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의 피의자 조사를 모두 받고 21시간만인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검찰이 15일 언론에 대략 설명한 이명박 전 대통령 조사 내용을 보면,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을 둘러싼 20여가지 혐의 가운데 딱 한 가지 혐의에 대해서만 인정했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자신의 오랜 비서였던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국가정보원에서 전달받아 청와대에 건넸다는 10만달러(약 1억원) 관련 혐의다. 이 전 대통령은 이 돈을 건네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사용처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나라를 위해 썼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1억원은 이 전 대통령이 받았다는 100억원대 뇌물 혐의 금액의 1%에 불과하다. 이 전 대통령은 왜 유독 이 돈에 대해서만 수수 사실을 인정했을까. 수사팀 관계자는 “사실 우리도 왜 그 부분만 인정했는지 궁금하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혐의를 입증할 증거나 진술이 뚜렷하기로는 1억원 외에 다른 국정원 특활비나 민간에서 받은 뇌물 혐의도 마찬가지여서 수사팀 내부에서도 의외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검찰 안팎에선 여러 추측이 나온다. 우선 이 돈을 전달한 사실을 털어놓은 김희중 전 부속실장을 의식한 진술이라는 분석이 있다. 김 전 실장이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보관하고 있거나,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수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김 전 실장이 추가 폭로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게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김 전 실장이 돈을 전달할 당시 관저 직원 등 다른 목격자들의 진술이 있어 마냥 부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말도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이 부인 김윤옥 여사로 수사가 번지는 걸 꺼려 인정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 전 실장은 돈을 김윤옥 여사의 일을 봐주는 직원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는데, 이 전 대통령이 혐의 사실을 부인하면 검찰이 김 여사를 상대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해 자신이 인정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려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반대로, 미국 순방 직전에 전달된 이 돈의 사용처가 이 전 대통령의 말대로 ‘나라를 위해 쓰였을’ 수도 있다. 검찰 조사 때는 밝히지 않고 있다가 향후 재판 과정 등에서 이를 공개해 명분을 얻으려는 전략일 수 있다는 추측이지만, 수사팀에서는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석진환 서영지 기자 soulfat@hani.co.kr [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