게 말을 걸고 있다.
지난달 30일 저녁 7시. 체감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질 정도로 추워지자 37명의 노숙인들은 서울 중구 남대문 지하도 벽을 따라 종이상자를 겹쳐 세웠다. 지하도에 부는 칼바람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서다. 띄엄띄엄 누운 노숙인들 사이로 주황색 외투를 입은 ‘거리노숙인 아웃리치 상담원’들이 들어섰다. “춥지 않으세요? 율무차 한잔 드실래요?” 상담원들이 보온통과 핫팩 박스를 끌고 다니며 노숙인들에게 말을 걸었다.
매일밤 서울 시내 곳곳에 흩어진 노숙인들을 찾는 이들은 서울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다시서기센터) 소속 아웃리치 상담원들이다. ‘아웃리치’란 ‘손을 내밀다’라는 영어 단어에서 파생된 용어로, 장애·수치심 등 이유로 스스로 상담소를 찾기 어려운 노숙인들에게 먼저 손길을 내미는 지원 활동을 뜻한다.
11명 상담원들은 매일 밤 5개조로 나뉘어 서울역 근처 노숙인 거점 지역을 돈다. 따뜻한 시설에서 잠을 자도록 설득하고, 주거지원이나 취업지원을 안내한다. 이날 저녁 7시30분부터 밤 11시까지 야간 아웃리치 활동에 나선 사회복지사 이현(30) 상담원, 양범진(25) 상담원을 따라나섰다.
이들이 이날 찾은 곳은 중구 남대문 지하도, 남산입구 지하도, 서울역 중앙지하도 등이었다. 이 경로에 머무는 노숙인만 70~80여명에 이르렀다. “선생님, 자활근로 하러 오시기로 약속했는데 왜 안오셨어요? 일단 오늘 밤은 너무 추우니까 잠은 ‘깡통’에서 주무세요.” 양범진 상담원이 남대문 지하도에 나열된 상자 하나를 두드리며 말했다. ‘깡통’이란 서울역 희망지원센터를 이르는 노숙인들의 은어다. “거기는 노숙인이 너무 많아서 싫어.” 주소도 문패도 없는 거처지만, 상담원들은 누가 어디에 자리잡고 있는지 대부분 파악하고 있다.
상담원들은 허탕을 치는 일이 일상이다. 이날도 따뜻한 자리로 옮기자는 권유에 응한 노숙인은 없었다. 이현 상담원은 “노숙인들과 유대감을 만들기 위해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며 “어제까지 술에 취해있던 분이 시설에 나타나서 취업상담을 요청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모두 지속적인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밤 서울 중구 서울역파출소 앞을 노숙인 아웃리치 상담원인 이현(30)씨와 양범진(25)씨가 보온통과 핫팩이 든 짐을 끌고 지나가고 있다.
이날 밤 10시께 남산입구 지하도에 들어선 상담원들이 담요를 뒤집어쓴 노숙인에게 다가갔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어깨를 건드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상담원들은 급한 손놀림으로 담요를 걷어내 상태를 살폈다. 그는 술에 취해 깊은 잠에 빠진 상태였다. “다행히 별일 아니었지만, 특히 겨울에는 긴급 상황이 발생할 때도 있어요.” 고령에 병이 있는 노숙인들은 겨울이 되면 거리에서 숨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아웃리치 상담원은 이런 경우를 대비해 심폐소생술 교육도 받는다.
다시서기센터의 이태용 현장지원팀장은 “특히 겨울에는 거리에서 노숙인이 동사할 위험이 크고, 노숙인 스스로도 노숙을 중단하려는 욕구가 커지기 때문에 이때 아웃리치 상담원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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