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5일 오후 정치·통일·외교 분야 대정부질문이 진행된 국회 본회의 도중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 청와대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기소하며 공소장에 이명박 전 대통령을 ‘주범’으로 적시했다는 내용이 담긴 기사를 휴대전화로 살펴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검찰이 5일 김백준(78)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위반(뇌물수수 및 국고손실) 혐의로 재판에 넘기면서 이명박(77) 전 대통령을 ‘공범’을 넘어 ‘주범’으로 적시했다. ‘이명박 청와대’가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를 뇌물로 받은 사건의 책임 소재가 이 전 대통령 1인에 집중돼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증거 수집과 이를 둘러싼 관련자 진술 확보 등 조사가 단단하게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기획관에 대한 에이(A)4 5쪽 분량의 공소장에 나오는 이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비교적 간단하고 명확하다.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공여자’인 당시 김성호(68)·원세훈(67) 국정원장에게 각각 2억원의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달라고 요구하고, 김백준 전 기획관에게 이를 수령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 전 기획관이 이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돈을 수수한 것이란 점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고 말했다.
실제 정치권과 법조계 등에서는 지난달 12일 압수수색으로 수사가 공식화되면서부터 김 전 기획관의 ‘입’에 주목해왔다. 1970년대부터 이 전 대통령과 줄곧 긴밀한 관계를 맺어오면서 개인 재산까지 관리한 탓에 내밀한 곳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최측근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앞서 김 전 기획관은 지난달 17일 구속 때까지만 해도 금품수수 사실 자체를 부인해왔다. 하지만 20일가량 구속됐던 기간 중 태도를 180도 바꿔 이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와 일부 사용처까지 진술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검찰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죄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이 선고되는 중범죄여서 고령의 김 전 기획관이 모두 떠안기엔 부담이 크고, 주변에서도 그를 강하게 설득한 게 주효했다고 보고 있다. 2008년 김 전 기획관을 직접 만나 현금 2억원이 든 여행용 가방을 전달한 국정원 예산관과의 대질조사가 이뤄지는 등 검찰의 적극적인 압박도 효과를 봤다. 또 돈 전달 과정을 모두 알고 있는 ‘국정원 금고지기’ 김주성(71)·목영만(59) 두 전직 기조실장도 당시 정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해 더는 버티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이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부정한 돈이 오갔다고 인식했다는 증거는 김주성 전 실장이 이 전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2008년 2억원 전달 당시 김 전 실장은 이례적으로 이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 “국정원 돈을 가져다 쓰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건의했고, 이 자리를 류우익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선했다고 한다. 류 전 실장도 검찰에서 이런 내용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김 전 기획관의 공소장에 적시된 내용 외에도 이 전 대통령이 수수한 ‘검은돈’의 규모는 훨씬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영원한 보좌관’ 김희중(50)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역시 2011년 이 전 대통령 미국 국빈방문 때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10만달러(약 1억원)를 김윤옥(71) 여사 보좌진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을 진술한 바 있다. 검찰은 또 2011년 김진모(52·전 서울남부지검장)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이 국정원으로부터 5000만원을 받는 과정에서도 이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돈은 이후 장석명(55) 전 공직기강비서관, 류충렬(62) 전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을 거쳐 ‘내부 고발자’ 장진수 전 주무관 매수를 시도하는 데 사용됐다.
검찰은 김 전 기획관이 수령해 전달한 4억원의 용처를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다만 검찰 관계자는 “국고손실이나 뇌물죄는 돈을 받은 것으로 범죄가 완성된다. 사용처는 범행의 죄질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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