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던 2015년 경기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현관 앞에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습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과천/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박근혜 정부 시절 추진된 국정교과서와 관련해 “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인 또 하나의 국정농단 사건이었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추진과정에서 불법 행위를 지시하거나, 가담했던 청와대와 교육부 전직 관계자들을 상대로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한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산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회위원회(진상조사위)는 28일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실조사 결과 발표에서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헌법과 각종 법률, 민주적 절차를 어기면서 국가기관과 여당, 친정권 인사들을 총동원해 교과서 편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그 과정에서 이뤄진 위법행위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 정부 시절 교육부는 ‘청와대의 뜻’을 따라 2013년 6월 국정화 추진에 나섰다. 당시 일부 언론 등이 교학사 교과서를 포함한 7종 교과서가 ‘좌편향’됐다는 문제제기로 포문을 열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아이들이 편향된 인식을 가져서는 안된다”며 ‘교과서 검·인정 체제 강화를 위한 조직 설치’를 지시했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편찬을 위한 준비를 일사천리로 진행했고, 2015년 ‘국정화 고시’를 통해 본격적인 실행 작업에 나섰다. 이 과정에 청와대 비서실장 등 청와대와 교육부 핵심 관계자들이 불법적으로 국정교과서 비밀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거나, ‘차떼기’ 의견서 조작, 조직적인 관변단체 동원 등 위법한 행동을 했다고 진상조사위는 봤다.
진상조사위가 판단하는 위법행위는 △불법적인 국정화 여론 조작 조성 △국정화 비밀 티에프 운영 △행정예고 의견서 조작 △국정화 반대 학자에 대한 연구지원 배제 등 크게 6가지다. 청와대 주도로 법적 근거없이 국정교과서 비밀 추진 티에프를 꾸리거나,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 추진단이 반대여론 동향 자료를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찰청에 송부한 것 등이 문제가 됐다. 국정화 행정예고의 절차로 국민 의견서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차떼기 의견서’를 조작하는 과정에 교육부 공무원이 개입된 사실도 확인했다. 또 당시 여당 쪽 인사와 관련된 홍보용역업체가 ‘억대 부당이익’을 가져가기도 했다.
역사학계에서 국정화 반대 여론이 들끓자, 반대학자들을 특정한 뒤 정부의 연구지원을 받는 통로를 아예 차단하기도 했다.
진상조사위는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지시하거나 개입한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 김상률 교육문화수석, 김한글 행정관을 비롯해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박성민 부단장 등을 직권남용과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 등으로 수사의뢰를 요청하라고 교육부에 권고했다.
이에 대해 진상조사위는 “조사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독단적으로 기획하고 결정했으며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과 교육부, 관변단체 등이 총동원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국정화 사건으로 민주주의의 헌법가치가 심각히 훼손당하고, 학생과 학부모, 교사와 역사학자 등 국민들이 자유와 권리면에서 심각한 침해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진상조사위는 교과발행 제도 개선, 다양하고 자율적인 역사교과서 발행 지원, 역사교육 정책 거버넌스 구축 등 교육부에 국정교과서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도 요구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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