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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하늘위 ‘408+51일’…땅위 500명과 뜨거운 눈맞춤

등록 2017-12-31 18:46수정 2017-12-31 21:05

[현장] 파인텍 굴뚝농성 연대의 날
굴뚝 비춘 땅 위의 불빛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에요”

파인텍 차광호·홍기탁·박준호 등
단체협약 보장·고용승계 요구하며
총 400일 넘게 릴레이 고공농성

굴뚝농성 연대행사 참가 500여명
국회서 굴뚝까지 7km 행진뒤 응원
농성자들 “너무나 감동스럽다”
49일째 굴뚝에서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홍기탁 전 파인텍지회장과 박준호 사무국장이 12월30일 ‘408+49’ 굴뚝농성 연대의 날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을 향해 손전등 불빛을 흔들며 반기고 있다. 정택용 사진가 제공
49일째 굴뚝에서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홍기탁 전 파인텍지회장과 박준호 사무국장이 12월30일 ‘408+49’ 굴뚝농성 연대의 날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을 향해 손전등 불빛을 흔들며 반기고 있다. 정택용 사진가 제공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뿌연 하늘에서 흰 점 두 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비옷을 입은 시민 500여명이 하늘을 향해 소리 질렀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까워질수록 흰 점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서로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 75m 굴뚝 위와 그 아래 지상에서 사람들은 손전등과 휴대전화 불빛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공중의 흰 점이 말했다. ‘나, 여기 있어요.’ 땅의 불빛들이 응답했다. ‘우리가 함께할게요.’ 굳은 표정으로 연달아 담배를 피우던 차광호 전국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의 얼굴에 조금씩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수도권에 처음으로 초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진 12월30일 오후 2시30분께 초록색 손수건을 저마다 목과 손에 두른 사람들이 여의도 국회 앞에 모였다. ‘408+49 파인텍 굴뚝농성 연대의 날’ 행사(<한겨레> 12월30일치 1면)에 참여한 시민들이었다.

‘408+49’는 슬픈 기록이다. 408은 세상에서 가장 긴 고공농성 일수다. 차광호 지회장이 1995년 입사한 한국합섬은 2007년 파산했다. 한국합섬을 인수한 스타플렉스는 스타케미칼로 이름을 바꿔 2011년 공장을 재가동했지만 회사는 2년도 안 돼 적자를 이유로 해산을 결정했다. 해고 통보를 받은 29명 중 한 명이었던 차 지회장은 2014년 5월27일 45m 높이 굴뚝에 올랐다.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봄을 지나 다시 여름이 된 2015년 7월8일에야 ‘고용 보장’ ‘노동조합 및 단체협약 보장’ ‘생계 보장’을 약속받고 발을 땅에 디딜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고용하기로 한 스타케미칼의 자회사 파인텍은 단협 체결 약속을 미루더니, 지난 8월 공장에서 기계를 빼내고 사업에서 철수했다. 노동자들에게 남은 선택은 달리 없었다. 2015년 굴뚝에 오른 차 지회장에게 밥을 올려주던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국장이 지난 11월12일 굴뚝에 올랐다. 이번엔 차 지회장이 땅에서 분주히 움직인다. 30일은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국장이 새로 굴뚝에 오른 지 49일째였다. 이렇게 49가 더해졌다.

이날 연대의 날 행사는 국회 앞 기자회견으로 시작됐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국회는 민의의 전당인데 이 자리에 국회의원은 한 명도 안 나와 있다. 노동자들이 70미터 넘는 꼭대기에 올라와 있는데 국회의원들은 밥이 넘어가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장 서예가는 이날 아침 충북 옥천군에서 대나무 50여개를 베어 왔다. 그는 ‘최저임금 일만원 인간의 권리’ ‘함께하는 세상’ 등 노동자의 바람을 담은 글씨를 만장에 적어넣었다. 참가자들은 만장을 들고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 당사, 김세권 스타플렉스 회장 사무실이 있는 목동의 한 빌딩을 지나, 농성자들이 올라간 굴뚝이 있는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앞까지 약 7㎞를 행진했다.

이윽고 저녁 6시40분께 참가 시민들은 두 노동자가 머무는 굴뚝 아래에 도착했다. 굴뚝 위 흰 점과의 교감에 이어 ‘희망을 만드는 촛불문화제’가 이어졌다. 인천지역 공부방 ‘기차길옆작은학교’에서 온 초등학생 5명이 권정생 작가의 시 ‘토끼’를 노래했다. “깜장 토끼가/ 노란 토끼를 핥아주고/ 하얀 토끼가/ 잿빛 토끼한테 기대어 자…” 상생과 공존을 뜻하는 노랫말에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이날 연대의 손길을 기획한 이는 송경동 시인이다. 그는 “제안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지 8일 만에 목표였던 457(408+49)명의 두 배가 넘는 1165명의 후원자가 희망을 모아주셨다. 대구에서는 35명이 희망버스를 타고 이곳으로 왔고, 부산·순천·춘천·속초에서도 연대 행렬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촛불로 새 정권이 들어선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평화와 평등의 가치가 지금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 지역의 ‘기찻길역 작은학교’ 공부방 학생들이 12월30일 ‘408+49’ 굴뚝농성 연대의 날 행사에 참여해 응원의 말을 건데고 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인천 지역의 ‘기찻길역 작은학교’ 공부방 학생들이 12월30일 ‘408+49’ 굴뚝농성 연대의 날 행사에 참여해 응원의 말을 건데고 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굴뚝 위에서 바라본 지상은 어떤 풍경이었을까. 홍기탁 전 지회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감동적인 때가 태어나 또 있었던가 싶다”며 “단체협약을 보장받고 고용이 승계되는 그때 꼭 건강한 모습으로 내려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통화 끝무렵 마지막 당부를 건넸다. “기사에 저희 파인텍지회 소속 동지 5명의 이름을 꼭 다 써주세요.” 김옥배, 박준호, 조정기, 차광호, 홍기탁. 새해를 맞는 1일 이들의 슬픈 기록은 ‘408+51’이 된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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