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 전 비비케이(BBK) 특별검사가 2008년 2월26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보도자료가 자가당착으로 가득하다. 수사기록을 차에 실어 검찰 서고로 보낸 것이 ‘사건 인계’인가. 특수직무유기를 면해 보려고 너무 무리하는 것 같다.”(검찰 핵심 관계자)
‘다스 비자금’ 120억여원을 찾아내고도 이를 덮었다는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정호영 전 비비케이(BBK) 특검이 지난 9일 저녁에 낸 해명성 보도자료를 두고 검찰에선 날 선 비판의 말들이 나왔다. 이 보도자료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대목은 검찰에 사건을 ‘인계’했다는 주장이다.
정 전 특검은 보도자료에서 “일체의 자료를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에 첨부해 검찰에 인계함으로써 필요한 경우 수사를 계속하도록 조치하였다”고 주장했다. 다스 여직원 조아무개씨가 관리하던 120억여원 비자금 관련 계좌추적 기록 등을 모두 검찰에 넘겼으니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 핵심 관계자는 “정식 인계라면 사건의 이송 또는 이첩인데, 특검이 인지한 사건의 수사 대상과 범죄 혐의 등을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장에게 정식으로 통보해야만 한다. 이송은 기관과 기관의 문제이기 때문”이라며 “당시 정 전 특검은 그런 절차를 하나도 밟지 않은 채 수사기록만 차에 실어 보내놓고는 이제 와서 사건을 인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특검이 어떻게 사건을 이첩했는지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지난해 박영수 특검은 구속영장이 기각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 사건을 검찰에 정식 이첩해 계속 수사하도록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김홍업씨의 알선수재,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직권남용 혐의 등도 모두 특검 수사에서 드러나 검찰에 정식으로 이송된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정 전 특검은 ‘120억여원’을 국회 보고서에도 넣지 않았다. 당시 특검법(제11조)은 특검이 공소를 제기하든 하지 않든 “(수사 종결) 10일 이내에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처벌 규정이 없긴 하지만,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특검 수사 막판에 문제의 120억여원이 “특검 수사 대상이 아니”어서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주장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 대상이 아니면 처음부터 수사하지 말았어야 하고, 수사했는데 범죄 혐의가 드러났으면 검찰에 이첩을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계좌추적을 하려고 법원에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는데, 그 단계는 이미 인지수사에 착수한 것”이라며 “그래놓고 수사결과 발표에서 뺀 게 ‘특검법의 수사 대상이 아니어서’라고 주장하는 건 국민을 속이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짚었다.
정 전 특검은 보도자료에서 문제의 120억여원을 경리직 여직원 조아무개씨가 횡령한 것이라고 판단한 이유를 11가지나 열거했다. 그러나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찰 간부는 “개인 횡령이라면 그 돈의 상당액이 ‘소비’되고 없어야 맞다. 20대 젊은 여직원이 5년에 걸쳐 빼돌린 그 많은 돈을 거의 안 쓰고 계좌에 고스란히 넣어뒀다고 하는 것 자체가 비자금으로 의심해야 할 결정적 단서”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이 여직원은 여전히 다스에 근무 중이다. 특검 설명대로라면, 다스는 120억원을 횡령한 말단 직원을 해고나 고발하기는커녕 10년 동안 보호한 셈이 된다.
강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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