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수수, 직권남용, 횡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14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사상 다섯번째인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가 14일 오전부터 팽팽한 긴장 속에 진행됐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갖췄지만, 조사가 시작되자 검찰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증거와 진술까지 내밀며 이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 실소유 의혹부터 삼성의 소송비 대납 등 100억원대 뇌물 혐의까지 모두 부인하며 맞섰다.
다스와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은 10년 전 특검 조사 때와 같은 진술을 되풀이했지만, 이번엔 검찰이 가진 ‘무기’가 달랐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부인할 때마다 다스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청와대 보고서나 차명재산 관리내역이 담긴 장부를 꺼내 들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이 변호인 조력을 받으며 본인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조사실 분위기를 전했다.
‘다스 실소유주’ 수사로 포문
14일 오전 9시50분, 신봉수 첨단범죄수사1부장과 이복현 특수2부 부부장은 직사각형 책상을 두고 이 전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이 전 대통령 바로 옆에는 과거 특검 때도 이 전 대통령을 변호했던 강훈 변호사가 앉았다. 검찰은 직업 등을 묻는 ‘인정신문’을 생략하고 바로 핵심으로 치고 들어갔다.
첫 질문은 ‘다스 실소유 의혹’이었다. 예상대로 혐의를 부인하자 검찰은 곧바로 수집된 증거를 제시했다. ‘위 문건엔 처남인 고 김재정씨 사망 뒤 친형 이상은 다스 회장 지분을 아들 시형씨에게 옮기는 것을 모의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보신 적 없으십니까’ ‘강경호 다스 사장은 이런 내용을 모의한 사실을 인정하며 대통령님에게 보고했다고 하는데, 보고받은 사실이 없으십니까’ 등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와 핵심 관계자 진술을 토대로 한 질문을 던졌다.
오후 5시20분부터는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을 포함해 민간영역에서 100억대 뇌물을 받은 혐의에 대한 ‘2라운드’ 조사가 진행됐다. 송경호 특수2부장 주도로 뇌물 공여자뿐 아니라 전달자 등의 촘촘한 진술을 바탕으로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진술을 끌어내 진술에 허점이 없는지 찾는 데 주력했다. 이 전 대통령은 역시 ‘돈을 받은 사실 자체를 몰랐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피의자가 부인하는 것도 권리이고, 역시 일반론으로 특수수사 할 때 피의자가 혐의 인정하는 걸 전제로 수사하지 않는다”며 “이 전 대통령이 갖고 있는 입장을 듣는 게 저희 목적”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다스 실소유 의혹을 먼저 조사한 이유에 대해 “범행 동기의 전제사실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확정짓고 나가는 게 효율적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주인이라는 걸 먼저 확인해야 이후 비자금 조성과 탈세 혐의 조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비비케이(BBK) 투자금 140억원 회수 과정에서 청와대를 동원한 혐의와 삼성에 다스 소송비를 대납하게 한 혐의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날 측근들과의 대질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14일 오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설렁탕 점심…내외신 600명 몰려
이날 이 전 대통령의 조사 과정은 1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조사 때와 달리 모두 영상 녹화됐고, 한동훈 3차장 등은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통해 실시간 조사 상황을 지켜봤다. 검찰 관계자는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실무책임자로 보는 것이지 조사에 관여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오후 1시10분께 외부에서 배달된 설렁탕을 먹었고, 7시10분께부터 저녁으로 곰탕을 먹었다. 검찰 관계자는 “사전에 어떤 음식이 편하겠느냐고 변호인 쪽에 물었고, 그걸 반영한 것”이라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의 점심은 김밥·유부초밥·샌드위치가 담긴 도시락, 저녁은 죽이었다.
조사에 앞서 이 전 대통령도 박 전 대통령 때처럼 10분가량 한동훈 3차장, 신봉수·송경호 부장 등과 함께 청사 10층 특수1부장실에서 티타임을 가졌다. 이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편견 없이 조사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고, 한 차장은 “법에 따라 공정하게 수사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티타임에는 강 변호사를 포함해 박명환·김병철·피영현 등 변호인 4명도 동석했다.
이날 서울중앙지검 청사는 아침 7시께부터 내외신 취재진 600여명이 몰려 큰 혼잡을 빚었고, ‘이명박 구속’을 외치는 시위대도 청사 주변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소환 때와 달리 이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10명 남짓한 소규모였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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