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여성 검사가 29일 자신이 겪었던 성추행 경험을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그는 가해자인 당시 법무부 핵심 간부에게 사과받기는커녕 인사상 불이익까지 당했다고 털어놨다.
서지현(사법연수원 33기)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이날 검찰 내부 통신망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2010년 10월30일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 안태근 검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서 검사는 이어 “공공연한 곳에서 갑자기 당한 일로 모욕감과 수치심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소속청 간부들을 통해 사과를 받기로 하는 선에서 정리됐지만, 그 후 어떤 사과나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서 검사는 글의 말미에 폭력 피해 경험을 폭로하는 캠페인인 ‘미투 해시태그’(#MeToo)를 달았다. 그러면서 “10년 전 한 흑인 여성의 작은 외침이었던 미투 운동이 세상에 큰 경종이 되는 것을 보면서, (검찰) 내부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작은 발걸음이라도 됐으면 하는 소망, 간절함으로 이렇게 힘겹게 글을 쓴다”고 밝혔다.
그가 폭로한 내용은,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이 남성 중심적 조직 문화에서 ‘2차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일이 검찰 내부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드러냈다. 서 검사는 해당 사건 이후 “갑작스러운 사무 감사를 받으며, 그간 처리했던 다수 사건에 대해 지적을 받고, 그 이유로 검찰총장의 경고를 받고,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발령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납득하기 어려운 이 모든 일이 벌어진 이유를 알기 위해 노력하던 중 인사발령의 배후에 안 검사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안 검사의 성추행 사실을 당시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앞장서 덮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서 검사가 추행 사건 이후 조직 안에서 겪었다고 폭로한 경험은, 억울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검찰 조직의 ‘인권 감수성’이 어느 정도까지 추락했는지도 생생하게 보여줬다. 괴로워하는 그에게 동료 검사들은 ‘너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지금 떠들면 그들은 너를 더욱 무능하고 이상한 검사로 만들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법무부에 알렸지만 ‘검사 생활 오래 하고 싶으면 조용히 상사 평가나 잘 받으라’는 싸늘한 반응이 돌아왔다고 한다.
서 검사는 이날 저녁 <제이티비시>(JTBC) ‘뉴스룸’에 출연해 “검찰 내에 성추행이나 성희롱뿐 아니라 성폭행을 당한 사례도 있었지만 비밀리에 덮였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서 검사가 지목한 안태근 검사는 지난해 6월 법무부 검찰국장 시절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의 부적절한 ‘돈봉투 만찬’ 파문으로 그달 면직 처분됐다. 안 전 국장은 이날 언론에 “오래전 일이고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다만 그 일이 검사 인사나 사무감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성추행을 덮은 상사로 지목된 최 전 국장도 “전혀 기억이 없다. 왜 나를 끌어들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서 검사는 자신이 7년 남짓 지난 지금 폭로에 나서게 된 이유에 대해 “아무도 우리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내게 일어난 불의를 참고 견디는 게 아니라 그것을 드러내야만 이 조직이 발전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이날 “해당 게시글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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