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밀양 세종병원 화재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경남 밀양문화체육회관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밀양/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37명의 사망자를 낸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의 희생자 가운데는 세종병원에서 근무했던 의사·간호조무사·간호사 등 세 명도 포함됐다. 유가족들은 “고인이 평소에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봤고, 그래서 차마 혼자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27일 오후 밀양농협장례식장에서 만난 세종병원 간호조무사 김아무개(37)씨의 남편 이아무개(37)씨는 처음 사고 소식을 들었던 순간을 담담하게 회상했다. “그 날 아침에도 평소처럼 오전 7시에 현관문 앞에서 뽀뽀를 하고 출근했는데, 30분만에 전화가 왔더라고요. 아내가 “‘살려줘’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자신을 살려달라는 것이었는지 환자들을 살려달라는 것이었는지 지금도 너무 궁금합니다.” 놀란 이씨는 전화를 끊은 뒤 옷을 입은둥 마는둥 집에서 병원으로 달려갔고, 아내가 일하던 병원 건물이 연기에 휩싸여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사람들이 이송되는 모습을 보고 저도 주변 병원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병원을 돌아다니며 사망자 명단에 아내의 이름이 없는 것을 확인하며 안도했지만, 한편으로는 생존자 명단에도 아내의 이름이 없어 불안한 마음이 오갔다. 이씨는 “두시간 쯤 지나고 어디에도 이름이 없는걸 보고, ‘아직 병원 안에 아내가 있다면 벌써 죽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다”고 말했다.
사망자들이 가장 많이 발견됐던 병동 2층에서 근무했던 김씨는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씨는 “아내가 간호조무사 실습부터 지금까지 5년 넘게 세종병원에서 일했기 때문에 병원 구조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을 텐데, 환자들을 먼저 대피시키려다가 변을 당한 것 같다”며 고개를 떨궜다.
남편은 숨진 김씨가 환자를 돌보는 일에 긍지를 갖고 있던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김씨는 간호사의 길을 걷기 위해 최근 간호대학 입시에 원서를 냈고, 세종병원에서는 2월까지만 근무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원했던 간호사인데, 대학 입시 결과 발표를 못 보고 황망히 세상을 떴습니다.” ‘천생 간호사’였던 아내를 잃은 이씨는 남편으로서 마지막 할 일이 있다고 했다. “아내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환자들을 대했고, 항상 의학 관련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챙겨봤습니다. 나에게도 ‘간호사 남편이라면 이정도는 알아야 한다’면서 의학 지식을 알려줄 정도로 일을 사랑했습니다. 아내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제가 할 일 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아무개(37)씨가 원했던 길을 먼저 걸었 선배 간호사 김아무개(49)씨도 세종병원 2층에서 근무하다 숨졌다. 간호조무사로 20년 가까이 일하다 40대에 만학도로 간호대학에 다닌 김씨는 간호사가 된지 3년만에 이번 사고로 세상을 떴다고 한다. 밀양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김씨의 동생 김경식(41)씨는 “20년 넘게 간호사 일을 한 누나에게서 힘들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누나는 간호사 일을 사랑했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누나가 제게 ‘내가 너를 업어키웠는데’라고 하면, 저는 ‘누나가 어떻게 나를 업어키워? 내가 더 큰데’라고 말하면서 서로 투탁거렸거든요. 그 정도로 사이가 좋았습니다.” 이날 아침 시청에서 있었던 브리핑을 듣고 누나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많이 해소됐다는 김씨는 “이제 누나를 좋은 곳으로 편히 보내주는 것이 마지막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경남 밀양시는 화재 이틀째인 27일부터 31일까지 닷새를 추모 기간으로 선포했다고 밝혔다. 이병희 밀양시 부시장은 이날 “오늘부터 31일까지를 추모 기간으로 정해 유족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겠다”고 밝혔다. 최민영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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