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부분 지역 미세먼지 수준이 ‘나쁨’을 보인 25일 오전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서 시민들이 뿌연 서울 도심을 바라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은평구 한 어린이집의 원감인 한아무개(42)씨는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이 착잡하다. 어린이집 원아 가운데 4명이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처가 이틀째 내려진 27일에도 마스크를 하지 않고 등원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내부에선 공기청정기가 가동중이지만 마스크 없이 어린이집 차량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면 걱정이 크다. 한씨는 “마스크에서 가정 형편이 보여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마스크도 못하고 오거든요. 걱정된다고 매번 우리가 사줄 수도 없고 안타깝죠”라고 말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마스크 판매량이 껑충 뛰며 편의점마다 마스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지만 저소득층엔 ‘그림의 떡’이다. 미세먼지 마스크 가격은 미세먼지 차단율(KF)에 따라 1000원대부터 10여만원대까지 다양하다. 미세먼지에 개인적으로 대처할 방법은 사실상 마스크 착용밖에 없는데, 소모품이라 매번 새로 구매하기엔 경제적인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극심한 날이 일년에 한두차례라면 큰 부담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미세먼지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실시간 대기환경을 공개하는 에어코리아에 따르면, 미세먼지 주의보·경보는 올들어 1월1일부터 이날까지 86일 가운데 22일에 걸쳐 전국적으로 234차례 발령됐다.
이에 미세먼지 민감군인 영유아부터 청소년 가운데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경우에 대한 우려가 크다. 지난 2016년 12월 환경부가 개정한 ‘고농도 미세먼지 대응 매뉴얼’을 보면, “영유아 및 어린이의 경우엔 면역체계가 완벽히 발달하지 못하고, 단위 체중당 호흡량이 성인보다 높아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공기오염 물질을 들이킬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앞으로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 민감도가 한층 높아진다. 26일 일부 광역지자체에 따르면 27일부터 환경기준을 강화한 '환경정책기본법시행령'이 시행되면 PM2.5 미세먼지 환경기준이 일평균 50㎍/㎥에서 35㎍/㎥로, 연평균 25㎍/㎥에서 15㎍/㎥로 바뀐다. 따라서 새 기준을 적용하면 올해는 전반적으로 '나쁨' 이상의 미세먼지 예보 일수가 더욱 잦아질 전망이다. 사진은 서울 덕수궁 앞에 설치된 미세먼지 현황 전광판. 연합뉴스
그러나 교육당국은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말 유치원·초등학교엔 4회 분량, 중학교엔 3회 분량, 고등학교엔 1회 분량의 마스크를 배포했지만 올해는 별다른 계획이 없다. 교육부도 “어린이의 경우 마스크를 착용했을 때 오히려 호흡하는데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재정도 부족하다”며 마스크 배포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경제 생활을 하는 맞벌이 부부도 마스크 비용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자녀 셋을 둔 박아무개(32)씨는 지난주 인터넷 쇼핑을 통해 미세먼지 마스크 60개를 대량 구매했다. 가장 등급이 낮은 ‘KF80’이었지만 13만원 남짓이 들었다. 박씨는 “60개씩 구매해도 2주면 끝나요. 99% 차단되는 것도 있던데 그건 하나에 5000원이 넘길래 못 샀어요”라고 말했다. 박씨는 봄철이 되면 생활비에서 마스크 구입 비용을 따로 빼놓는다고 했다. 박씨는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마스크 가격 인하’, ‘의료보험 적용’ 등 국민청원에 동참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마스크가 일회용인데다 가격이 만만찮아 계층에 따른 경제적 부담에 차등이 있을 것”이라며 “보건소나 주민센터에 마스크를 비치해 1인당 정해진 갯수만큼 사용할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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