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대형 화재 참사가 발생한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 화재현장에서 경찰, 국과수, 한국전기안전공사 등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창문을 통해 사다리로 탈출해 살 수 있었고, 계단으로 대피하려던 환자들은 연기를 피하지 못했다.”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당시 2층 생존자들은 긴급했던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26일 오전 세종병원 2층에서 구조된 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김효원(9)군, 박평안(19)군, 김순남(69)씨, 양혜경(66)씨는 한목소리로 “병실 창밖으로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이 소리를 들은 소방대원들이 창가에 대준 사다리를 타고 탈출했다”고 말했다. 뇌출혈로 지난 24일 세종병원 2층에 입원했다는 양혜경씨는 “간호사가 ‘불이야’라고 소리치는 것을 듣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 찬 연기 때문에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며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옆 병실로 대피했다는 양씨는 창문을 열고 구조를 요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방충망이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당황했는데 남자 환자 한 명이 들어와 방충망을 열어줬다”며 “이 환자가 다른 병실을 돌아다니며 창문을 열어줬다고 들었다”고 했다. 열린 창문으로 양씨는 몸을 내밀어 “살려달라”고 여러번 외쳤다. 이 목소리를 들은 소방대원들이 창가에 사다리를 붙여 탈출할 수 있었다. 이 사다리로 양씨와 김효원군, 박평안군과 이윤후(75)씨 등 4명이 화를 피했다고 한다.
이들은 “창문을 통해 빠져나간 환자들은 살았지만, 빨리 대피하려고 계단으로 탈출하던 사람들은 많이 죽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세종병원 화재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졌다. 이날 오후 밀양 희윤장례식장에는 이번 화재로 숨진 사망자 4명이 안치됐다.
이번 화재 사상자는 병원에 입원해 있던 고령 환자가 많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세종병원 3층에 입원해 있다 숨진 김아무개(90)씨 아들 강철남(67)씨는 어머니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부산에 사는 김씨는 아들 안부를 묻기 위해 반찬을 싸서 밀양에 들렀다 지난 20일 몸이 안 좋아져 세종병원에 입원한 참이었다.
사고 이틀 전인 24일 강씨가 병문안을 갔을 때도 ‘호흡기는 차고 있었지만 의사소통도 잘되고 건강했다’던 김씨는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아침에 병원 직원에게 전화가 와서 어머니를 병원 뒤 경로당으로 옮겼다고 하더라고요. 화재 소식을 듣고 아침 9시쯤에 찾아갔을 땐 이미 돌아가신 뒤였어요.” 강씨는 “워낙 급한 상황이어서 호흡기를 떼고 환자를 옮겼다고 했다. 호흡기만 제대로 달렸더라도 살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노환으로 지난 10일 세종병원 3층에 입원한 김아무개(85)씨도 화마로 목숨을 잃었다. 대전에서 소식을 듣고 급하게 장례식장을 찾았다는 김씨 아들은 “어머니가 3년 전부터 노환이 오셨고, 치매기도 있으셔서 병원에 종종 입원을 하셨다”며 “지난 10일에 입원하셨고, 몸이 좋아져 이틀 뒤에 퇴원한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돌아가실 줄 몰랐다”며 고개를 떨궜다.
밀양/최민영 황금비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