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검찰총장.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청구된 지난 19일, 검찰청사가 모여 있는 ‘서초동’의 하루는 유난히 길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이 전 대통령의 영장을 결재하기까지 의외로 오랜 시간이 걸렸고, 검찰은 법원의 일과 마감이 채 1시간도 남지 않은 시각에 영장을 접수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일 출근 직후만 해도 검찰에선 ‘오전 청구설’이 유력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14~15일에 걸쳐 마무리된 데다 주말을 끼고 사흘간 말미가 있었던 만큼 문 총장이 오전 중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문 총장은 지난 16일 서울중앙지검의 공식 보고를 받기 전부터 수사 상황을 세밀히 파악하는 한편 여러 경로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의 신병 처리와 관련한 검찰 안팎의 의견을 청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점심 때를 넘기고, 오후 4시가 지나서도 결정이 내려지지 않자 검찰 내부도 다소 술렁였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팀은 이미 구속영장과 관련 서류를 만들어 놓고 대기하는 상태였는데 자꾸 늦춰지니까 ‘이러다 불구속 결정이라도 내려오는 거 아니야?’, ‘너무 오래 끌면 끝이 좋지 않은데’ 이런 얘기들을 주고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구속영장 청구가 늦어진 데는 검찰 분위기와 사뭇 다른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주문’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은 문 총장에게 “전직 대통령의 범죄는 내란·헌정 질서 문란 등 소위 국사범이 아니면 대한민국의 국격이나 대외 이미지 등을 고려할 때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불구속 수사와 재판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사실상 ‘불구속 수사’ 쪽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반면 문 총장은 사안이 중대하고 증거인멸 가능성이 커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박 장관이 지휘권 발동까지는 가지 않고 검찰의 입장을 수긍하면서 양쪽의 ‘엇박자’가 수습이 됐다고 한다. 법무부 고위직을 지낸 검찰 출신 변호사는 “대통령을 정무적으로 보좌하는 법무부 장관과 사건 수사를 책임진 검찰총장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영장 청구 직후 대검은 장관과 총장의 ‘의견 대립’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는데, 이를 두고 20일 검찰 일각에서는 “심사숙고했다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가능한 늦은 시각에 영장을 청구하고 장관과 총장의 대화 내용까지 밝힌 것 같다”는 해석이 나왔다.
강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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