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으로부터 불법자금을 수수함 혐의를 받고 있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지난달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검찰이 지난 5일 구속기소한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공소장 내용을 보면, 사실상 해당 혐의에 대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소장으로 봐도 무방할 수준이었다. 에이(A)4 다섯 장 분량의 김 전 기획관 공소장에는 이 전 대통령의 이름이 모두 13번이나 등장한다. 이 전 대통령이 최고 통치권자의 지위를 이용해 사용처를 증빙하지 않아도 되는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를 제 돈처럼 요구했다는 관련 증언도 적나라하게 적시됐다.
<한겨레>가 8일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확보한 김 전 기획관의 공소장에는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의 명백한 ‘주범’으로 등장했다. 이 전 대통령을 국정원에서 특활비 4억원을 상납받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국고손실 혐의의 피의자로 명시했다. 뇌물공여자는 김성호 전 국정원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었다.
검찰은 김 전 기획관이 2008년 4~5월께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특활비 2억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이 2008년 4~5월께 김성호 전 원장과 공모해 특별사업비로 편성된 국정원 자금 2억원을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와 무관하게 인출해 사용함으로써 국고를 손실하고,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해 김 전 원장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했다”고 적었다. 검찰은 김 전 기획관에 대해서는 이 전 대통령이 국고를 손실하고 뇌물을 수수하는 것을 돕기 위해 국정원 예산관으로부터 현금 2억원을 받아온 ‘방조범’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이 돈을 뇌물이라고 판단한 이유와 관련해 “김성호 전 원장은 지명 직후 ‘삼성에서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져 청문회도 열리지 못했는데, 연이은 의혹에도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장 임명을 강행해준 것에 대한 보답과 국정원장직 유지 및 인사, 예산편성 등 대통령으로부터 각종 편의를 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이 전 대통령의 요구대로 2억원을 마련해 주기로 마음먹었다”고 적시했다.
2010년 7~8월께 2차로 건너간 2억원도 이 전 대통령이 주범으로 등장한다. 이번엔 이 전 대통령이 원세훈 전 원장과 공모해 특활비를 상납받았고, 원 전 원장은 국정원 운영과정에서 발생한 문책론에도 원장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한 보답으로 돈을 건넸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검찰이 공소장에 이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못박음으로써 향후 처벌 절차는 ‘택일’만 남은 것으로 풀이된다. 더구나 이 전 대통령이 받은 국정원 상납액은 이후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진술한 10만 달러(1억여원)와 김진모 전 민정2비서관이 민간인 사찰 입막음용으로 전달받은 5000만원 외에도, 검찰은 2008년 박재완 전 정무수석과 장다사로 전 정무비서관이 국정원에서 수억원의 특활비를 받아 총선 여론조사용으로 썼다는 의혹도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이미 여론조사 업체 등을 통한 사전 수사로 상당 부분 혐의를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게 드러나면 박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도 기소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한편 검찰은 이날 이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소환조사한 김성호 전 원장의 구속영장을 조만간 청구할 방침이다. 김 전 원장은 2008년 이 전 대통령에게 2억원의 특수활동비를 건넨 혐의뿐 아니라 친박계와 친이계의 지지율을 분석하는데 수억원의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불법 여론조사 비용으로 상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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