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8년 집사’ 김종백씨 통화
이동형-이시형 파워 게임에
MB가 직접 나서 정리한 정황
‘MB 진노’ 당일 울먹이며
처지 비관하는 이동형 부사장
“MB가 다스 내거라 말 못해”
시간 끌며 다스 내부 영향력 모색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서 검찰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의혹 수사 등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래서_다스는_누구 겁니까?’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배회했던 ‘유령’의 실체가 드러나기 직전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풀려난 지 사흘 만에 삼성을 압수수색한 검찰의 움직임을 보면 이미 검찰 수사는 다스의 실소유주 규명을 넘어 더 먼 곳을 향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85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은 다스 회장 등이 현대건설로부터 도곡동 땅을 사들이며 시작된 ‘엠비’(MB) 집안의 ‘차명 재산의 역사’가 규명될 날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한겨레> 다스 특별취재팀이 접촉한 다스 전·현직 직원들은 한결같이 ‘다스는 엠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스의 경리팀장이었던 채동영씨는 “입사 전부터 회사 주인이 엠비라는 걸 알았다”고 했고, 이상은 회장의 운전기사이자 다스 감사팀 등에서 18년간 근무했던 김종백씨는 “다스 입사 3개월 만에 회사가 엠비 것이라는 걸 알았다”고 고백했다. 최근까지 이상은 회장의 차를 운전했던 다른 직원은 “다스가 엠비 것이 아니라면 그럼 누구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취재진에게 되묻기까지 했다.
<한겨레>는 다스 특별취재팀을 꾸려 다스 임직원 10여명을 만났다. 참여연대 등을 통해 입수한 김종백씨와 다스 전·현직 임직원들과의 통화 녹음도 전수 분석했다. 다스가 이 전 대통령의 소유임을 입증하는 결정적 장면을 정리해 소개한다.
■ 엠비의 진노: “엠비가 이동형 자르고, 다 정리하란다” “게임 끝났다. 모든 게 다 끝났다. 심각하다. 엠비가 아이엠(IM), 에스비(SB)글로벌로지스 다 수거하고 없애버리고 박살내라고 이야기했다. 이동형 (부사장) 자르고. 말 안 들으면 아산으로 유배 보내고. 김○○, 최○○도 자르란다. 다 정리하란다. 이동형 밑에 있던 사람들 다 정리하고.”(2016년 7월14일, 다스 전 총무팀 직원 김△△씨가 김종백씨와 한 통화 내용)
2010년 다스에 과장으로 입사한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 다스 전무는 2012년 이사로 승진했고, 2014년 다스 해외법인 대표에 올랐다. 이 무렵 다스 내부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이 전무가 초고속 승진을 한 데 이어, 다스의 알짜배기 해외법인까지 장악하자, 이시형씨 입사 전까지 실권을 휘둘렀던 이동형 부사장(이상은 회장의 아들)은 저항했다. 다스 전·현직 임직원들은 이동형 부사장이 “생존을 위해 물밑에서 치열하게 저항했다”고 말했다. 실제, 김종백씨가 검찰에 제출한 통화 녹음의 상당 부분은 이동형씨가 실권을 잃을 것을 두려워해 다스 안팎의 상황을 알아보고, 이 전 대통령과 그의 아들 이시형 전무의 반응을 살피는 내용들이다. 2016년 여름까지 ‘알짜기업’ 다스를 장악하고 있던 임원진은 모두 이 부사장 쪽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해 여름이 지나며 사내 권력의 추는 이시형 전무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한다. 다스의 한 핵심 관계자는 <한겨레>와 만나 “이시형씨가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다스는 자기 회사니까 그동안 회사를 맡아 관리해온 이동형씨 쪽 사람들을 다 밀어내려 했다”고 말했다. 2016년 7월의 통화는 사촌 사이에 벌어진 파워 게임에 이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선 정황을 보여준다. 김○○, 최○○ 등 통화에서 언급된 다스 임직원들은 실제 충남 아산에 있는 공장으로 ‘유배’를 가거나 변방 부서로 좌천됐다.
이동형 다스 부사장이 지난 1월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이동형의 한탄: “물건처럼 이리 보냈다 저리 보냈다” “이쪽 집안에서는 최○○, 김○○ 사표를 받고 나(이동형 부사장)를 잘라버리려고 해. 회장님(부친인 이상은씨)이 살아계셔도 이러니까. 그 작업을 누가 그랬겠냐고. 시형이는 엠비 믿고 회사에서 마음대로 하고 있지만, 그것도 난 걱정이야. (내) 오른팔, 왼팔 나가면 (시형이야) 편하겠지만, 그게 회사를 위한 일이 아니야. (중략) 엠비하고 시형이 다치지 않기 위해서 좀 천천히 입사해라, 승진해라, 동형이를 활용해라 했는데, 물건처럼 해서 이리 보냈다 저리 보냈다 하는 거니까. 나는 이제 깨달은 거야. 내가 여기 있어서 내 인생을 찾지 못하면 (중략) 풀빵 장사를 하든 다코야키를 팔든 시내에서 옷가게를 하든….”(2016년 7월14일, 이동형 다스 부사장이 김종백씨와 한 통화 내용)
김△△씨가 이 전 대통령의 진노를 언급한 당일, 이동형 부사장은 거의 울먹이며 이렇게 말한다.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인사에 개입해 자기 수족 같은 이들을 내치는 작업이 완료됐음을 시인하며 처지를 비관한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엠비하고 시형이 다치지 않게 했는데, 회장님이 살아계셔도 이렇게 나온다’는 대목이다. ‘차명재산’의 관리인으로서 나름의 역할을 맡아왔지만 활용도가 떨어지자, 내쳐지는 처지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전화 통화의 뒷부분으로 가면 자신의 아버지인 이상은 회장의 처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는 “울분이 터지지만 아버님한텐 이런 이야기를 못하지. 회장님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겠어”라고 말한다. 이상은 회장이 이 전 대통령의 결정에 아무런 이의 제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뜻하는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다스에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처지를 비관하며 ‘풀빵’, ‘다코야키’ 장사까지 언급한 것이다. 실제 다스 안팎에서는 이 부사장과 이상은 회장이 상당히 쪼들렸던 상황이라는 증언이 잇따라 나왔다. 이상은 회장을 수행했던 다스의 한 직원은 “회사에서 이 회장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이상은 회장은 백화점 등에서 구매한 물건값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할 정도로 재정적으로도 쪼들렸다”고 말했다.
■ 이시형의 승계작업: “자연스럽게 이시형이 회사를 인수하고…” “이게 이동형 부사장이랑 이시형 전무랑 둘이서 싸우지 않고 이시형 전무가 시드머니를 계속 마련을 해서, 자연스럽게 이시형 전무가 이 회사를 인수하고, 결국은 본인이 7~8년 정도 시간 들여 조금조금씩 해야지. (중략) 엠비가 양심선언해서 ‘이거 내 것’이라고 얘기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야. 주식이 명의신탁 되어 있잖냐. 그럼 이걸 본인 명의로 갖고 오려고 그러면 증여세를 물어야 된단 말이야. 증여세 무는 게 상속세보다 더 많다고.”(2016년 8월6일, 김○○ 다스 이사가 김종백씨와 한 통화 내용)
이 전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지 한 달여 뒤인 2016년 8월 있었던 이 대화는 이시형 전무 쪽으로의 승계 구도가 사실상 확정된 상황에서 ‘시간 조절’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이상은 회장과 이동형 부사장은 이 전 대통령이 “다스는 내 것”이라고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용해 본인들의 지위를 좀더 이어갈 방안을 모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 이사가 이시형 전무의 ‘시드머니’ 마련을 언급한 것은 이시형 전무가 다스의 사내하청을 장악해 경영권 승계를 완성지을 ‘실탄’을 마련하리라는 예측이다. 실제 검찰은 이 무렵이 다스의 실소유권이 이시형씨한테 넘어간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 2016년 여름 이후 다스에서는 이동형 부사장 쪽에 협조적이었던 경영진이 줄줄이 자리를 잃는다.
검찰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금까지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수사로 확인된 내용이 훨씬 더 많다”며 다스 실소유주 입증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또 “다스가 차명재산이라는 점이 확인되면 자연스럽게 부수 범죄들이 여럿 따라나오게 된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다스의 실소유주 입증을 탄탄하게 하는 데 집중해왔다”고 말했다.
김종백씨의 녹취록을 검토한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김종백씨의 녹취를 들어보면, 다스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소유가 아니라고 믿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소유와 경영에 개입한 정황들이 드러난다”며 “기존에 알려진 것 말고도 다스를 통해 여러 종류의 비자금이 조성된 정황도 함께 드러나는데, 이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신지민 기자, 김완 정환봉 변지민 송채경화 <한겨레21> 기자 godjimin@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21> ‘훅’ | 다스 추적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