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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강제성 없었다”…미투 가해자들, 왜 성폭행만은 부인하나

등록 2018-03-01 15:21수정 2018-03-01 20:51

성추행 등 자백하는 양태와 달리
성폭행 혐의엔 ‘강제성 없어’ 부인

‘항거불능’ 폭행·협박 요건 피하고
성희롱 등 성폭력은 ‘낮은 수위’로 여겨

“강간 외엔 별 문제 없다고 보는
성폭력 관용해 온 남성주의가 문제”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성폭행은 인정할 수 없다. 강제는 아니었다.”(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전 예술감독) “성폭행에 대한 사과는 지금은 (안 하겠다). 제가 성폭행한 적은 없는 것 같다.”(인간문화재 하용부) “(미성년자들과) 서로 좋은 감정을 갖고 성관계를 했다. 강제성은 없었다.”(조증윤 극단 번작이 대표) “배우자가 있는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었지만 사귀는 사이였다.”(김태훈 배우 겸 세종대 교수)

성폭력 피해를 증언하는 ‘#미투’의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사과나 경찰 진술에선 하나의 공통적인 패턴이 드러난다. 성추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강간을 뜻하는 성폭행은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법적으로 강간이 추행보다 처벌 수위가 높은 현실을 고려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낮은 수위의 추행만 인정하는 정도’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의도 또한 여실히 드러난다. 가해자들이 이런 대응을 선택하는 배경에는 성폭행 이외 희롱·추행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8일 미성년자인 청소년단원 2명을 여러차례 성폭행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조증윤(50) 극단 번작이 대표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 2명과 성관계를 가진 것은 인정했지만, ‘서로 호감을 갖고 관계를 맺은 것이지 결코 강제로 한 것은 아니다’라며 성폭행을 한 것은 아니라고 진술했다.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한 연출가 이윤택, 인간문화재 하용부씨 역시 각각 사과 기자회견과 언론 인터뷰에서 강제 성폭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25일 자신이 성추문에 휘말렸던 사실을 인정한 배우 최일화는 피해자의 “명백한 성폭행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들의 사과에는 성폭력을 협소하게 해석하고, 이를 부인하는 전형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성기 삽입을 전제로 한 강제적인 성관계만이 심각한 성폭력에 해당한다는 인식 아래 고백의 수위를 낮추는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현행 법제도도 이런 대응을 뒷받침한다.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을 경우에만 강간 혐의가 인정되기 때문에 피해자와 수사기관은 이를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이런 왜곡된 성인식과 법제도 아래 가해자들은 ‘내가 강간범은 아니다’, ‘성관계를 했어도 강제성은 없었다’라는 해명을 앞세우게 된다.

실제로 여성가족부에서 2010년 발간한 ‘성폭력 가해자 교정·치료 프로그램 매뉴얼’을 보면,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일반적인 성폭행과 다르다며 강간범과 자신을 차별화하려고 시도하고, 자신의 성폭력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한다. 가해자들이 자신의 성폭력 행위를 부정하고 회피하기 위해 이를 부인하고,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방어기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성폭력으로 지목된 행위를 격려나 애정 표현 등으로 축소하려는 시도 역시 자신의 행위는 성폭력이 아니라고 믿는 방어기제의 발동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전문가들은 이런 왜곡된 방어기제는 성폭력의 위계를 구분하고, 희롱과 추행 정도는 사소한 행동으로 치부하는 남성중심 문화의 산물이라고 진단한다. 한국여성민우회 이임혜경 정책위원은 “많은 가해자들이 ‘성폭력만은’ 아니라고 혼신을 다해 부정하는 것은 ‘성폭력 외의 다른 것은 별 것 아닌 것’이라 관용해 온 남성들의 공동체 문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선경 변호사도 28일 열린 ‘#문단_내_성폭력과 갑질 청산을 위한 토론회’에서 “성폭력을 방관하고 심지어 가해자들을 옹호한 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범죄 행위가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미투의 문제제기가 현실로 자리잡기 위해서도 이런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 나온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성폭력은 피해자 주변인들이 그것(피해)을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는가에 따라 사회적 의미가 달라진다”며 “성폭력 피해자들이 수년동안 피해를 말하지 못했던 핵심적인 이유는 ‘2차 가해’라는 주변 환경 때문이었고, 그것을 극복하는 힘으로 ‘미투’라는 결집된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황금비 선담은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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